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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타박네’, ‘역’의 싱어송라이터 양병집의 삶과 노래[3]
자전 에세이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서 양병집을 다시 만나다
2022년 01월 15일 (토) 00:34:16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 포크음악동호회 ‘바람새 음악회’에서 노래하는 양병집씨. 자전 에세이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2012년)’와 자전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2021년)’ 표지

최근 자전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를 출간한 싱어송라이터 양병집씨가 지난 12월, 70세의 일기로 갑자기 별세했다.

‘타박네’, ‘역(逆,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소낙비’, ‘잃어버린 전설’, ‘서울 하늘 1, 2’  등...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1970년대 우리나라 3대 저항 가수로 일컬어지던 양병집은, 우리나라 전래 구전 가요를 발굴하거나 미국 포크음악에 우리의 현실을 빗대 슬프고도 아름답게 ‘아메리칸 포크를 한국화’시킨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노래 속 메시지는 우리나라 70, 80년대 사회의 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다. 삶을 직시하는 노래, 현실을 꿰뚫는 노랫말... 때문에 그가 부른 노래는 번안곡 조차도 외국 포크로 느껴지기보다는 되레 한국적이다. 판소리를 닮은 그의 거친 창법도 한몫했다.

7.80년대를 거칠고 쓴 목소리로 풍자했지만 세상이 보다 살만한 곳이 되길 바라는 강한 의지를 노래에 담았던,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듯한 가객이었다.

2012년 자전 에세이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 이어 2021년 자전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를 출간하며 만년까지 자신의 노래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싱어송라이터다. 양병집의 삶과 노래를 돌아본다. 그 세 번 째.

글 l 박성서 (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유년시절과 청년기의 양병집.

‘두 바퀴로...’에 이어 최근 자전 에세이집‘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 출간

지난 2013년, 뉴스메이커 지면을 통해 ‘박성서 칼럼/싱어송라이터 양병집의 삶과 노래 1, 2회’를 연재한 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첫 연재를 시작하면서 총 세 차례에 걸쳐 쓸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세 번 째 원고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 무렵 필자는 ‘노래박물관 특별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 지면을 통해 특별전 관련 칼럼을 먼저 써야 했기에 부득불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해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근 들어 양병집씨가 자전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2021년 11월30일, 북랩 발행)’를 펴낸 것을 계기로 ‘양병집 3회’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양병집씨도 좋은 생각이라며 곧바로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허나 당황스럽게도 이 칼럽을 추모를 겸해 써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더욱 아쉬운 것은 자전 소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걸 굳이 마다하고 직접 만나자고 한 것. 인터뷰를 겸해 책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약속을 몇 차례 미루다가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와 약속을 잡은 것은 지난 12월 24일 낮 12시 반. 장소는 그의 단골집인 한 카페였다. 그러나 그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 또한 계속 받지 않아서 이상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주인은 한 달 전쯤에 양병집씨가 들렀다고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오랜 기간 혼자 지내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오면서 사장에게라도 연락이 오면 서로 연락하기로 했다.

▲ 양병집 영정 사진과 1975년 양병집이 영화음악과 주제가를 맡았던 김동리 원작, 김수용 감독, 윤정희 주연의 ‘극락조’ 비디오 테입.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후배 김지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금 페이스북에 양병집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혹시 아느냐, 그리고 가족들 중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페이스북에 글 올린 이와 통화를 했다. 그는 기타리스트 김홍석씨였다. 그에게 들은 얘기를 요약하자면, 양병집씨로부터 계속 응답이 없자 그 단골 카페 사장이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그중 연락이 된 그가 급기야 112에 신고했던 것. 그 역시 전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하던 차였다고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주소를 확인해 출동, 문을 뜯고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는 이미 숨진 뒤였다. 사인은 ‘수면 중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다.

양병집[3], 2012년 자전 에세이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출간

그렇듯 ‘양병집 세 번 째 원고’는 결국 그가 타계한 뒤에 쓰게 되었다. (참고로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는 가능한 한 필자가 2013년도에 쓴 졸고, ‘양병집 1, 2회’도 함께 보시길 권한다.) 그 글은 현재 인터넷에 올려져 있다. 

[박성서 평론] 최근 ‘자전 에세이집-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펴낸 가수 양병집 이야기[1]

[박성서 평론] ‘자전 에세이집-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펴낸 가수 양병집 이야기[2] ‘

지난 2012년, 출판된 자전 에세이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양병집의 첫 작품 ‘역(逆)’의 첫 부분 가사다. 그가 1973년 아마추어 시절, 월간팝송 주최 ‘전국포크송콘테스트’에 나가 이 노래로 입상, 가수의 길을 걷게 된 노래다.

밥 딜런(Bob Dylan)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을 번안한 곡으로 이 노래는 양병집 외에도 이연실, 김광석 등이 부르면서 더욱 세간에 알려졌다.

‘역(逆)’은 ‘거꾸로’라는 뜻이다. 한 젊은이의 눈에 비친 ‘거꾸로 본 세상’을 그린 재미있는 노래다. 모든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되묻는다. 그러한 의도는 쉽게 눈치채기 어렵다. 제목이 ‘역(逆)’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젊은 시절, 양병집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순이자 비극인 듯하다.

자전 에세이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한울출판사, 2012년 11월26일 발행)’는 포크 가수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담았다. 1970년대 포크·번안 작업, 저항가수로서의 일기, 그리고 7080세대가 추억하는 그 시절 음악 이야기 등등.

제1부에서는 청년, 중년 시절 이야기, 그리고 가수 겸 음반 기획자로서의 삶을, 2부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3부에서는 가족을 호주에 두고 혼자 귀국한 이후의 이야기다. 직접 그린 10여 점의 일러스트도 함께 들어있다.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60년 인생을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반항아, 대범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소심한 몽상가’라고. 먼저 이 책에서 몇 개의 에피소드를 발췌해본다.

▲ 양병집 발표 음반들.

책 속에 담긴 몇 개의 에피소드 / 밥 딜런 노래를 해보는 게 어때?

“이제 솔로가 됐으니 밥 딜런의 노래를 해보는 게 어때?”

어느 날 충무로의 음악감상실 내쉬빌의 김유복 사장이 던진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당시 내쉬빌의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는 사이사이 외국 포크 가수들의 커버송을 무대 레퍼토리로 쓰고 있었다. (…중략) 그때부터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를 보니 다른 음악과 조금 달랐다. 한마디로 가사의 차원이 기존의 팝송들과 전혀 달랐다. 예를 들어 단순하게 반복되는 밥 딜런의 가사들은 사전을 뒤지고 또 뒤져 겨우 한 절을 직역해놓고 보아도 그 내용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노랫말이 가지는 함축성이 매우 컸던 것인데, ‘Mr. Tambourine Man’, ‘A Hard Rain's A-Gonna fall’, ‘I Want You’ 등이 대표적이다. 그날부터 미국 모던 포크(American mordern folk) 전반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중략)

1.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물속으로 나는 비행기/하늘로 뜨는 돛단배/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2. 시퍼렇게 멍이 들은 태양/시뻘겋게 물이 든 달빛/한겨울에 수영복장수/한여름에 털장갑장수/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태공에게 잡혀 온 참새만이/눈물을 삼킨다.

3.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시장에서 구두 사는 사람/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땅꾼에게 잡혀 온 독사만이/긴 혀를 내민다. -역(逆).

은유적인 서술과 현실의 다양한 아이러니를 역설적으로 묘사. 이 노래 ‘역(逆)’을 통해 그는 당시 노랫말에 쉽게 끌어들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을 절묘하게 배합해 현실과 허구를 뒤섞는다.” -박성서, ‘서울신문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l 70년대 3대 저항가수 양병집[2]’, 2007년 6월10일 자. (본문 50쪽, ‘이제 솔로가 됐으니 밥 딜런의 노래를 해보는 게 어때?’ 중에서)

서유석 선배와 구전가요 ‘타박네’

...바닥에 앉아 노래를 두세 곡 부르고 있는데 마침 그 레코드사에 와 있던, 키가 멀쑥하게 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조금 전에 내가 부른 노래 중 마지막 곡을 다시 한 번 불러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서유석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타복 타복 타복네야...” 하면서 그 노래를 다시 불러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대뜸 “이거 내가 불러도 되냐?” 하고 물어왔다. 적지 않은 카리스마를 느끼면서 나는 얼떨결에 “네, 그러세요” 하고 대답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 노래를 두세 번 더 불러보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그 선배는 노래를 익혔던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지금은 없어진 명동 미도파 건물 건너편의 골목을 걸어갈 때였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리고 “타박 타박 타박네야...” 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레코드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 레코드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지금 나오는 노래가 누구 거예요?”

레코드점 주인은 내가 그 판을 사려는 줄 알고 판을 한 장 건넸다. 앞면에 그 선배의 사진과 함께 큰 글자로 ‘서유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가늘게 ‘I want to see my mother’라는 글귀도 보였다. (본문 60쪽, ‘서유석 선배와 타박네’ 중에서)

▲ (사진 위) 정태춘(왼쪽)과 앙병집. (아래) 동료가수 임용환(좌측)과 함께. 르 실랑스

‘르 실랑스’, 임용환과 김민기

충무로의 음악감상실 ‘르 실랑스’에서 노래할 때였다. (중략) 그는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아주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기타를 꺼내 어깨에 멨다. 허리를 구부려 케이스 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목에 걸치고는 그곳에 조그만 하모니카를 끼워 넣었다. 조금 뒤 연주와 노래가 시작되었다.

‘맙소사!’

그가 부른 첫 번째 노래는 나도 레퍼토리로 삼고 즐겨 부르는 ‘Mr. Tambourine Man’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밥 딜런을 따라잡고 흉내 내기에 급급한 수준이었다면 그는 밥 딜런의 노래들을 자신의 목소리와 개성에 맞게 소화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본문 82쪽, ‘르 실랑스, 임용환과 김민기’ 중에서)

청년 정태춘과의 만남

“안녕하세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렇게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왠지 정감이 느껴지는 얼굴의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아까 전화 드린 정태춘입니다.”

검은색으로 물들인 군복 상의에 국방색 '당꼬바지', 검정색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커피가 나오는 사이 그는 자신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고는 그동안 자신이 쓴 곡들인데 한번 봐 달라며 누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바람 불던 동구 밖에 겨울빛은 사라지고 아지랑이 피어나는데... (‘봄’ 중에서)‘
-’잎 떨어진 나무에 바람이 불고 늘어진 가지 위엔 연이 걸렸네. (‘겨울 나무’ 중에서)‘
-’해 걸린 고갯마루 바람이 불면 설익은 보리밭이 출렁거린다. (‘보리고개’ 중에서)‘
-’기다리지 않던 비 몹시 내리고 가뭄에 마르던 둑이 터...(‘장마’ 중에서)‘
한 곡 한 곡 소름이 돋았다. (본문 103쪽, ‘도두리 청년 정태춘’ 중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넥타이 두 개를 앞뒤로 묶어 매듭을 만든 뒤 천장에 걸고 목을 매달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살조차 내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찌지직’ 소리가 나면서 넥타이가 둘로 나뉘어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엉덩방아만 찧었다. 중대한 결심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술이 약한 나는 그날 밤 밖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돌아왔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다시 머리를 굴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그러다가 갑자가 아까 마신 소주가 생각났다.

‘아! 그래, 그거다. 그렇게 해보자.’

다음 날 아침 교포 간판업자를 찾아 ‘소주나라’라고 적힌 새 간판을 주문했다. 광고디자인도 직접 했다. 메인 컷은 삶에 지쳐 술에 취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고속도로 위를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마치 옛 서부영화 ‘스톤’의 포스터를 연상케 했다. (본문 229쪽, ‘소주나라 집 딸들’ 중에서)

오! 전유성

아버지 생전의 별명은 오뚝이였다. 사업에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고, 그 성공률은 80프로를 넘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는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시도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성공률은 늘 20프로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곳간에서 곶감 빼먹듯 해 어느새 주머니의 바닥이 보일 무렵 거처를 장안동에 있는 고시원으로 옮겼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또 다시 사단이 날 판이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해 먹고사나 궁금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인사동으로 갔다. 개량 한복을 파는 집 앞을 지날 때 ‘이런 집은 자본이 얼마나 드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념품 파는 상점 앞에 서서 ‘야, 재고가 엄청 많구나’, 꿀타래 같은 먹거리를 파는 가게를 보면 ‘저건 하루에 얼마나 팔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슬슬 걸어갔다. 그때 앞쪽에서 “어머, 양병집!”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문 237쪽, ‘오! 전유성’ 중에서)

▲ 홍대앞 홍익문화공원에서 필자와 함께, 2013년

저주받은 걸작, 데뷔 음반 ‘넋두리’

1. 서울 하늘 보고 싶어서/서울 하늘 보고 싶어서/서울 하늘 보고 싶어서/무작정 올라왔소/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이것저것 구경하면서/길거릴ㄹ 돌아다녔소/무슨 사람 그리 많은지/무슨 타가 그리 많은지/무슨 집이 그리 많은지/내 안경이 졸도했다오.

2. 나도 돈 좀 벌고 싶어서/나도 출세 좀 하고 싶어서/일자리를 찾아봤으나/내 맘대로 되지 않습디다/나는 내일 떠날랍니다/나는 내일 떠날랍니다/이른 아침 기차르 타고/내가 살던 고향으로/두 번 다시 안올랍니다/두 번 다시 안올랍니다/화려하고 마리 복잡한.서울 하늘 밑으로/헤헤헤이 오우 허허 오우/오우 허허 오우 노래나 불러보자. -서울 하늘(양병집 개사, 편곡, 노래)

‘내 안경이 졸도할만한 서울에 올라와 나도 한 번 돈 벌고 싶어 헤매다녔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더라’는 푸념은 1970년대 이농(離農)의 드림과 좌절이다. 그럼에도 ‘노래나 한 번 불러보자’는 식의 자조 섞인 넋두리가 바로 70년대 젊은이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연약한 몸을 가누면서/참다 참다 쓰러져간 아름다웠던 꽃송이야/누구 위해 태어난 꽃송이던가/누구 위해 자라온 꽃송이던가.

잃어버린 전설 속에 사라져간 꿈을 안고/그늘 속에 피다 지친 아름다웠던 꽃송이야/누구 위해 태어난 꽃송이던가/누구 위해 자라온 꽃송이던가. -잃어버린 전설(양병집 개사, 편곡, 노래)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참다, 참다 스러져간 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른바 최루탄 가득한 거리에서 이미 사라진 젊은이들을 애도하는 노래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동시에 70년대 초 사회 전반에 드리웠던 월남 파병문제, 그리고 산업화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 -박성서, ‘서울신문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70년대 3대 저항가수 양병집[2]’, 2007년 6월 10일 자. (본문 100쪽, 101쪽 데뷔 음반 ‘넋두리’ 중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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