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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경리 ‘멈추지 않는 도전의 드라마’
피아노가 만들어낸 그녀의 카멜레온 같은 삶
2009년 11월 30일 (월) 11:36:09 허정원 기자 ka6161@newsmaker.or.kr

 “내가 연습을 하루 쉬면 그 실력의 모자람을 내가 알고, 이틀 쉬면 평론가가 알며, 사흘 쉬면 관객이 안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음악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가 남긴 이 말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세계 저명한 피아니스트들의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단 하루도 피아노를 떠나지 않았던 그의 열정어린 삶과 숱한 연습의 결실들이 그를 ‘피아노의 마지막 기사’라는 칭호를 얻는 거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 사단법인 국제피아노음악협회 김경리 회장

숱한 연습과 꺼지지 않는 열정. 본지에서 만나본 예술인 초대석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김경리 교수의 인생 역시, 이러한 열정어린 삶에서 비롯된다. (사)국제피아노음악협회 회장이자,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음악학과장으로 그리고 한나라당 중앙위 보건위생분과 부위원장, 국민실천운동연합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며 바쁜 삶을 보내고 있는 김경리 교수. 이러한 그녀 삶의 원동력을 들여다보면 ‘첫째도 피아노, 둘째도 역시 피아노’다. 피아노를 삶의 일부이자 전부로 만든 김경리 교수의 열정어린 발자취를 들여다보자.

허정원 기자 ka6161@

뚜렷한 목표 그리고 재능과 맹연습이 만들어낸 저력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경리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 달콤한 케익과 은은한 커피 향이 함께한 그녀와의 첫 만남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듯 훈훈함이 감돌았다. 50이 넘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미모와 감성으로 취재진을 놀라게 하는 그녀이지만, 오랜 대화를 통해 가녀린 몸에서 뿜어내는 추진력과 깊은 내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김 교수의 피아노 인생에 있어 비상을 향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 아닌 독일 유학시절일 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의 나이에 독일유학을 결심할 정도로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확신을 가졌던 그녀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76년 독일 땅을 밝는다. 당시 시대상이 말해주듯 독일유학이 흔하지 않았던지라 적지 않은 외로움도 감수해야 했던 김 교수. 하지만 그녀는 오직 피아노 하나로 어려움을 다 씻어냈다.
   
▲ 알렉산더 스비아트킨과 함께

“처음에는 많이들 반대했어요. 19살 밖에 안됐는데, 집과 가족을 떠나 독일로 간다고 하니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하지만 그때는 꼭 지금 가야한다는 의지가 컸던 것 같아요.”
김 교수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독일행을 감행한 후, 하루 12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유학시절을 보냈다. 연습곡이라 할지라도 실제 연주하듯 철저하게 마스터 연습을 해야 하는 독일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이런 가치 있는 기회에 감사함이 먼저였던 그녀. 독주회를 마치면 격려가 먼저인 한국과 달리, 연주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를 내리는 독일 친구들의 비평이 비수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비평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걸러내며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거듭했다.
   
▲ 명지대콘서바토리 최양옥교수와 함께
그녀에게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었던 이런 주변의 환경들이 어쩌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철저한 자가만의 싸움과 외로운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독주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이 여기서 하나하나 묻어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있어 타고난 재능이 먼저인가, 맹연습이 먼저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거침없이 ‘재능’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는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피아노를 치는 사람에게 있어 맹연습과 훈련은 결코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예요.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연습을 거듭한다 해도 어느 선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혹독한 훈련 뒤에 그만한 재능이 뒷받침 되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견해를 밝힌다. 독일에서 그만큼 맹훈련을 받으며 성장해왔기에 재능과 실력이 없다면 그만한 연습조차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김 교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름다운 음색과 가볍고 부드러운 터치, 여기에 현란한 테크닉까지 구사하며 높은 평을 받고 있는 그녀의 연주실력 역시, 타고난 재능과 맹훈련이 만들어낸 결실일 것이다.
   
▲ 앞으로도 후학양성과 피아노음악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김경리 교수’ 제자들과 함께한 사진

오랜 경험의 배움으로 피아노음악 발전에 기여하고파
피아노와의 첫 인연은 김 교수의 7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남달리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였고, 무남독녀 외동딸인 김 교수에게는 사랑이 넘치셨다. 유독 딸과 함께 음악을 듣고 나누는 것을 즐기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에 베토벤 음악을 듣고, 유명한 음악가들의 그림책을 보며 꿈을 그려나간 김 교수는 아버지의 피아니스트 친구인 서울대학교 정진우 교수로부터 피아노레슨을 받으며 꿈을 향한 첫 발을 내딛는다. 인천교대부속초등학교를 거쳐 예원학교 1회 졸업생이 되기까지 정진우 교수와의 인연은 그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였다고.
이후 독일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는 또 한 번 유학길에 오른다. 결혼 후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것. 독일에서와 달리, 미국 유학 생활은 그녀에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피아니스트로써의 삶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도 어려움의 한 부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 교수는 피아노를 빼고서 자신의 인생을 완성할 수 없듯, 시련을 성공의 발판으로 여기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독주회가 그녀에게 의미하는 바는 크다. 비온 뒤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시련을 극복하며 자신을 한 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면 절대 그 일을 미룰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김 교수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일을 뒤로 미뤄서 해낸 것이 없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다’ 했을 때 과감히 추진해 그 결실을 이룬 것이다.
지난해에 한나라당에 입당할 당시에도 그런 그녀의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여성의 권익증진과 피아노음악 발전에 기여하고자 또 다른 목표를 세운 그녀는 지금 한나라당 중앙위 보건위생분과 부위원장으로 그리고 국민실천운동연합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입당 취지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제가 거창하게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피아노를 통해 쌓은 경험들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나누고 싶었어요. 이런 경험들 속에서 진정 피아니스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음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해답을 찾아 피아노음악이 발전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라고 밝힌다. 그녀의 모든 활동의 중심은 여지없이 ‘첫째도 피아노, 둘째도 피아노’라는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이기에 이런 바쁜 일정들을 소화해 내면서도 김 교수는 행복한 웃음을 연신 머금는다.
   
▲ 김경리 교수와 예원친구들

‘죽는 날까지 피아노 연주할거예요.’ 멈추지 않는 도전의 드라마  
피아노 음악만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자 지난 2003년 첫 발을 뗀 (사)국제피아노음악협회는 현재 전국의 음악대학에서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는 1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대규모 단체로 성장했다. 6년째 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국제음악협회라는 단체가 있었지만, 오직 피아노음악만을 위한 모임이 없었어요. 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류하거나, 인재를 발굴해 피아노음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단체가 필요했어요. 처음엔 준비된 것이 너무 없었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들을 비롯해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그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회원들과 단합해 더 열심히 활동할 생각입니다.”라고 전한다.
회원들의 끈끈한 단합과 화합이 자연스레 협회의 성장으로 이어졌다며 회원들에 대한 자랑에 여념이 없는 그녀는 국제피아노음악협회 회원이 되기 위한 가장 큰 자격은 바로 ‘인성’이라고 밝혔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만나 지금껏 협회를 이어온 것처럼 그 사람의 인성이 협회의 장수에 가장 큰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신인 및 인재 발굴을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는 연주회 및 콩쿠르에서 영입한 회원들 역시, 실력은 물론 인성을 철칙으로 뽑고 있다.
한 가정의 엄마와 아내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한시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 교수는 마치 카멜레온 같은 삶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결코 간과하지 않는 것은 바로 ‘피아노’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활동 그리고 일의 시초가 바로 피아노 때문이기에. 앞으로도 후학양성과 피아노음악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김 교수는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 같아요.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결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라며 환한 웃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피아노 인생을 살며 숱한 시련과 어려움에 부딪혀왔지만, 여전히 소녀다운 감성과 때 묻지 않은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마 그녀가 아름다운 선율로 영혼을 울리는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목표로 도전을 즐기는 김 교수의 내일에 귀추를 주목하며, 소중한 인연 속에서 또 다른 감사함을 그려내는 그녀의 나눔의 드라마가 추운 겨울, 많은 이들의 가슴에 훈훈한 단비를 내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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