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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해적
2009년 01월 02일 (금) 14:49:30 권순영 기자 nan2288@newsmaker.or.kr

머지않아 할리우드에 ‘캐리비안의 해적’은 사라지고 ‘소말리아의 해적’이란 타이틀의 영화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꼽힌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화물선이 곡물, 비료, 시멘트 등을 싣고 소말리아 해안을 드나들고 있다. 위험한 곳일수록 운송비가 비싸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소말리아 해적의 ‘먹잇감’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왜 소말리아 해역은 해적이 들끓나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은 하루걸러 한 척의 배가 피랍될 정도로 연일 피랍 소식이 전달되는 해적들의 주무대이다. 소말리아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등의 상황과 맞물리면서 해적 활동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소말리아는 총 인구 6백만명 중 절반이 절대 빈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실상 멸망한 나라이다. 유엔의 식량 원조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데도 구호 선박마저 납치하는 바람에 식량 원조도 거의 끊긴 상태이다. 그나마 해적을 피해 겨우 상륙한다 해도 구호품은 다시 반군에게 약탈당하기 일쑤다.

소말리아 비극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약하나마 소말리아를 통치하던 중앙 정부는 그해 붕괴되었다. 통치권은 부족을 중심으로 한 영주들의 손에 들어갔다. 2006년 다시 재앙이 찾아왔다. 소말리아 대부분을 통치하던 ‘이슬람운동’이 알카에다와 연루된 것으로 판단한 에티오피아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소말리아를 침공한 것이다. 이슬람운동은 즉각 붕괴되고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이 정부는 군도 경찰도 갖추지 못한, 있으나 마나한 무력한 존재였다. 소말리아는 결국, 빈곤과 폭력, 내전이 뒤범벅이 된 무법천지가 되었다.

이처럼 소말리아 인근에서 피랍사태가 빈발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내전으로 인한 공권력 부재를 꼽을 수 있다. 내전은 군사 쿠데타 후 22년간 장기집권해 온 모하메드 사이드 바레에 대해, 군 장성 출신인 무하마드 파라 아이디드가 1991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촉발됐다. 이후 두 세력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이어지며, 군소 군벌들이 난립하면서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정부군은 사실상 수도를 제외하고는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혼란 상태를 틈타 나타난 것이 바로 해적들이다. 2004년 유수프 아흐메드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소말리아는 군소군벌이 지역별 권력을 장악한 춘추전국시대나 진배없다.
작은 마을의 어부들이었던 소말리아 해적은 이처럼 오랜 내전을 거치면서 첨단기기 및 기관총·대전차로켓포 등 중화기는 물론 위성전화 및 위성추적장비까지 갖춘 단련된 무장세력으로 거듭났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소말리아는 부족 간의 갈등이 워낙 뿌리 깊은데다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이슬람계와 과도정부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 군벌과 반군세력이 해적과 결탁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게 해적이 활개 치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실제 해양수산부 해양안전종합정보센터의 자료를 보면 소말리아 해역에서 2008년 9월까지 발생한 해적 피해 건수는 24건이며, 매달 3건의 해적 사건이 벌어진 꼴이다. 이는 전년과 비교했을 때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수송료 비싸 선주들 위험 감수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때문에 많은 선박이 소말리아 해역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납치사고가 가장 빈번한 소말리아 북단의 아덴만은 수에즈 운하가 있는 홍해로 가는 관문인데다, 아프리카 개별국가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길다. 특히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적의 경우 거리에 상관없이 공해상 멀리 떨어진 선박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어 그 위험이 더욱 크다. 해양수산부 해양안전종합정보센터 관계자는 “일반적인 해적사건은 단순한 절도, 강도 사건이 대다수이지만 소말리아 지역의 경우는 대부분이 납치”라고 말했다.

해적들은 이 같은 운송 여건을 악용, 반군단체의 비호까지 받아가며 약탈과 납치를 일삼는 것이다. 일부 군벌은 아예 일반 어민을 해적으로 고용, 피랍 선원들의 몸값을 벌어들이는 ‘인간 장사’까지 하고 있다. 덕분에 소말리아 해적은 처벌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커녕 오히려 더 과감해져 유조선부터 무기수송선까지 닥치는 대로 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해양안전종합정보센터 관계자는 “이 지역을 이용하는 선박의 대부분이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화물선”이며 “이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곳을 통해 수에즈 운하로 가는 것이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경유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이득이 되기 때문에 이곳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들어선 소말리아의 과도정부는 오랜 내전의 여파로 해군을 꾸릴 여력이 전무한 상태이다. 그렇다 보니 소말리아 내 영해 및 공해는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 이에 해안선 치안을 맡아온 미국과 최근 군사력을 동원해 납치된 여객선을 구출한 프랑스는 해적에 대한 군사적 해결 허가를 위한 유엔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해적들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우리에겐 무기뿐만 아니라 인질의 목숨까지 있다”며 비웃음을 날린다.

도청은 기본, 변신은 필수
화물 약탈보다 납치한 뒤 몸값 요구가 대세
2006년 소말리아 해역에서 미 군함과 해적선의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해적들은 “불법조업 어선을 단속한 것”이라고 우겼다고 한다. 때문에 IMB는 이 지역을 지나는 선박들에 “소말리아 해안으로부터 최소 150~200해리(약 280~370㎞)는 떨어져서 항해하라”고 조언한다. 또 해적들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소말리아 해안에선 무선통신 사용도 최대한 자제하라고 한다.

해적들은 큰 배보다는 소형 보트를 선호한다. 해적에게는 ‘기동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주로 볼보 엔진을 장착한 쾌속정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볼보스’라고도 불린다. 선적된 화물을 노릴 때는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해적 10여명이, 배 전체를 납치할 목적이라면 약 70여 명이 작전에 참여한다.

세관원이나 해양경비대로 가장해 손쉽게 승선한 뒤 해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30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근해에서 해적에 납치될 뻔했다가 총격전 끝에 해적을 제압한 북한 선박 ‘대홍단호’의 경우가 그랬다. 북한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배가 모가디슈 항을 출항하려는 순간 소말리아 정부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2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이후 ‘소말리아 경찰’이라며 7명이 승선해 함께 출항했다고 한다.

하지만 10마일(16㎞)쯤 가다가 이들이 갑자기 M-16 자동소총으로 위협하며 선장실을 장악했고, 자신들의 소굴인 하라데레 쪽으로 배를 몰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라데레는 지난 11월 4일 석방된 마부노 1·2호가 6개월간 잡혀있던 지역. 이런 정황은 해적들이 자체 정보망을 가동하는 것은 물론, 항구에서부터 관리들과 결탁해 다국적 선적들의 출항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통적으로 해적은 선박에 실린 화물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마부노 1·2호의 경우처럼 최근엔 선원들을 납치한 뒤 몸값을 요구하는 게 대세가 됐다. 해적들도 ‘현금’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 밖에 납치한 배를 항구로 몰고 가 빼앗은 뒤, 선체를 다시 색칠하고 서류를 위조하는 과정을 거쳐 되팔아 ‘수익’을 남기기도 한다.

해적의 천국, 소말리아
몸값뿐 아니라 정치적 원인도 작용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바라는 차원에서 일종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TFG)가 이슬람급진세력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TFG에 압력을 행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과도정부는 지난해 말 에티오피아군의 지원 아래 수도 모가디슈 등 전국을 장악한 데 이어 지난 7월께 부족사회인 소말리아의 국가화합을 위해 전국 차원의 대규모 회의를 개최했으나 반대파로 축출당한 이슬람법정(UIC) 세력은 이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과도정부는 UIC를 테러세력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해외에 빠져나간 UIC 지도자들도 TFG를 외세의 앞잡이로 규정, 대회에 불참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에티오피아군에 적대적인 토착 부족들과 UIC 잔당은 거의 매일 경찰서 등 TFG와 에티오피아군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가해 일반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 ‘아프리카판 이라크’ 양상을 띠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지역 군벌과 연계돼 있는 해적들이 단지 몸값을 바라고 선박들을 납치할 뿐 아니라 이런 정치적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약 5개 그룹으로 알려진 해적들은 각각 따로 활동하고 있으며 때때로 함께 움직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오랜 내전과 가뭄 등으로 인해 식량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해적활동은 지역 군벌과 주민들의 생존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소말리아의 과도정부는 한마디로 약체 중 최약체다. 그도 그럴 것이 반군의 테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로선 해적 활동을 종식시킬 자체적인 물리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가디슈에 대략 2천여 명의 우간다군이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으로 배치돼 있으나 당초 AU가 목표로 제시한 8천명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부티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군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경비임무를 펴고 있고 프랑스가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운반선을 호위할 군함을 파견키로 발표한 바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방안으로선 부족한 상태다. 골든모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이 이 선박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미국 군함이 소말리아 정부의 승인을 얻어 영해 내로 진입해 추격하기도 했으나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단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200마일 벗어나 항해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 그러면서 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해결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해안선 넓고 게릴라식 출몰에 완전 소탕 역부족

국제사회가 무작정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월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외국 군대가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국적 함정들은 유엔 식량 수송선을 호위하기도 하고 프랑스 특공대는 올 들어 해적들을 두 번이나 소탕했다. 그러나 광대한 해안선에서 게릴라식으로 출몰하는 해적들을 완전 소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무기 수송선이 납치된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약탈된 소형 무기들이 내전 중인 반군 손에 들어가는 경우이다. 가뜩이나 열세에 있는 정부군이 첨단 무기로 무장한 반군과 대항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그나마 해적들이 탱크를 하역할 장비나 기술이 없어 다행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으나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다.

소말리아가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에 주둔한 외국 군대도 철수해야 한다. 이 나라에는 현재 에티오피아군 7천명, 아프리카동맹군 2천2백명, 유엔 평화유지군 8천명이 있다. 이들은 정상 기능을 할 소말리아 정부가 들어서면 철수하게 되어 있으나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소말리아 국민의 태도도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있다. 당초 1천만명이었던 인구는 내전을 피해 도피하는 바람에 6백만명밖에 남지 않았다. 어쩌지 못해 남은 사람들은 그날그날 먹고사는 일 외에 나라의 장래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돈만 생기다면 반군이든 해적이든 상관없이 누구와도 내통하고 협조한다.
 
은거지의 모습
최근 소말리아 해적의 발호가 두드러지면서 이들의 은거지인 에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에일은 소말리아의 반자치 지역인 푼트란드주 주도 보사소에서 남쪽으로 400㎞ 떨어진 항구도시로, 피랍된 한국 화물선 ‘브라이트 루비’호가 정박되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과거 어업 전진기지 역할을 했으나 소말리아가 내전에 휩싸이면서 공권력이 완전히 사라진 해적 소굴로 변모했다. 이와 관련, 영국 BBC 인터넷판이 푼트란드주 당국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에일의 최근 모습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이 선박 나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에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 벌어진다. 넥타이를 매고 깔끔한 옷차림을 한 채 항구로 몰려가는 사람들로 갑자기 부산해지는 것. 휴대용 컴퓨터까지 소지한 이들 중에는 회계원, 협상 책임자도 포함돼 있다. 실제 아덴만 해상에 나가 선박 납치 임무를 수행하는 해적은 보통 7∼1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피랍 선박이 항구에 도착하면 50여 명이 배에 올라 경계에 나서고 다른 50여 명은 해변에 머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즉, 에일은 ‘해적 산업’을 위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는 피랍 선박의 선원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전용 식당도 생겨났다.

해적들이 피랍자 석방을 대가로 받아내는 몸값은 통상 30만∼150만 달러로, 지난 한 해 동안 소말리아 해적의 수중에 떨어진 몸값만 모두 3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푼트란드주의 연간 예산(2천만 달러)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이 돈은 고급 주택을 짓고 고가의 차량을 사들이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푼트란드주 당국자들과 해적이 서로 연계돼 있다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해적들이 풍부해진 자금을 바탕으로 고성능 무기와 쾌속선으로 무장한 채 구호물품을 실은 선박과 유조선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 관계자는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해적들이 유조선에 구멍이라도 내면 엄청난 환경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이 인질 석방 대가로 받은 돈으로 고급 자동차와 호화 저택을 구입하는 등 마피아식 호화 생활을 누린다는 점이다. 소말리아 정부 관리들은 이들에게 몸값을 주면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말하지만 자국민을 인질로 잡힌 국가로서는 돈을 주는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엔 관리들은 이제 소말리아 해적은 더 이상 소말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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