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작가는 기존의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나간다. 한국화의 기본이 되는 재료와 기법은 유지하면서도 화면의 시점과 구성을 달리해서 한정된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제시해 준다.

신선영 기자 ssy@

오랫동안 한국화를 해온 김지연 작가는 방법의 기조를 한국화에 두면서도 근래에 떠오르는 메시지와 관념들에 대해서는 심미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만의 섬세한 색채감각과 공간감으로 추상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작가 내면의 자연 유토피아

▲ 김지연 작가

김지연 작가는 심미적인 감성과 관점을 추구하는 작가이다. 자연이라는 자못 평범한 범위 안에서도 작가 특유의 구상력과 색채감각으로 자연의 위계를 벗어난 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작품 시리즈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평면 회화이지만 소재를 새롭게 하고 표현 방법도 재밌게 해서 관람자들이 작품 속 세계를 궁금해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빌딩숲과는 전혀 다른 서정을 던져주어 관람자를 화폭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바람은 ‘Wind’와 ‘Wish’를 뜻하는 동음이의어로 사용됐다. 그래서 바람이 가진 이미지와 언어유희를 통해 더욱 풍부한 의미로 살펴볼 수 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지만 그 흐름과 율동에서 감지되는 느낌을 가시화함으로써 보는 이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관람자를 작품으로 더욱 끌어들이는 것이다.

바람은 좋지 않은 감정들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주는 의미이자, 긍정적인 변화가 오기를 바라는 순환의 의미로써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을 통해 머릿속 잡념을 해소하고 앞으로 다가올 바람의 의미를 환기시켜 삶을 정진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티 포트와 십장생, 새와 나무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적인 세계이지만 거부감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인 티 포트와 십장생, 새와 나무라는 자연물을 차용한 것에 있다.

티 포트라는 정물을 통해서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자연물을 통해서는 정신적 활기와 생기를 작품 전반에 흐르게 했다. 작가는 “관람자들이 제 작품을 보는 동안은 잠시 시간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티 포트에 찻물을 우리고 그것을 음미하는 동안 해볼 수 있는 이야기와 생각, 일종의 해방감을 작품에 터놓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적인 세계이지만 거부감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인 티 포트와 십장생, 새와 나무라는 자연물을 차용한 것에 있다.

작가는 여기에 십장생의 친숙한 이미지도 그려 넣었다.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 장수물로 상징되는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삶의 양식이 자연에서 비롯되어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십장생은 장수의 의미보다는 삶의 가치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재고해주는 소재로 얘기해볼 수 있다. 그래서 거북이는 나이가 많고 혜안이 밝은 성인으로, 소나무는 안 좋은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는 생명력으로 현대인에게 제시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자연에서 지혜를 배우고 생명을 얻어 가듯이 거북이와 소나무를 삶의 스승이자 성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삶을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작가는 작품 시리즈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평면 회화이지만 소재를 새롭게 하고 표현 방법도 재밌게 해서 관람자들이 작품 속 세계를 궁금해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빌딩숲과는 전혀 다른 서정을 던져주어 관람자를 화폭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바람이 깃든 색채 탐구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가 서정적이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원색의 강렬함 보다는 감미롭고 은은한 색채감을 살려낸 것에 있다. 그 은은한 색채감 속에서도 미묘한 명암 차이를 구분해서 티 포트가 나타나는 듯 나타나지 않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티 포트의 경계가 모호하게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겹쳐지면서 다시 살아나는 듯한 몽환적인 효과가 안정감 있는 초자연적인 풍경을 만들고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작가는 “도드라지는 색을 피하기 위해서 2차색과 3차색 위주로 작업했다”며 “한지에 먹을 칠한 뒤 다 다른 색을 네다섯 번씩 겹쳐 올려서 바탕색을 만들었다. 분채도 서너 번씩 덧칠했다. 그러면서 색의 겹침과 한지의 바탕으로부터 배어나오는 색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바람은 ‘Wind’와 ‘Wish’를 뜻하는 동음이의어로 사용됐다. 그래서 바람이 가진 이미지와 언어유희를 통해 더욱 풍부한 의미로 살펴볼 수 있다.

색의 명도는 물로도 조절했다. 작업 중간 중간에 한 번씩 물을 뿌려줘서 물감이 물을 따라 번져 나가고, 그렇게 번진 물감이 다시 한 쪽으로 뭉쳐지면서 발현되는 색상들을 체화해 냈다. 물감과 물기가 만나서 번져나가는 예상할 수 없는 요인들이 어스름한 저녁녘을 만들기도 하고, 다홍빛이나 노란빛으로 물든 색 구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김지연 작가의 개인전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는 오는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AP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잠시 쉬어가는 여유와 행복을 마련하고자 했다. 가장 조화로운 상태의 자연과 관람자인 인간의 조우를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얻은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털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