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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른다?
결혼 후 가정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2010년 01월 11일 (월) 01:04:46 윤일우 전문기자 illwoo@newsmaker.or.kr

대부분 집착에서 오는 가벼운 폭력행위는 사랑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정도가 심각하고, 심한 경우 결혼 후 가정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서로 주의가 필요하다. 데이트 도중에 강간, 성추행, 성희롱, 스토킹 등 성폭력이 일어나는 빈도가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데이트 폭력 실태 조사 및 토론회’를 열어 국내 데이트 폭력의 현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내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데이트 폭력 수준은 심각
   
‘데이트 폭력 실태 및 대처 방안’을 주제로 발제한 문채수연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에 따르면 2007-2008년 이뤄진 총 954건의 성폭력 피해상담 가운데 가해자가 데이트 상대자인 경우가 275건(25.3%)으로 최다로 집계됐다. 직장관계자 172건(18.0%), 모르는 사람 94건(9.8%), 친인척 87건(9.1%)이 뒤를 이었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 유형으로는 스토킹 156건(56.7%), 신체적 폭력 55건(20%), 강간 47건(17.1%) 순이었고, 피해 연령은 20대가 135건(49.1%), 30대 51건(18.5%), 40대 18건(6.5%) 순이었다. 데이트 폭력이 20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지역 11개 대학의 796명(여성 61.85%, 남성 38.2%)을 대상으로 벌인 ‘서울지역 대학생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도 함께 공개했다. 조사는 설문 조사 방식으로 지난 9월 29-10월 29일 이뤄졌고,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22.3세다. 정서적, 언어적, 신체적, 성적 폭력 등 4개 범주로 구분해 데이트 폭력 경험 유무를 묻는 질문에 정서적 폭력은 여성 77.8%, 남성 69.4%, 언어폭력은 여성 61.4%, 남성 59.3%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신체적 폭력은 여성 32.7%, 남성 41.5%가 경험했다고 답변, 예상과 달리 남성의 응답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명중 4명꼴로 음담패설,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 성관계 강요, 강간 등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내 기분에 관계없이 키스한 적이 있다’(여 24.2%, 남 17.3%),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가슴과 성기를 만진 적이 있다’(여 15.6%, 남 6.2%), ‘성관계를 강요받았다’(여 12.1%, 남 6.6%) 등의 응답이 많았다. 성폭력이 있었지만 관계를 유지한 이유에 대해 여성 응답자의 절반은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어서’라고 대답한 반면, 남성의 45.9%는 ‘사귀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므로’라고 대답해 남녀간 인식차를 드러냈다. ‘서울지역 대학생 데이트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폭력을 경험한 뒤 가족, 친구, 선배 등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한 비율은 남성은 항목 별로 17% 안팎으로 편차를 보이지 않았지만, 여성의 경우 정서적(43%), 언어적(56.7%%), 성적(29.5%), 신체적(36.6%) 폭력 등 항목 별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문채수연 소장은 “이런 결과는 폭력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데이트 상대라는 이유로 폭력으로 인지되기 어렵고, 관련법이 없어 처벌조차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은 여타의 폭력과 달리 폭력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는데 여러 지점에서 저항이 있다”고 지적했다. ‘친구가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헤어지라고 조언한다’는 문항에는 여성 79.8%, 남 58.6%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둘 사이 문제이므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여성 2.6%, 남성 18.2%로 집계돼, 역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대응 방식에도 남녀간 차이가 있음을 드러냈다. 응답자들은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한 캠페인’ (56.1%), ‘스토킹처벌법 마련’(19.1%), ‘데이트폭력 예방교육’(9.9%), ‘성평등강좌 증설’(9.2%) 등을 꼽았다.

모든 폭력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돼
한 웹사이트 조사에 의하면, 폭언이나 폭행을 당해 본 커플 중 58.3%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고 나온다. 즉, 연인을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폭언, 폭행을 당했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데이트 폭력의 실태’를 조사 중인 부산여성의전화 문태연 국장은 “연애할 때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가볍게 머리를 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폭력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
   

특히 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원인을 타인의 잘못에 전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 데이트 폭력 수치에 대한 통계자료조차 없다. 부산여성의전화의 이 일에 대한 관심은 가정폭력 상담 프로그램에서 출발한다. 지난 10여 년 간 가정폭력 상담을 진행해 온 이 단체는 상담을 의뢰한 부부 중 상당수가 결혼 전부터 이 같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피해자들은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 정도로 생각했고 결혼하면 문제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 달리 결혼 후 폭력은 더 심해졌고 결국 상담소에 도움을 청하는 수준까지 왔다. 부산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을 막기 위해서 그 뿌리가 되는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차원에서 지난 7월부터 데이트 폭력 사례 공모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 파악에 나섰다. 여러 상담사례 중에는 실제로 성관계 사진을 동아리 방에 유포한 사례도 있었고, 스토킹, 전신 폭행, 둔기사용 등 다양한 폭력의 형태가 보고됐다. 데이트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하지만 폭력 정도는 ‘사랑하니까’하고 넘어가기에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산 여성의전화에 접수된 성폭력 상담건수 가운데 6.7%가 데이트 폭력에 관한 상담이었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데이트 중 강간까지 포함하면 건수는 더 많을 걸로 추정된다. 또한 상담소까지 오는 사례는 대부분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수준을 넘었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데이트 폭력으로 고통을 겪는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이라는 것이 부산 여성의전화 측의 설명이다. 대학생 280명을 대상으로 벌인 한 논문의 조사에서도 남자 대학생의 46%, 여대생의 32%가 연애 중 어떤 형태든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한국 여성의전화가 가정폭력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피해 여성의 15%정도가 결혼 전에도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데이트 폭력이 결혼 후 가정폭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여성의전화 허지영 성,가정폭력상담센터장은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상대로 상담을 하다보면 결혼 전부터 폭행을 당한 경우가 많다”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다가 더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깨를 치거나 머리를 가볍게 때리는 등 사소한 폭력 징후가 나타났을 때, ‘장난으로’ 또는 ‘사랑하기 때문에’라며 넘어가기 보다는 단호하게 중지를 요청하는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허 센터장은 “또 폭력이 이미 도를 넘은 경우는 이를 숨기려 하면 안 되며,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여성의 전화와 같은 전문 상담기관이나 심각할 경우 경찰 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등감 있는 남성이 데이트 폭력 가능성 높아
한편 데이트 중 여자 친구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젊은 남성은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어린이 병원의 엘리자베스 밀러 박사팀은 여자 친구를 학대하는 청소년이나 젊은 남성과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미국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데일리 등의 보도에 따르면 밀러 박사팀은 보스톤 중심에 거주하는 14~20세 소년 19명을 인터뷰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8년에는 보스톤 지역의 825명의 젊은 남성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 연구 대상자들은 여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경험이 있었다. 연구팀이 이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적 요소를 분석한 결과 친밀한 데이트 파트너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남성은 가정에 문제가 있거나 학교에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제대로 위로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또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자를 학대하는 행동에 고무되거나 사회관계 속에서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그동안 데이트 파트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성에 대한 연구는 주로 여성에 대해 전통적인 시각을 갖는 태도 등 개인적인 특성에 주목했었고 파트너에게 폭력적인 남성 중 젊은 남성에 관한 정보도 부족했다. 밀러 박사는 “젊은 남성의 데이트 중 폭력이 개인적인 원인을 넘어서 주변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이번 연구 결과는 공중 보건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며 “사회 환경적인 요소 중 어느 하나가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주므로 그것들이 젊은 남성의 행동에 미치는 복잡한 상호작용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특성화된 자녀교육 프로그램이나 멘토십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것이다”며 “이런 예방 프로그램은 스포츠 현장이나 가족 계획 클리닉 등 젊은 남성이나 부모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에서 진행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남자가 위험하다
데이트 폭력 사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상대방이 사귀기 시작할 때까지는 너무 친절했다는 점이다. 보통의 남자들과 달리 자상하고 섬세하고 모든 분야에 관심을 보여줬다. 의심이 되는 내용이 있으면 그때부터 취조가 시작되며 폭력 상황까지 가게 된다. 두 번째 폭력 가해자들의 경우 폭력을 행사한 후 시간이 지나면 한없이 불쌍한 모습으로 용서를 구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잡아둔 후 다시 폭력과 용서의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세 번째 피해자 본인의 의지로는 관계를 절대 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관계를 끊을 수 있고 후유증이 아주 심하다.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폭력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정신분석학자 마리 프랑스 이리고양은 폭력 가해자들은 폭력이 시작되기 전 준비 단계인 ‘도착적 유혹의 단계’를 거친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유혹하고 환심을 끌어 나중에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에게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명 ‘바보 만들기’ 단계로도 불리는 과정이다. 데이트 폭력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내가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 폭력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흔히 동원되는 수법이 과도한 친절과 성적인 접근이다. 부산여성의전화는 질투심과 소유욕이 강한 사람, 자신의 잘못을 두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 욱하는 성질이 있고 예민한 남자, 예전에 폭력을 행사했거나 경험한 사람, 술버릇이 좋지 않은 사람, 데이트 상대의 행동에 너무 많은 요구와 간섭을 하는 사람, 너무 빨리 스킨십을 요구하거나 성관계를 강요하는 사람, 동등한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등이 데이트 폭력의 성향이 높다고 덧붙였다. 데이트 폭력은 첫 폭력이 일어났을 때의 대응이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하게 느껴지는 경우라도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단 폭력이 일어났을 때 단호히 폭력 상황에 대해 따져야 하며 상대방이 공격 성향이 있다면 상담소 등의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평소에도 데이트 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며 폭력 상황에 대해 무조건 숨기지 말고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의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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