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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혼인빙자간음죄
혼인빙자간음죄 위헌에 따른 간통죄 향방은
2010년 01월 11일 (월) 00:56:33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혼인빙자간음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앞으로 결혼을 빙자해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남성은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지언정 형사처벌은 받지 않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월 26일 “부모님께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A씨 등이 “혼인빙자간음죄를 규정한 형법 304조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사건에 대해 재판관 6(위헌)대3(합헌)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1953년 등장한 혼인빙자간음죄
   
▲ 헌법재판소의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결로 머지않은 장래에 간통죄 조항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 영역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혼인 여부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해 여성 본인이 책임을 져야할 문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혼인을 빙자해 간음한 자는 가정, 사회, 직장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비난과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 당연하기에 개인 간 사생활에 속하는 이런 행위까지 일일이 추적해 형법이 간섭할 필요도 없다는 견해도 내놨다. 다시 말해 성인 부녀자의 성적인 의사결정에 폭행, 협박, 위력의 강압적 요인이 개입하는 등 사회적 해악을 초래할 때에만 가해자를 강간죄 또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등으로 처벌받게 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녀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밖에 “목적과는 달리 남성을 협박하거나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僞計)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 우리나라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나라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가 등장한 것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다. 모태는 통일 전 서독 형법의 ‘사기(詐欺)간음죄’다. 우리나라 혼인빙자간음죄는 1975년 3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5000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한 차례 개정됐고 1995년 현재의 모양새를 갖췄다. 하지만 정작 원조격인 독일은 1969년 이를 폐지했다. 현재는 미국의 일부 주와 터키, 쿠바, 루마니아만이 혼인빙자간음을 처벌한다. 1995년 형법 개정 때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지됐다. 2002년 헌법소원 때도 헌법재판소는 7대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간 폐지론자들은 법이 제정된 시기엔 여성의 처녀성이 매우 중요시됐고, 여성의 사회활동도 극히 제한됐지만 오늘날은 그와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여성부마저도 헌법재판소에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을 성적 예속물로 보고 있다”면서 “여성을 비하하고 정조, 순결을 우선시하는 관념에 기초한 것”이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

혼빙간으로 처벌받은 이들은 재심통해 무죄판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1953년 법 제정 이후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받은 모든 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장의 수혜자는 적을 전망이다.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되는 사건은 한 해 수백 건에 이르지만, 실제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혼인빙자간음죄 고소사건은 2004년 762건, 2005년 683건, 2006년 709건, 2007년 585건, 2008년 556건, 올 들어 7월말 현재 285건이 접수되는 등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들 중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006년 41건, 2007년 33건, 2008년 25건에 불과했고,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같은 기간 각각 10명 이내였다.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대부분도 사기사건 등과 함께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다. 단순히 혼인빙자간음죄만으로 처벌받은 경우는 극소수라는 이야기다. 남자가 내세운 결혼 의사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여성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여성부는 “국가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의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두나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법 자체가 너무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성보수주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성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은 옳다고 보기 때문에 위헌 판결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최김하나 활동가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에 대한 정조 관념을 양산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헌재의 위헌 결정에 환영한다”면서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번 결정으로 발생될 수 있는 사기 피해에 대해서는 법의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헌재의 이번 판결로 혼인빙자간음죄와 함께 폐지 논란이 일었던 간통죄도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국가가 개인 간 사생활에 속하는 성적 행위까지 일일이 추적해 간섭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간통죄는 혼인빙자간음죄와 다르다. 혼인빙자간음죄의 경우 주체를 남성, 객체를 여성으로 명시했지만, 간통죄는 남녀 모두 주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죄는 부녀(婦女)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간통죄는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한 가정과 사회규범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혼인빙자간음죄는 미래에 발생 가능한 혼인에 간접적인 관련이 있을 뿐 혼인과 가족생활의 유지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 그러나 간통죄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법무부와 관련 학계 등이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까지 간섭해선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같은 취지로 형법 개정안을 마련 중인 상황이라,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간통죄 폐지론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법무부 등과 함께 개최한 공동학술회의에서 내놓은 형법 개정안에는 그간 논란이 됐던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가 삭제됐다. 대신 강요나 협박 등에 의해 제3자의 성추행을 받아들이거나 성관계를 하도록 할 경우 가중 처벌하는 ‘성적 강요죄’가 신설됐다.

혼빙간으로 처벌받은 이들의 보상은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면서 이 법 때문에 옥살이 중이거나 옥살이를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보상받는지가 관심거리다. 결론부터 말하면 혼빙간만으로 처벌받았으면 보상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사기 등 다른 죄랑 함께 처벌받았다면 미미한 금액만을 받거나 아예 못 받을 수 있다. 혼빙간만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해당 판결을 내린 법원이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면 형사보상청구를 할 수 있다. 단 보상청구는 무죄판결 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해야 한다. 법원은 보상청구를 접수하면 관련자 의견을 듣고 난 후 보상 규모를 결정한다. 옥살이 1일당 최저한도 보상금액은 5000원이다. 1일당 상한은 혼빙간으로 옥살이를 한 시기의 평균 일수입의 다섯 배다. 가령 A씨가 2009년 1월 옥살이를 시작하고 그때 평균 일수입이 5만원이었다면 A씨가 보상받을 수 있는 1일 금액은 5000~25만원이다. 법원은 여기에 A씨가 옥살이 기간에 받은 고통, 죄질, 건강악화 정도 등을 종합 판단해 결정하게 된다. 보상액이 결정되면 해당 법원과 인접한 관할 검찰청에 보상결정서와 보상지급청구서를 제시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 혼빙간으로 벌금형이 선고돼 벌금을 납부한 사람은 이미 납부한 금액에 납부일로부터 보상 결정일까지 일수를 감안한 이율을 곱한 금액을 보상받게 된다. 재판까지 가지 않고 구금돼 조사 중이던 피의자는 법원이 아니라 조사를 받던 해당 검찰청에 직접 보상을 청구하면 된다. 보상액은 해당 검찰청 예산에서 나온다. 문제는 다른 죄랑 경합돼 처벌받은 경우다. 예를 들어 B씨가 살인과 혼빙간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모두 복역한 후 재심을 거쳐 보상청구를 했을 때 기준이 애매하다. ‘살인으로 6년6월, 혼빙간으로 6월 살고 나왔다’이런 식으로 나눌 수가 없다. 형을 선고할 때는 산술적으로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판단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또 1일당 최저~최고한도 보상금액 기준도 적용되지 않는다. 죄질이 안 좋은 경우는 아예 보상청구가 기각될 수도 있다.

혼빙간 위헌 판결에 찬반 논란 거세
혼인빙자간음을 처벌토록 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면서 누리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11월 26일 혼인빙자간음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임 모씨 등 2명의 남성이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고, 이는 지난 2002년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에 그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의 이 같은 결정은 혼인빙자간음 법률 조항이 남녀평등에 어긋나고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고 있으며, 또한 개인의 성행위는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으로 국가는 최대한 간섭과 규제를 자제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헌재의 혼인빙자간음죄(혼빙죄) 위헌 판결을 놓고 현재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다음 아고라 게시판과 각종 블로그에 누리꾼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으며 공방을 펼치고 있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누리꾼 ‘옥슨09’는 “이 법은 어찌됐든 남자만 처벌하는 경향이 많다. 혼인빙자간음죄도 그렇고 성매매도 그렇고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면서 “손바닥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것인데, 같이 소리를 내고도 왼손 혹은 오른손만 처벌하는 것은 남녀평등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남녀 형평성을 들어 헌재 판결에 찬성입장을 보였다. ‘하얀악마’ 역시 “현재 사회는 남성의 성욕만을 과도하게 억제시켜왔다. 성 관련 책임을 전부 남자가 져오면서 그간 남자는 이러한 억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누리꾼 ‘너를보내며’는 “혼빙죄는 오히려 여성을 깔보는 법이었다. 여성 스스로 남자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법”이라며 법 자체가 여성을 나약하게 보이도록 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누리꾼 ‘입영’은 “누구나 행동에 의한 자율성과 그에 수반한 책임이 따르는데, 그 행동이 사랑과 성의 자기결정권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엄연히 사적인 부분에 속하므로 법은 그 사랑과 성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판단할 수 없다”면서 “(헌재의) 혼빙죄 위헌판결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의 혼빙죄 위헌판결에 절대적인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누리꾼들도 적지 않았다. 아고라 자유게시판에 누리꾼 ‘웃긴다’는 “여성이 범죄행각을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해 입은 피해에 남자는 사기죄로 보호받을 수 있다”면서 “사회적 관습이 남자의 성에 대한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고…생물학적으로 분명히 남녀가 다르니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서술했다. ‘우주인짱’이라 밝힌 한 누리꾼도 “남자는 사회적 통념에서 성에서 자유로우니 여성에 대하여 보호조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헌재의 이번 판결을 비난했다. 누리꾼 ‘혼빙죄지속’은 “혼인을 빙자할 경우 정신적?신체적 피해와 금전적 피해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피해자들은 어디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하느냐”며 헌재의 위헌 철폐를 촉구했다. 한편 누리꾼 ‘프른비’는 “혼빙죄가 여자를 보호해 주는 법이라 위헌이면 동일한 선상으로 간통죄도 위헌법으로 폐지해야 마땅하다”면서 “간통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국가가 침해하고 자동이혼으로 가정을 파탄시킬 뿐, 결국 간통죄의 합헌은 불륜방지법이 아닌 합의금을 위한 민사상 재산분할권으로 전락하기 쉬운 가정해체법”이라면서 헌재의 위헌판결 근거가 간통죄에도 수반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기독교계는 헌재 결정에 대해 대체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는 “성적 윤리가 문란해지고, 파괴되는 현실 속에서 혼인을 빙자해 간음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성관계는 혼인의 틀 안에서 이뤄질 때 정당하다”고 말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양세진 사무총장도 “포기해서는 안될 가치들은 지켜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 결정을 찬성할 수 없다”며 “다만 사회가 변했고, 교회와 사회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반대, 혹은 찬성에 앞서 보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부 관계자는 “이 법이 범죄의 객체를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하고 있어 남성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고, 부녀를 미성년자·심신미약자 등과 같이 자신의 성적 의사결정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할 여지가 있어 이 법조문을 개정하는 정도를 바랐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가부장적 관념에서 여성을 수동적 객체로 전락시켜 보호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대착오적인 법이었으며, 상담현장에서 지켜볼 때 실효성도 없던 법이어서 폐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법에 의해 보호받았던 여성들이 소수라 해도 이들을 위한 대안 마련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남녀가 평등하게 향유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할 때 혼인빙자 간음에 의한 피해를 보는 여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들도 이번 위헌 판결에 주목
한편 지난 11월 혼인을 빙자해 간음한 남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AP 등 외신들이 관심을 보이고 일제히 보도했다. AP는 “한국은 서양문화가 들어온 이후에도 여전히 유교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하면서 “지난해 간통죄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고 소개했다. 그만큼 이번 결정이 파격적이었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한국여성의 권리를 위한 주요 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는 ‘혼빙간음죄가 여성의 권리 뿐 아니라 순결도 보호해주지 못해왔다’고 말하며 헌재의 이번 결정에 만족했다”고 전했다. 형법 304조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속임수로 음행의 상습이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혼빙간음죄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여성부는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한 것은 여성 비하로 이어질 수 있어 남녀평등에 어긋난다며 폐지 입장을 보여 왔다. 헌법재판소의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결에 대해 당초 혼인빙자간음죄의 존치 필요성을 주장했던 법무부 측은 수용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고 헌법해석기관인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며 이미 위헌 판결에 대비해 구체적으로 사건지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혼란은 없을 것”이라며 “7년 전에는 합헌이었는데 여성의 지위향상이라든지 여성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반대 입장을 취했던 여성부 조진우 정책총괄과장은 “이미 지난 8월에 이 법이 남녀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이 법이 피해 받는 여성들에게 보호의 도구로서 사용된 측면도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법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질적으로 여성을 미성년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폄훼해 왔다”며 “혼인빙자간음죄를 저지른 남성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과도하며 민사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일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타인을 속이거나 기망하는 자유라면 그것은 헌법에서 보호할 가치가 없는 자유”라며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 일반을 보호하기보다 소외계층 여성 등 성적인 자기방어가 어려운 특정 부류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 과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향후 간통죄도 사라질 가능성 있어
지난 11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혼인빙자간음죄는 사실상 사문화되어 잊혀가는 형벌규정이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조선시대·일제시대에도 없던 혼인빙자간음 처벌규정이 생긴 것은 한국전쟁(6·25전쟁)이 종결된 이후인 1953년이다. 1955년 제대한 해군 대위를 사칭(詐稱)해서 여성 70여명을 농락한 박인수(당시 26세) 사건이 가장 유명했다. 박 씨는 법정에서 “70여명 가운데 처녀는 미장원 종업원 한 명뿐이었다”라고 떠들어 파장을 일으켰고, 1심 재판부가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법원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貞操)만을 보호한다”고 판시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동란(動亂·한국전쟁) 이후 문란해진 성풍속’을 개탄하면서 당시 박 씨에 대한 처벌 여론을 감안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50여년 전에도 이 문제는 사회적 핫 이슈였던 셈이다. 박인수 씨의 경우 말고도 2000년엔 ‘명동(서울) 까페 주인 사건’이 있었는데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이른바 ‘상류층 자제’인 서울 명동의 까페 주인이 고객 등 여성 200여명과 성관계를 맺고, 그 가운데 50여명과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했다. 2007년에는 명문대 신문방송학과 출신, 방송사 프로듀서(PD)를 사칭한 성모씨가 전문직 여성 20여명을 농락한 사건도 있었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박물관’으로 가야 할 신세가 됐지만, 1980년대만 해도 검찰이 구속수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던 데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피해여성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7년 전 헌재의 판단이 있었을 때 여성계도 지금처럼 확연한 위헌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는 둘 다 개인의 내밀한 성적 사생활에 제약을 가하는 법 조항인 만큼 같은 범주로 묶어놓고 찬반 논란이 이는 경우가 많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2008년 10월 탤런트 옥소리 씨 등이 간통죄 위헌 소송에서는 합헌 결정한 반면 지난 11월 혼인빙자간음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으로 결정했다. 헌재는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죄가 실제로는 규율하는 대상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혼인빙자간음은 남성만을 처벌하고 여성을 객체로 둬 평등의 문제가 있지만 간통죄는 기혼 남녀 모두에게 같은 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것. 또 우리 헌법이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간통죄의 공익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간통죄로는 매년 평균 1천900명이나 기소됐지만 혼인빙자간음죄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연 평균 27명밖에 되지 않는 점도 큰 차이다. 하지만 개인의 성적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최소화돼야 한다는 논리가 점차 힘을 얻어가는 추세여서 머지않은 장래에 간통죄 조항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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