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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신드롬
2009년 01월 02일 (금) 15:21:43 이종현 기자 jh@

“주가 500까지 떨어진다. 기업의 60%가 도산하고 이 중에는 30대 그룹도 포함돼 있다. 부동산은 반토막이 나고 일본자본이 한국을 잠식할 것이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얘기다. 이런 일들이 과연 현실에서 실현 가능할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아이디(ID) ‘미네르바’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 세제개편 브리핑을 하고 있는 재정기획부 강만수 장관

세계적 금융위기가 가시화되던 때 국내 굴지의 투자회사 대표는 “지금의 위기는 심리적 요인과 루머로 인해 다소 과장되었다. 오히려 지금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때이다”라며 펀드 가입을 부채질 했다. 이때가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9월 금융위기설의 도래로 국내 금융환경이 파국적으로 치닫고 있던 때이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 그 자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후 지난 11월 말,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씨티그룹이 부도 위기에 내몰린다. 미 연방정부는 200억 달러를 긴급 수혈하고 3천억 달러 보증을 선다며 불끄기에 분주했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내에 부자가 된다”며 주식투자를 독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종합주가지수 1000선에서 지루한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국내 금융 시스템은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로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실물 경기는 본격적으로 침체하여 고용 창출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집권 첫 달 고환율 정책을 시작할 때부터 보여준 거꾸로 된 상황 인식을 더 보여줄 것이 있는 양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극에 치달았을 때 근거 없는 낙관과 안이한 대처로만 일관하던 정부와 경제 관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일지매’가 등장한다. 그가 바로 현 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으로 치달을 즈음, ‘다음 아고라’에 등장해 거침없는 발언과 예리한 경제 예측으로 대한민국은 이른바 ‘미네르바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다음 아고라는 내년 상반기 경제분석과 전망을 논하는 자리로 변해 대립된 양방 간의 논쟁이 뜨겁다.
   

네티즌이 열광하는 이유
그는 지난 3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한국에 미칠 영향과 산업은행이 인수하려던 리먼브러더스의 부실화를 날카롭게 지적해 이른바 ‘미네르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그를 추종하는 네티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경제는 그의 예측대로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상황을 맞았다.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금융 현실은 그저 황당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전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IMF 환란 이후 10여 년 동안 잘 흘러가고 있던 경제 흐름이 모조리 상식을 벗어나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은 성립은커녕 대립 양상이란 표현이 적당하다. 내로라하는 경제계 인사들의 말은 하나둘씩 빗나갔다. 도대체 어떤 것이 현실이고, 누구 말이 맞는지 구분이 안 되고 있다. 말 그대로 심리적 공황 상태를 겪고 있다 해야 빠를 것이다.

불과 며칠 만에 반토막난 주식과 펀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락한 부동산값. 환율과 금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물가마저 그 천장이 어딘지 모르게 치솟고 있다. 가계와 기업 모두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 수출과 소비는 모조리 급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른 실물 경제 위기로 고용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왔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은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다. 바로 미네르바가 이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에 그는 신드롬이 된 것이다.

미네르바… 정부에는 눈엣가시?
하지만 네티즌과는 달리 정부는 발끈하고 있다. 문제는 미네르바가 “한국 경제는 ‘소비의 핵겨울’에 돌입했고, 이제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2010년 전까지 주식은 쳐다보지도 말아라” 등의 일관된 비관적 입장을 피력함에 따라 정부 정책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네르바를 찾아 나섰고, 살해 위협을 받았다며 절필을 선언한 미네르바는 잠적했다. 미네르바와 정부의 숨박꼭질이 시작된 것이다.
강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미네르바를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포털사이트에서 이름을 날리며 정부의 정책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네르바’에게 정부 방침을 설명하거나 자료를 제공하는 등 소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적절한 비판은 수용하겠지만 잘못된 통계 인용이나 근거 없는 비판에는 정부 입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끝장 토론이라도 하고 싶은데, 정부가 인터넷의 자유로운 토론을 방해한다고 비판할까 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며 “미네르바에게 연락할 수 있는 채널도 없어 정부로서는 반박을 하는 데 고충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초 입장과는 달리 정부는 그의 신원 파악에 나섰고 최근 IP추적 등을 통해 그의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수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압력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청와대나 강 장관에게 미네르바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재 미네르바는 살해위협을 느꼈다며 절필을 선언한 잠적하다 재개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정부당국의 내사가 진행되면서 최근 인터넷상에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정부도 ‘미네르바’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경우 네티즌들의 반발이 커질 것을 의식, 그가 활동을 자제할 경우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쯤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IMF 환란을 겪기 바로 전인 1997년 “주가가 300선 밑으로 폭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애널리스트. 쌍용증권 이사로 근무하며 한국경제의 위기를 예측했던 ‘스티브 마빈’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자극적 표현으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알렸던 그였지만, 돌아온 것은 ‘해코지’뿐이었다. 예측이 정확하게 일치하면 할수록 영향력이 커져 정부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이유였다.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디플레로
미네르바의 예측과 전망이 모두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미네르바가 예측한 대로 2008년 상반기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분위기는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 공포로 바뀌고 있다. 물론 논란이 일어 활동 자체를 중단한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10월 물가 상승률이 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D의 공포가 확연해지고 있다. 한국은 환율 때문에 이를 실감하지 못할 뿐이지만 경향적으로는 디플레이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상황이 나아진 게 아니라 더 심각한 국면으로 가고 있다.
미네르바의 예측 자체가 정확히 들어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세계 경제가 그 향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 거리기 때문에 진실을 호도하려는 세력보다 미네르바의 말 한 마디에 귀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마저 지난 10월 골드만삭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에 자신 있게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고 있는 상황에 오히려 낙관론을 펼치며 장려하는 세력이 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만큼 누구도 경제의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예측능력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시스템 대안 찾기는 미네르바 몫 아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은 그 기능이 정지된 상태나 다름없다. 기능이 정지된 현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식의 금리 논쟁이다. 지금은 금리 조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미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경제 시스템이 변형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해서 보수세력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지 않고 허위와 임기응변으로 국민을 실망시킨다면, 진보세력이 구체적 사실 속에서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당위를 반복한다면 미네르바와 같은 아고라의 논객들이 네티즌의 우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돼” vs. “근거 있다”
경제 논객 미네르바의 예언은 경제 전문가들이라 자처하는 각 증권사에서도 의견 대립이 분분하다.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가십거리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는 극단적인 의견도 있다.

미네르바는 부동산 값이 폭락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500선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코스피 1차 저점은 820선, 2차 저점은 500선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예고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500선 밑이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떨어진다는 얘긴데 몇몇 기업들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IMF 체제를 겪으며 국내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탄탄해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전망”이라고 잘라 말했다. 모 경제 연구원은 “시장에 대해 너무 한쪽에 치우쳐 판단하는 성향이 있다”며 “경기가 좋을 때는 달콤한 시장 분석이 많지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 다들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라며 반박했다. 반면 코스피 500선이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900선까지 떨어졌고 내년 경기하강의 폭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500선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경제 연구원은 “외환위기 때는 원화만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달러의 문제 즉 전 세계적인 문제로 리스크가 더 크다”며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500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나는 천민의 눈으로 경제를 보는 현실주의자”라며 “망상에서 깨어나 내가 천민인지, 평민인지, 귀족인지, 각자 자기 계급을 빨리 깨닫고 현실적으로 살자”라는 말하는 미네르바. 그는 네티즌들에게 ‘공부하라’고 충고하며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와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등의 책을 추천했다. 그가 권한 책들은 이미 각 서점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미네르바 신드롬’이 단순 해프닝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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