■제주 4·3사태

보수 성향의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왜곡시키는 제주4·3평화기념관의 전시를 금지하라’며 소송을 냈다.… 한변은 “4·3기념관이 4·3사건에 대해 ‘불의에 맞선 제주도민의 정당한 저항을 이승만 정부가 무참한 살육으로 진압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며 “이는 지극히 편향되고 불공정한 전시”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4·3사건을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참한 살육이 벌어졌다는 점만 부각시켜 관람자들에게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승만 대통령과 진압 군경을 집단 학살범으로 오인하게끔 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2015년 3월 23일>

 제주 4·3 사건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은 비극적 사건이다. 오랫동안 제주도 주민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던 4·3사건의 실체가 정부 차원에서 규명된 것 2000년 1월 ‘제주 4·3특별법’이 제정·공포되고 이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수년 동안의 면밀한 조사 끝에 2003년 10월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였다.

제주 4.3 사건 당시 모습

위원회는 “4·3 사건은 배경이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되어 있어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서 결정적인 원인으로 1947년의 3·1절 발포사건을 꼽았다. 3·1절 발포사건은 1947년 3월 1일 약 3만 명의 군중이 제주읍 관덕정 부근에서 3·1절 기념식을 열고 있을 때 한 기마순경이 부근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실수로 중상을 입히고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아 이에 항의하며 시가행진을 벌이는 군중을 향해 경찰이 쏜 총에 6명이 죽고 8명이 다친 사건이다. 발포원인은 경찰이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군중을 향해 발포했다는 주장과, 시위대가 파출소를 파괴해 자체 방위상 발포했다는 주장으로 갈려 엇갈린다. 숨진 사람들도 3·1절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좌익이었는지 무고한 양민이었는지 정확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 발포 사건 후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인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다. ‘3·10 총파업’을 주도하고 파괴, 습격, 테러, 시위, 동맹휴업 등 갖가지 방법으로 투쟁의 강도를 높였다. 미 군정은 총파업의 이유가 경찰 발포에 대한 도민의 반감과 이를 증폭시킨 남로당의 선동에 있다고 파악하긴 했으나 ‘경찰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비중을 두고 강경 대응했다. 이에 따라 도지사 등 고위 행정직을 전원 외지 사람들로 교체했다. 육지 경찰과 서북청년회(서청) 단원도 대거 제주로 내려가 파업 주모자에 대한 검거작전을 전개했다. 검속 한달만에 500여 명이 체포되고 이듬해 ‘4·3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2,500여 명이 구금되었다. 이처럼 민심을 수습하기보다는 강경 일변도로 대응함으로써 주민과 대립·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1948년 3월에는 일선 지서에서 잇따라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해 민심을 더욱 격앙시켰다. 직접적인 원인은 좌익의 무장투쟁과 군경의 과잉진압 4·3 사건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좌익의 도발로 시작되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조직 노출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던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대 500여 명과 1,000여 명의 동조자가 제주도 내 14개 파출소, 서북청년단(서청) 등 우익단체의 숙소, 행정기관 등을 급습하는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경찰·서청의 탄압 중지,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단선·단정) 구성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 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무장대의 봉기로 이날 하루에만 10여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미 군정은 육지에서 경찰과 서청 단원을 증파해 사태 확산을 막으려 했으나 쉽게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방경비대를 출동시켜 진압작전을 펼쳤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 주둔 향토경비대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이 무장대 측 김달삼과 ‘4·28 협상’을 통해 72시간 안의 전투 중지, 무장해제, 하산한 주모자들의 신변 보장 등 3가지 조건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우익청년단이 ‘오라리 방화사건’을 일으키고 김익렬 연대장이 전격 해임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전국적으로 치러진 5·10 총선거도 제주도 내 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가 투표수 과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다. 5월 20일 경비대원 40여 명이 탈영해 무장대 측에 가담하고, 6월 18일 신임 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부하 대원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다가 한동안은 소강 국면을 맞는 듯했다. 무장대는 김달삼 등 지도부가 1948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북한의 ‘해주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조직을 재편하고 있었고, 군경 토벌대는 8월 15일의 정부 수립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슨하게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소강상태는 잠시뿐이었다. 8월과 9월 남북에 독자적인 정권이 세워지면서 제주 사태는 단순한 지역 문제를 뛰어넘어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증파했다. 이때 제주에 파견하려던 여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또 한 번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0월 17일 송요찬 9연대장이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 통행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고 11월 17일 정부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4·3 사건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때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으로 4·3 사건 전체 희생자의 80%가 죽임을 당했다. 다수 양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무장대의 강요를 따르면 나중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폭도로 몰려 죽었고, 경찰을 도와주면 무장대에게 반역자로 몰려 죽었다. 마을 전체가 불에 타고 주민 전체가 몰살당하기도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산자락에서 해안가 마을까지 뒤덮으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더 많은 주민이 입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되지 않아 정부는 1949년 3월 기존의 진압작전에 선무작전을 병용했다. 유재흥 제주도지구 전투사령관은 “한라산에 피신한 사람들이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겠다”는 사면 정책을 발표했다. 공포에 떨던 주민들이 하산함에 따라 미뤄진 재선거도 1949년 5월 10일 성공리에 치러지고 5월 15일 마무리 토벌을 주도한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도 해체되었다. 무장대 총책 이덕구도 1949년 6월 사살됨으로써 무장대도 사실상 궤멸되었다. 그러던 중 1년 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또다시 비극이 찾아왔다. 보도연맹 가입자, 요시찰자,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예비검속되어 죽임을 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무장대의 공세가 미미해진 1954년 9월 21일 정부가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을 전면 해제함으로써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월 무장봉기로 촉발된 제주 4·3 사건은 7년 7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장기화하고 수많은 양민이 죽어야 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좌익의 무장투쟁과 군경의 과잉진압이었다. 양민의 죽음을 담보로 강경 투쟁만을 고수한 좌익 지도부의 무모함과 모험주의가 없었다면 1만 명 이상의 무고한 양민이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1차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군경의 과잉진압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좌익과 양민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무장대가 밤낮으로 군경을 공격해오는 상황에서 크게는 막 태동한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작게는 보복이 보복을 낳는 피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지라도 방법이 과잉진압밖에 없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배타적이던 제주도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태가 커진 측면도 있다. 해방과 함께 일본·중국 등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15만 명이던 주민수가 33만 명으로 불어났는데 이들 중 좌익계가 많았던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남로당은 김달삼을 제주도지구당 총책으로 앉히고 학도병 출신 이덕구를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삼아 각종 좌익 외곽단체를 조직했다. 이처럼 도내가 적화되고 그들의 암약으로 도내 행정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미 군정은 경찰·서청단원들을 보내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외지인들이 도민을 가혹하게 대하고 행정기관도 방관하고 있는 사이 도민의 반감은 커치고 마찰은 빈발했다.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좌익이 선전 선동을 강화해 미 군정에 대항하도록 부추기면서 비극이 잉태했다. 4·3 사건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2003년 ‘4·3 사건 진상규명위’의 희생자 신고접수에 따르면 1만 4,000여 명(사망 1만 700여 명, 행방불명 3,100여 명, 후유장애 14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3만~8만 명의 양민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

■장사익

‘가장 한국적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소리꾼 장사익씨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지난 8년간 유니세프 특별대표로 음악회 재능 기부 등을 통해 기여한 공로다. 장씨는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학교 짓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7남매의 맏이로 힘든 유년기를 보낸 장씨는 “동부와 남부 아시아에서만 1700만명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한다”며 “아이들이 꿈을 이루려면 최소한의 교육은 받게 해야 한다”고 했다. 장씨는 지난 10일에도 유니세프의 개도국 학교 지어주기 캠페인에 재능 기부자로 나섰다. <조선일보 2015년 3월 25일>

장사익(1949~ )의 소리는 절규하는 가창력과 흐느끼듯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애절함이 특징이다. 온 힘을 다해 남은 한 방울의 진액까지 다 소진해버릴 듯 열창하는 그의 소리는 전율을 동반하고 소름을 돋게 한다. 혼이 실린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누구나 단숨에 매료되고 가슴이 뻥 뚫리듯 후련해진다. 이런 그의 소리는 국악이나 가요로 분류되지 않고 그냥 우리 노래, 우리 가락으로 통칭된다. 그 역시 ‘가수’로 불리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소리꾼’이나 ‘가객’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장사익

그는 작곡할 때도 ‘장사익 작곡’이라고 하지 않고 그저 ‘장사익 엮음’이라고 한다. 새 곡조를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딘가를 휘휘 떠돌던 가락이 좋은 시를 만나고 알아주는 풍류객을 만나 소리 되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를 엮을 때도 악보를 적지 않는다. 그냥 속에서 나오는 대로 흥얼거리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연주자들 앞에서 몇 번 불러본 뒤 노래를 완성한다. 신곡도 먼저 무대 공연을 통해 선보인 다음 음반으로 만든다. 그의 음반에 수록된 노래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의 또 다른 장기는 앨범마다 수록된 ‘님은 먼 곳에’, ‘동백 아가씨’, ‘봄비’ 등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자기것으로 소화하는 것이다. 어떤 노래를 불러도 장사익이 부르면 ‘장사익류’가 되고 그의 목소리를 통과하는 순간 토착의 서정으로 변모하는 것도 그만의 매력이다. 장사익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소문난 장구잡이였기 때문에 소리의 기질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하지만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다 보니 소리를 업으로 삼지는 못했다. 다만 가락이 좋아 틈틈이 노래 연습을 하고 국악기를 배웠다. 1967년 선린상고 3학년 때 입사한 생명보험회사에 다닐 때도 낙원동 음악학원에 다니며 틈틈이 노래를 연습했다. 1972년 제대 후에는 무역회사 직원, 전자회사 영업사원, 가구점 총무 등을 전전하면서 거의 독학으로 태평소, 대금, 정악 피리, 단소 등을 익혔다. 이런 그가 제2의 인생에 도전하기로 작심한 것은 43살이던 1992년 12월 말이었다. 독서실 운영을 거쳐 카센터 사무장 일을 몇 년째 하던 중 불현듯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딱 3년만 내 뜻대로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그가 죽기 살기로 불어보자고 선택한 악기는 태평소였다. 절규하는 가창력과 마음을 파고드는 애절함이 특징 장사익은 1993년 새해가 되자마자 이광수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혼신을 다해 태평소를 불었다. 태평소는 사물놀이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악기였지만 얼마 안 가 그의 태평소는 화룡점정격 악기가 되었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전국 투어에서는 ‘하여가’의 태평소를 맡았다. 1993년과 1994년의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그가 태평소를 분 공주농악단과 금산농악단이 장원을 차지하는 등 그는 점차 태평소의 명인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의 진가는 각종 공연 끝에 벌어지는 뒤풀이에서 빛을 발했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다시 그의 노래를 청하는 과정에서 농악판 최고의 뒤풀이 가수가 되었다. 1994년 여름 평소 그를 눈여겨보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공연을 제안했다. 장사익은 1994년 11월 7일과 8일 서울 홍대 앞의 예극장에서 임동창과 함께 공연을 했다. 소리로는 첫 무대인 장사익의 공연은 100석 규모의 극장에 300여 명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뤘다. 그날 공연에서 장사익은 가슴속에 묻혀 있던 소리를 저 밑바닥에서부터 끄집어냈다. 그것은 부르는 것이 아니고 토해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장사익은 인생살이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서 40대 중반에 소리꾼으로 데뷔했다. 곧 음반 제의가 들어왔다. 자작곡 ‘찔레꽃’ 등 창작곡 5곡과 ‘님은 먼 곳에’, ‘봄비’ 등 리바이벌곡 5곡이 수록된 1집 앨범은 1995년 3월 ‘하늘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정식 소리꾼으로 데뷔한 것이다. 1996년 6월 7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자유 콘서트’는 그가 처음으로 대규모 군중 앞에 선 공연이었다. 젊은 관객들은 두루마기 차림의 중년 사내가 내뿜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가슴 절절한 노래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장사익은 이렇게 무대 가수로도 데뷔했다. 1집의 성공을 함께 이끌었던 임동창과 음악적으로 결별한 뒤 만든 2집 ‘기침’(1999)은 1집만큼 큰 반향을 얻지 못했으나 3집 ‘허허바다’(2000)는 또다시 장사익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후 장사익은 4집 ‘꿈꾸는 세상’(2003), 5집 ‘사람이 그리워서’(2006), 6집 ‘꽃구경’(2008)을 발매했다. 이 과정에서 공연 때마다 세종문화회관의 전석이 매진되고 국내외에서 초청이 쇄도하는 스타가 되었다.

■윌리엄 스크랜턴과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

올해는 장로회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와 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러(1858∼1902)와 메리 스크랜턴(1832∼1909)·윌리엄 스크랜턴(1856∼1922) 모자가 선교를 위해 한국에 입국한 지 130돌이 되는 해다. 대부분 선교사가 군대를 태운 상선을 타고 입국해 허락 없이 선교를 시도하던 당시, 고종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고 선교활동을 펼친 최초의 선교사였다.… 메리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세웠다. 그의 아들로 목사이자 의사였던 윌리엄 스크랜턴은 주로 하층민이 살던 지역에 동대문교회와 상동교회, 아현교회를 설립하고, 이화여대부속병원의 전신인 보구병원을 세웠다.… 이들의 선교 130돌을 맞아 기독교와 교단 차원의 행사가 펼쳐진다. <한겨레 2015년 3월 19일>

윌리엄 스크랜턴(1856~1922)은 미국 예일대와 뉴욕 의과대를 졸업한 엘리트 청년의사였다. 아버지, 동생, 조카까지 감리교회 목사였던 집안의 영향을 받아 그 역시 1884년 12월 미국 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조선으로 파견될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역만리 조선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1832~1909)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왼쪽)과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어머니는 스크랜턴이 선교사를 결심하기 2개월 전 이미 미 감리교회 해외여성선교부로부터 조선으로 파견될 첫 선교사로 발령받았다. 스크랜턴이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살배기 어린 딸과 함께 미지의 땅을 향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것은 1885년 2월 3일이었다. 같은 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 부부도 같은 배에 몸을 싣고 조선으로 향했다. 이들 감리회 선교단은 2월 21일 일본에 도착해 곧바로 조선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두 달 전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여파로 국내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고 일본에서 때를 기다렸다. 마침 당시 도쿄에는 이수정이란 조선 교인이 있어 그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과 서재필 등 개화파 지도자들로부터도 국내의 정치·종교 상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아펜젤러 부부는 2개월 전 먼저 일본에 와있던 장로회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함께 1885년 4월 5일 제물포항으로 입항했으나 서울의 분위기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4월 13일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반면 언더우드는 바로 서울로 올라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스크랜턴과 아펜젤러는 5월 3일 함께 제물포항에 도착했고, 6월 20일 어머니 스크랜턴 등 가족들이 따라와 합류했다. 스크랜턴은 바로 서울로 올라가 장로회 소속 알렌 의료선교사가 1885년 4월 10일 세운 제중원에서 진료활동을 도왔다. 메리 스크랜턴, 이화학당 설립 스크랜턴이 의료활동을 통한 선교사업에 전념하는 동안 어머니 스크랜턴은 여성교육에 힘썼다. 메리 스크랜턴은 1895년 10월 정동에 있던 초가집 19채를 사들여 그것을 헐고 교사를 지으면서 학생들을 모집했다. 첫 학생은 1886년 5월 어느날, 스크랜턴을 찾아온 이름을 알 수 없어 ‘김부인’이라 불린 한 고관의 소실이었다. 5월 31일, 김 부인 한 명 만을 상대로 한 역사적인 첫 수업이 시작되면서 이화학당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김 부인은 곧 학교를 그만두었다. 6월 말, 10살 난 꽃님이가 가난으로 딸을 부양할 수 없었던 엄마를 따라 학교를 찾아왔다. 뒤이어 콜레라로 서대문 근처에 버려진 4살 난 별단이도 이곳에 보내졌다. 1896년 11월, 학수고대하던 200평 규모의 한식 기와집 교사가 완성되었고 1887년 4월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의 현판을 하사받았다. 아들 스크랜턴은 1개월만에 제중원을 그만두고 1885년 6월 정동에 한옥 기와집을 구입·개조하여 9월 10일부터 환자를 치료했다. 환자들이 많아져 부근의 땅과 집을 더 사들여 1886년 6월 15일 ‘미국인 의사병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환자를 받았다. 1887년 4월 고종이 스크랜턴의 한국이름 ‘시란사’의 첫 글자를 따 ‘시(施) 병원’이란 현판을 하사하며 격려했다. 그는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몰려사는 4대문 밖에 시약소를 차려 그들의 병을 치료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 선교본부가 그의 계획을 승인하자 스크랜턴은 서대문 밖 애오개를 1차 후보지로 선택했다. 그곳은 예전부터 죽음과 질병의 땅이었다. 스크랜턴은 1888년 12월 애오개 언덕 도로변 초가집에 시약소를 차려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1888년 12월 12일 첫 예배를 봄으로써 훗날 교회로 발전한 곳이 지금의 아현교회다. 두 번째 후보지는 상인들과 노동자, 걸인과 부랑인들이 밀집해 있는 남대문 부근 언덕이었다. 1890년 10월 그곳에 남대문 시약소가 설립되었고 1894년 이 시약소 자리에 설립된 교회가 상동교회다. 세 번째 후보지는 갓바치와 백정 등 천민들이 살고 있는 동대문 부근이었다. 스크랜턴은 그곳에 기부자의 이름을 딴 ‘볼드윈 시약소’를 세우고 1892년 12월 25일 볼드윈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동대문교회의 시작이었다. 스크랜턴, 친일 감독관의 불신임으로 목사직 퇴출 1894년 스크랜턴은 자신의 새로운 선교 거점을 중구 상동으로 삼아 ‘시 병원’과 집을 상동으로 옮겼다. 그곳에 시약소와 병원을 차린 후 시장상인들을 상대로 전도를 시작한 것이 상동교회의 출발이다. 스크랜턴은 그 상동시절을 의사와 목사, 교사, 성경 번역자, 선교관리자로 1인 5역의 역할을 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 1901년 7월 어머니·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그가 미국에 있던 1904년 5월 미국 감리회 총회가 해리스 선교사에게 일본과 조선의 선교를 관리하도록 위임했다. 해리스는 일본에 대해서는 잘 알았으나 조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스크랜턴은 해리스로부터 “조선 선교를 관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1904년 10월 다시 어머니·아내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당시 상동교회는 사실상 민족운동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07년은 그에게 운명의 해였다. 해리스가 6월 18일부터 26일까지, 미국·일본의 감리회 관련 인사들까지 참가한 회의를 주재하면서 친일 편향을 보이자 스크랜턴은 6월 24일 해리스 감독에게 사임원을 제출했다. 사임원은 즉각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스크랜턴은 조선 담당의 선교사직은 물론 목사직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형식은 자원 사임이었지만 내용은 감독의 불신임에 의한 퇴출이었다. 스크랜턴은 그러나 조선을 떠나지 않았다. 70대 고령의 어머니가 여전히 조선에서 활동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스크랜턴은 교적을 감리회에서 성공회로 옮겨 평신도 신분으로 계속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1909년 10월 8일 77세 나이로 눈을 감고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묻혔다. 스크랜턴은 평북의 운산금광과 충남의 직산금광에서 의사로 근무하다 1916년 중국 대련으로 건너갔고, 1917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의료 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내다가 1922년 3월 23일 일본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