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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연예술의 큰 줄기를 만들어내다
2020년 07월 04일 (토) 00:35:05 황태일 기자 hti@newsmaker.or.kr

양혜숙 (사)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의 행보가 화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양혜숙 이사장은 우리의 전통과 현대 이론과 실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한국 공연의 큰 줄기를 만들어 온 인물이다.

황태일 기자 hti@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양혜숙 이사장은 독일 튀빙겐대학 철학부에서 독문학, 미술사, 철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67년부터 삼십 년 가까이 이화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78년부터 연극평론가로 활동했다. 1991년 한국공연예술학회를, 1996년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한 양 이사장은 한국공연예술원 초대원장을 거쳐 2008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오면서 1997년부터 최근까지 샤마니카 페스티벌, 샤마니카 심포지움, 샤마니카 프로젝트 등 연구와 실천을 통해 ‘한극(韓劇)의 정립과 우리 문화 뿌리 찾기’에 매진해왔다.

▲ 양혜숙 이사장

국내 연극문화의 혁신을 일으키다
양혜숙 이사장의 예술적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서울극평가그룹이다. 본격적인 연극평론의 서막으로 꼽는 서울극평가그룹은 1973년에 발족한 한극회를 모체로 1970년대 말 형성되었다. 당시 200자 원고지 5매 내외의 리뷰에서 20매로 대폭 늘어난 주간조선 연극란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양혜숙 이사장을 비롯해 이상일·이태주·유민영·한상철 선생을 연극사에서는 서울극평가그룹(1977년 발족)으로 묶고 있다. 1978년 3월5일 주간조선에서 시작된 이런 분량의 증가는 평론의 권위를 형성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다른 매체도 연이어 연극평론의 지면을 확대를 꾀했고, 1986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연극평론의 권위가 형성되던 1970-80년대는 남성 필진 일색이지만 관객의 상당수는 여성이었다. 이에 양혜숙 이사장을 비롯한 구히서·김방옥 선생 등 여성 평론가가 평론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지금은 연극평론 필진의 80% 이상이 여성으로 크게 역전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장르별 역할별 골고루 압도적으로 여성의 비중이 높아졌다.

양 이사장은 대학연극계의 활동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대학연극을 나눠본다면 신극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실험적인 무대와 상업성에 대항한 동인제 연극의 흐름을 고수하는 무대로 식별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 기성 연극계는 동인제 극단 방식에서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고, 상업성에 대한 요구가 차츰 커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성 극단과 대학 연극의 수준 차이가 점차 벌어지며 대학 연극은 연극계에 불어넣던 실험정신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었다. 1970년 전후해 이미 활발한 무대를 가졌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문리대 영문과에 뒤이어 독문과도 양혜숙 교수의 주도로 무대를 마련하게 됐다.

한극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총력 기울이다
지난 1991년 한국공연예술학회, 1996년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해 초대원장을 역임한 양혜숙 이사장은 한국유네스코 이사 및 감사, 한국독어독문학회장, 한국카프카학회장, 한국연극평론가협회장, 한국 ITI회장으로 활동하며 ITI 아태지역협회를 설립했다. 특히 1948년 출범한 국제극예술협회(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에 1958년 가입한 우리나라 ITI 활동의 역사엔 국제 연극계 흐름을 파악하는 등의 문화예술적 트랙과 더불어 정치·외교적 절박함이 하나 더 있었다. 1970년 말까지 북한에 비해 다소 불리했던 외교 관계국의 범위가 ITI 활동을 통해 상당부분 융통성 있게 확장될 기대가 있었던 것. 이에 양혜숙 이사장은 1981년 제3세계 연극제, 1997년 ITI 서울총회 유치를 통해 국내 연극계는 학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용되던 세계 흐름을 직접 조우하며 감당해낼 상당한 자신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어 2000년 ITI 아시아 태평양 지역협회를 발족, 2000년대 초반 연극 분야를 넘어 공연예술계 전방위로 아시아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국내에 자연스럽게 소개되면서 협업도 많이 이뤄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번역극의 홍수 속에서 전통의 맥락 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80년대의 연극은 다양한 실험의 연속이었다.

양혜숙 이사장은 한국공연예술원이 설립된 1996년을 전후로 전통문화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굿의 외연인 다양한 형식과 공통분모를 아시아적 샤먼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연극의 장르적 확장을 꾀해 ‘공연예술’로 묶고자 했다. 몸에 집중한 배우수업 강좌로 시작해 전통의 공통분모로 선택한 ‘굿’을 소재로 환태평양 샤먼로드를 염두에 된 샤마니카 프로젝트를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갔다. 또한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후대 작가인 프리쉬와 뒤렌마트의 작품도 수용했다. 독일 문화원에서 독일 원어 연극이나 대학에서 브레히트 희곡 번역이 해금 전에 이뤄진 적이 있지만, 우리말로 만든 무대가 아니어서 검열을 피해갈 수 있었다.

특히 양 이사장은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을 지난 1969년 번역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 바 있다. 페터 한트케가 1966년 처음 집필해 발표한 희곡 <관객모독>은 연극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관객모독>은 1971년 <세계현대희곡선집>에 실렸으며, 1976년에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했으며 <극단 76>에 의해 초연된 이후, 사실주의 연극에만 침몰되어 있던 한국 연극계의 커다란 새로운 물결을 몰고 왔다. 이후로도 양 이사장은 <미성년은 성년이 되고자 한다>, <카스파>, 소설 <낯선자>, <왼손잡이 여인> 등을 다수 번역해 한트케의 문학과 서구문화 의식세계의 변화를 한국에 전했다. 이 외에도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 <샤만문화>, <불교의례>, <궁중의례>, <전통과 응용>, <표현주의 희곡에 나타난 현대성>, <연극의 이해>, <Korean Performing Arts: Danse, Drama, Music, Theater>, <15인의 거장들> 등의 등을 출간했다. 이처럼 한극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왔으며, 우리나라의 공연예술의 발전을 선도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 예술평론 실천상, 문화예술대상, 문화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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