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선비들은 젊어서 가보았던 곳이나 가보고 싶은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벽에 걸어놓고 와유(臥遊)로써 감상했다. 누워서 자연을 유람한다는 뜻의 와유를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에 대한 귀의(歸依)를 대신해 나갔다.

신선영 기자 ssy@

지난 8월 김기나 작가의 「와유 산수화」전이 열렸다. 작가는 <와유(臥遊) 정신의 발현>을 주제로 작품들을 선보였다. 산의 정기를 발산하는 산수 자연을 토대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냈다.

▲ 김기나 작가

와유로 펼치는 심상의 세계
김기나 작가는 산수화를 ‘와유(臥遊)의 사유(思惟)정신’으로 보고 나름의 경지를 만들어 냈다. 작가는 “원래 산수화는 만리(萬里)의 경치를 지척(咫尺)에 두고 애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며 “그림 속 무릉도원의 이상향에 대한 갈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구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작가는 이러한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자연의 순수한 모습에서 찾았다. 사회가 다변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얻고자 하는 정신적 위로와 꿈의 방편을 자연에서 찾아 진정한 소통의 장소로 표현했다. 작가는 “우리 고유의 산천(山川)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워하는 본원적 고향이자, 동경의 대상”이라며 “어릴 적 나고 자란 지리산의 기억과 경험을 요소요소에 넣어 종합적으로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관람객들을 그림 밖의 위치에서 시선을 둔 보행자가 아닌, 그림 속으로 들어가 거처하고자 하는 ‘가거자(可居者)’의 시선으로 이끈다.

가거(可居)는 중국 북송시대의 화가 곽희의 산수화론서 <임천고치>에 나오는 내용이다. 곽희는 산수 자연을 볼만한 경치 가망(可望), 볼만하니 가보고 싶은 경치 가행(可行), 가서 보니 노닐고 싶고 싶은 경치 가유(可遊), 놀다보니 거처하고 싶은 경치 가거(可居) 총 4단계로 구분했다. 이 중 최고의 경치로 꼽히는 가거는 가장 이상적인 꿈의 경치로써 작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일면 일맥상통한다.

▲ 작품 <와유산수-만추>

소박하고 정겨운 와유의 풍경
김기나 작가의 작품은 누가 보아도 우리의 마음을 의탁하고 몸을 기거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돌담 너머 산등성이의 운무와 연봉, 묵묵히 뿌리박고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와 고목에서 여울지는 꽃들이 마음의 여유와 정신적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특히 작품마다 그려져 있는 산을 등지고 생겨난 마을이 묘한 안도감을 전해준다.

작가는 “동양은 자연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 흙을 자연의 살, 물을 자연의 피, 나무를 자연의 머리카락, 바위를 자연의 뼈, 안개를 자연의 입김으로 마치 살아있는 인간의 몸체에 비유해 왔다. 예로부터 집을 산자락에 짓는 이유도 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며 “작품에는 우리 민족의 소박한 모습과 풍속이 연면히 살아있다. 그래서 이를 감상한다는 것은 그 속에 깃든 우리 고유한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자 와유의 정신을 이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작품 <와유산수-붉은산>

와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김기나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지 사용이다. 한지는 옛사람들의 산수 유람과는 다른 현대의 유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재료가 됐다. 고유의 색감과 재질감이 두드러지는 한지를 통해 입체적인 효과를 내어주고 흥미로운 감상을 끌어냈다. 작가는 “산수화도 현대적인 감각과 관점이 필요하다. 전통 산수화의 경직성과 고루함에서 탈피한 발상과 표현법을 천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전통수묵산수화는 준법(중국의 필묵법)을 통해 산과 골짜기, 바위 등을 표현했다. 준법은 산의 형세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의 사상과 정신을 결정짓는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법이다. 이러한 준법을 한지로 대신했다는 것은 한지만의 단색조 추상으로 자기 세계를 확립해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오방색의 한지로 산과 바위의 골기(骨氣)를 압축해서 표현했다. 색감과 빛 처리의 표현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을 넘어서 화면 전체의 질감과 공간감을 한 차원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지의 배색이 주는 한국적인 색채감과 생동감이 수묵의 번짐과 깊이감에서 오는 차분함과 대조되어 현대적인 산수화풍을 만들어 냈다.

▲ 작품 <와유산수-벚꽃마을>

관람객과 교감하는 전시 마련
이번 전시는 산수화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의 관심과 공감을 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싱그럽다’, ‘산뜻하다’, ‘방에 걸어 두고 싶다’는 평은 작가 의도와 부합하기 때문에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반응은 그의 원활한 소통능력도 한몫했다. 현재 (사)한국미술교육학회 이사이자 선유도중학교 교감인 김기나 작가는 관람객들이 보다 작품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또 전국의 초중등 교사와 대학 교수들이 미술 감상 수업을 위한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국내외 학술 논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모해서 미술 감상 대중화와 시각문화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 왔다. 작가는 “우리나라 미술 교육은 기능 위주의 도제식 교육”이라며 “미술 작가가 되지 못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을 위해 미술 감상 수업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그림을 볼 수 있는 혜안과 미학적 접근 능력을 길러주는 수업을 활성화 시킨다면 장차 미술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작가는 “작품이 지녀야 할 존재의 의미를 관람객에서 찾아야 한다”며 “앞으로도 현대인들에게 감상과 감동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현재 중국 상해를 포함한 국내외 전시를 기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산수화전이 일반적이고 대중화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