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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봉사의 삶 실천해온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
2022년 02월 06일 (일) 22:44:19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평화 없이는 개인의 존엄이 보장될 수 없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평화는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한 사람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평화와 발전은 결국 국가적인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윤담 기자 hyd@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여성과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민,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노인, 아동 등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많다.

‘희망원’ 설립 후 물심양면으로 불우 청소년의 자립 지원
이성원 희망원 원장의 행보가 화제다. ‘인간 상록수’라 불리는 이성원 원장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동안 청소년 선도와 사회봉사에 헌신해왔다. 조치원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1960년대부터 이성원 원장은 보릿고개 시절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청소년 선도 및 자립을 위해 조치원역 대합실에 ‘청소년 상담소’를 설립했고, 1963년 BBS연기지부를 조직해 불우 청소년들을 각 기관, 유지 등에 결연을 맺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으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도왔다. 1964년도에는 흑벽돌로 된 보육원인 ‘희망원’을 설립해 자립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았다. 이성원 희망원 원장은 “땅 팔고, 양복을 팔아서 힘들게 희망원을 이끌어왔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 이성원 원장

희망원을 통해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성원 원장은 구두닦이를 비롯해 농사, 토끼·돼지 키우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등 각종 기술을 가르치며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토끼와 돼지, 닭 등을 무료 분양하기도 했다. 이러한 헌신적인 도움을 받았던 희망원생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 일원이 됐고, 여전히 이 원장을 아버지처럼 따른다. 국가 보조금 없이 순수 사재를 털어 희망원을 운영하면서도 4H구락부 운동과 가축보급 운동도 펼쳤으며 학교 순회 선도 교육에도 앞장섰다. 또한 고아출신들이 장성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돈이 없고 가난한 생활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보니 이것이 한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성원 원장은 1970년대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 합동결혼식을 열어 1,500여명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희망원생들이 부부의 연을 맺도록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이성원 원장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말 힘들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젠 다 큰 희망회의 우리 자식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위해 총력 기울여
국내 최초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림으로써 사회적 의식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숭고한 봉사의 삶을 실천해온 이성원 원장.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인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이다. 이 원장은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으로 호적이 없던 8만여 명에게 구제의 길을 열어주었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됐던 우리나라에는 부모형제를 잃고, 굶주리며 방황하는 부랑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1960년대 당시 무적자 수만 해도 12만 명에 달했다. 무적자는 출생신고 이후 호적 등록 단계에서 행정 착오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로 ‘정치·사회적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성원 원장은 호적이 없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무적자들이 처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1965년 12월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주창했다. 이후 각 언론사뿐 아니라,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보건사회부장관, 서울시장, 각 시도지사 변호사협회장, 중앙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 등에 호소문을 발송했으며, 직접 플랜카드를 어깨에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거리 캠페인을 펼쳤다. 민간인으로서 무적자들에 대한 인권의식에 경종을 울린 최초의 범국민적 인권수호운동이었던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에 언론사마다 이 원장의 인권옹호 활동을 앞 다퉈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이 주도하는 운동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 원장은 무적자들에게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무호적자들을 사회 안전망에 들여놓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 결과 법무부로부터 무호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발표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호적 정리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도 발급하게 하는 등 행정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쳐 전 국민들에게 12자리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등 차별 없는 사회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성원 원장은 법무부로부터 ‘인권 옹호 대상’을 수상했다.

한편 지난 2019년, 이성원 원장은 자신의 봉사 발자취를 담은 기록 사진집 <그늘진 곳에 희망을 보급한 58년의 찬란한 기록>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인권의 날’을 기념해 출간한 이 사진집에는 지난 60년간 이성원 원장이 소장해온 수천 장의 사진 중 180장의 보석 같은 사진을 담았으며, 흑백 아날로그의 감성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을 한 컷 한 컷 보정해 흑백 아날로그의 감동을 인쇄로 구현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정리해 인간 이성원의 인생 전시장이 영화 필름처럼 펼쳐지듯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은 물론 나눔과 봉사로 아름다운 인생길을 걸어온 그의 봉사정신과 희망원생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치지 않는 봉사 열정과 숭고한 인류애로,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이 원장은 “남은 일생도 이들과 함께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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