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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범국민적 인권수호운동 전개한 ‘인간 상록수’
2020년 11월 05일 (목) 00:35:35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인권은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일컫는 단어로, 주로 평등권, 생존권, 생명권이 꼽힌다. 유엔이 규정하고 있는 현대의 인권은 박탈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스스로 양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윤담 기자 hyd@

이성원 MG원세종새마을금고 전 이사장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성원 전 이사장은 국내 최초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림으로써 사회적 의식을 높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숭고한 봉사의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무적자 8만여 명 구제한 ‘무호적자 호적만들어주기’ 캠페인
6.25 전쟁의 상흔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부모형제를 잃고, 굶주리며 방황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모아 사랑으로 지도했던 이 전 이사장은 호적이 없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무적자들을 위해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펼쳐 8만여 명에게 구제의 길을 열어준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다. 1960년대, 국내 무적자 수는 12만 명에 달했다.

▲ 이성원

이성원 MG원세종새마을금고 전 이사장은 “병역기피자나 범법자 4만 명을 제외한 8만 명은 갖가지 사연으로 호적을 갖지 못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면서 “무적자들은 학교 교육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병역의 의무는 물론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도 못했으며, 자식을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고 부연했다. 이에 이성원 전 이사장은 호적이 없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무적자들이 처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1965년 12월10일 세계인권의 날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주창했다. 그리고 각 언론사뿐 아니라,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보건사회부장관, 서울시장, 각 시도지사 변호사협회장, 중앙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 등에 호소문을 발송했으며, 직접 플랜카드를 어깨에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거리 캠페인을 펼쳤다.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은 민간인으로서 무적자들에 대한 인권의식에 경종을 울린 최초의 범국민적 인권수호운동이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끌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언론사마다 앞 다퉈 보도하면서 그의 인권옹호 활동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신문 지면에는 ‘무호적 청소년들에게 호적을’이란 플랜카드를 어깨에 둘러멘 이성원 전 이사장의 사진이 함께 실리며 화제를 낳았다.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은 이 전 이사장 개인이 주도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성원 전 이사장이 무적자들에게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무호적자들을 사회 안전망에 들여놓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 결과 법무부로부터 무호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발표되는 등 유의미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또한 호적 정리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도 발급하게 하는 등 사회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도민증, 시민증으로 지역을 구분했지만, 1968년 10월 말부터 전 국민들에게 12자리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등 차별 없는 사회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성원 전 이사장은 법무부로부터 ‘인권 옹호 대상’을 수상했다.

나눔과 봉사로 인생길을 아름답게 만들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목숨 바친 철도영웅 故이영복 선생(국가유공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친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한 이성원 전 이사장. 그는 조치원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1960년대부터 보릿고개 시절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청소년 선도 및 자립을 위해 조치원역 대합실에 ‘청소년 상담소’를 설립했고, 1963년 BBS연기지부를 조직해 불우 청소년들을 각 기관, 유지 등에 결연을 맺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으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도왔다. 특히 1964년도에는 흑벽돌로 된 보육원을 설립해 자립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았다. 그 이름도 ‘희망원’으로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두닦이를 시작해 농사, 토끼·돼지 키우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등 각종 기술을 가르치며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토끼와 돼지, 닭 등을 무료 분양하기도 했다. 국가 보조금 없이 순수 사재를 털어 희망원을 운영하면서도 4H구락부 운동과 가축보급 운동도 펼쳤으며 학교 순회 선도 교육에도 앞장섰다.

1970년대에는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 합동결혼식을 열어 1,500여명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희망원생들이 부부의 연을 맺도록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이 전 이사장은 58년의 봉사 발자취를 담은 기록 사진집 <그늘진 곳에 희망을 보급한 58년의 찬란한 기록>도 출간했다. ‘인권의 날’을 기념해 출간한 이 사진집에는 지난 60년간 이성원 이사장이 소장해온 수천 장의 사진 중 180장의 보석 같은 사진을 담았으며, 흑백 아날로그의 감성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을 한 컷 한 컷 보정해 흑백 아날로그의 감동을 인쇄로 구현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정리해 인간 이성원의 인생 전시장이 영화 필름처럼 펼쳐지듯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은 물론 나눔과 봉사로 아름다운 인생길을 걸어온 그의 봉사정신과 희망원생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성원 전 이사장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말 힘들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젠 다 큰 희망회의 우리 자식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남은 일생도 이들과 함께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팔순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는 봉사 열정과 숭고한 인류애로,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는 이성원 전 이사장. 그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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