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연 작가는 도자를 굽는 도예가다. 하지만 도자를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회화성을 강조하는 도예가라고 할 수 있다. 깨트린 도자를 모자이크 방식으로 재구성한 비정형의 포름을 통해 도자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신선영 기자 ssy@

 

깨어진 도자

▲ 전지연 작가.

전지연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깨짐이고 하나는 붙임이다. 깨짐과 붙임을 이용해서 우리가 으레 알고 있는 도자의 미감으로부터 벗어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지난 유월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열린 그의 개인전은 붙여내기 위해 깨트리고 깨트리기 위해 구워내야 했던 작업의 여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와도 같았다.

 

작가는 먼저 청자토, 흑자토, 백토를 사용해서 핸드빌딩, 캐스팅, 판성형 기법으로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형태와 색채별로 모양을 배분해서 편편이 분할하는 거였다. 이 분할된 조각이 편린과 같다 해서 지은 전시 제목도 <편린>이었다. 한 조각의 비늘이라는 뜻의 편린이 그의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감촉적인 단어였기 때문이다.

 

“흔히 문학적인 사유를 할 때 ‘사색의 편린’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작은 소재들이 모여 한 편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작은 일상이 모여 하나의 삶이 만들어지듯이, 편린과 같은 파편들이 부(附)인 동시에 주(主)로 작용해서 저의 사색을 완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편을 재구성할 때 나타나는 부가 되는 이미지와 주가 되는 이미지 간의 상호적인 조형미를 작품에 발휘시키고자 했습니다.”

 

부피와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제도된 각각의 조각들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재구성한 그의 작품 제목은 <Broken Memory(깨진 기억)>다. 여기서 깨진 기억은 어떠한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깨어진 순간에 대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억과 기억 사이의 깨어진 부분들을 분명하게 나타내서 작품의 골자를 이뤄나갔는지도 모른다.

 

▲ 전지연, 편린, 2018, 흑토, 저온유, 산화소성, 460mmx420mm.

 

“사실 깨짐과 기억은 언뜻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아 보입니다. 깨짐은 부재의 속성을 지니지만, 기억은 존재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부재하는 것을 존재하도록 하는 힘... 그것이 인간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강력하게 한다고 보고, 누구나 가슴 한 편에 묻어두고 있는 깨진 기억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감성의 부분에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깨진 도자를 통해 내면의 사유를 이끌어내고자 한 그의 시도는 그의 도자만이 가지는 가장 솔직하면서도 강력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자의 취약한 성질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도자의 완결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기억의 완결성까지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정의 형태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으로 나타냄으로써 부활과 재생의 차원으로 극복”시켰으니, 이제 그의 이야기는 치유로 치환되는 붙임의 차원으로 도래하게 된다.

 

▲ 전지연, 편린, 2018, 산청토, 산화철, 수금, 산화소성, 260mmx260mm.

 

붙여진 도자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특성은 가히 fragile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부서지기 쉽고 손상되지 쉬운 시공간이 바로 현대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fragile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부서지기 쉽다’는 점에서 ‘섬세하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대사회의 특성을 놀랍게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도자예술입니다.”

 

도자를 이용해 도자를 표현한다는 것이 디자인한 적인 측면에서 온당 그러한 것일 수 있으나, 작가의 생각은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흙과 유약과 가마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만큼 실패의 확률이 높은 도자를 현대사회로 비유해서 온당 그러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구체적인 말을 건넸다. 바로 이것이 그의 작품에 새로운 기의로 작용했다.

 

▲ 전지연, 편린, 2018, 청자토, 백운석유, 환원소성, 260mmx260mm(x4).

 

그리고 그 기의가 그를 발굴자로 만들었다. 마치 발굴한 도자의 파편을 하나하나 꿰맞춰주듯이 부서진 조각들을 섬세하게 일치시켜줬기 때문이다. 그만큼 깨짐보다 강력한 붙임의 흔적이 그의 작품에 여실히 자리 잡게 됐다. 그 손길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자를 ‘뻔하다’는 식으로 간주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뻔하다는 말이 ‘훤하게 들여다보듯이 분명하다’는 뜻보다, ‘어두운 가운데 빛이 비치어 조금 훤하다’는 뜻이 먼저”라는 것을 각인시켜주는 긍정의 제스처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전통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어떠한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깨짐과 붙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장식기법과 분청기법을 사용해서 우리 도자만의 미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이 허약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상처를 씻어주고, 긴장과 불안을 해소해줄 수 있는 작품으로 전해지길 기대합니다.

 

▲ 전지연, 편린, 2018, 백토, 재유, 흑유, 산화소성, 260mmx260mm(x3).

 

전지연 작가는 경희대학교 산업대학 요업공예과 수학, 미국 FIT 의상학과 졸업(BFA),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학과 수료했다. KCC갤러리 그룹전 Beyond(미국), 공예트랜드페어(서울), 아시아현대도예교류전(일본) 등에서 단체전 및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현재 헤이리 새오리공방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