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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긴장감, 웰메이드 정치 드라마 탄생
“중앙정보부가 문 닫는 드라마틱한 순간 그리고 싶었다”
2020년 02월 05일 (수) 23:39:22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이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18년간 지속된 독재정권의 종말을 알린 이 사건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으로 꼽힌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대통령 암살사건 발생 40일 전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육군 본부에 몸담았던 이들의 관계와 심리를 면밀히 따라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을 중심으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의 과열된 ‘충성 경쟁’을 담담하게 좇는다.

신세영 기자 syshin@

<남산의 부장들>은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1990년부터 동아일보에 2년 2개월간 연재된 취재기를 기반해 출판됐으며, 한·일 양국에서 총 52만 부가 판매돼 논픽션 부문 최대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원작자 김충식은 ‘남산의 부장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재를 통해 한국 기자상을 2회나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1960-1970년대의 독재 18년은 중요한 시대다. 그 18년을 지배한 정점에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할 정도로 권력을 누렸던 중앙정보부에 대해 1990년대까지 모든 매체가 보도를 꺼렸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막중한 권력을 휘두른 이들에 대해 기자가 보도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해 사명감을 갖고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 중앙정보부의 부장(부총리급)들과 이들이 주도한 정치 이면사’를 그린 원작을 근간으로 영화는 이 중 주요 인물들을 꼽아내 재구성했다.

▲ 우민호 감독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보다 먼저 <남산의 부장들> 원작을 접하고 영화화를 꿈꿨다. 매 작품마다 시대를 먼저 읽는 통찰력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감독이기에 이번 작품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 감독은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건이지만 그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의 심리와 관계에 대해서는 정작 알지 못한 면이 있다. 사건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지 그려보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시나리오부터 언제나 함께 작업하는 우 감독의 작업 방식 덕분에 모든 제작진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웰메이드 프로덕션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 촬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는 그의 디테일한 감각은 <내부자들>, <마약왕>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한다.

미친 연기력, 믿고 보는 배우들 총출동
<남산의 부장들>은 이병헌부터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까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무엇보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이병헌의 두 번째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이병헌은 특유의 해석력과 연기력으로 관객들이 김규평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부자들> 속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애드리브를 직접 탄생시키며 각종 패러디를 양산한 이병헌이지만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애드리브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실존인물을 모티브 한 작품인 만큼 사실과 너무 다르거나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는 애드리브는 위험한 시도라 생각했다.

이병헌은 “역사적으로 결론지어지지 않은 이야기를 영화가 규정 지어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생각했다”며 “사건을 토대로 하되 카메라가, 렌즈가 깊이 들어가서 그 사람들의 심리와 갈등과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성민이 연기한 박통은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8년간 제1권력자로서 독재정치를 행한 인물로 그려진다. 주변 인물들을 쥐락펴락하는 자신만의 용인술로 청와대를 굳건하게 지켜왔으나 세월이 흐르자 자신을 둘러싼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부딪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성민은 부와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까이할수록 흐려지는 판단력, 흔들리는 심리를 소름 끼치게 재현해냈다. 곽도원은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역을 맡아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박용각은 박통 정권의 비리를 전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 앞장서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타국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박용각은 1960년대 중앙정보부 권력의 핵심적인 시기를 보냈던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이 배역을 그려내기 위해 곽도원은 미국, 프랑스 로케이션에도 모두 참여해 고군분투하며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희준은 박통의 존재를 종교적 신념으로 여기는 충성심 강한 경호실장 곽상천 역할을 맡았다. 곽상천 캐릭터는 실제 당대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경호실장을 모티브로 했다. 이희준은 경호실장 캐릭터를 위해 25kg이나 증량해 비주얼 변신에 도전했다. 영화 속 김규평과 곽상천이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에서는 멱살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리얼리티에 집중한 한국·미국·프랑스 3개국 로케이션
<남산의 부장들>은 총 65회 중 국내 51회, 미국 4회, 프랑스 10회로 3개국 대규모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영화다. 우민호 감독은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들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기 위해 미국 워싱턴, 프랑스 파리를 선택했다. 먼저 한국에서는 청와대,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가 주요한 촬영 장소였다. 세 곳 모두 세트로 제작했으며 청와대는 정권 말기의 느낌을 담아 화려하지만 황량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중앙정보부의 지하실은 기존 매체에서도 많이 다뤘기에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되 주로 취조가 진행되는 지하실과 김규평의 집무실 분위기는 큰 차이가 느껴지도록 제작했다. 특히 김규평 집무실은 규모는 작지만 그의 취향이 확고히 느껴지도록 소품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 집무실 벽면 대리석은 자세히 보면 균열이 있는데, 이는 김규평의 심리 상태를 벽면에 반영한 것이다. 궁정동 안가는 최대한 고증에 충실했다. 미국 로케이션은 영화 초반 김규평과 박용각이 접선하는 장면을 담았다. 두 사람이 넓게 펼쳐진 링컨메모리얼 파크와 워싱턴 기념탑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이국적인 질감을 전달한다. 프랑스 로케이션은 영화 후반부 박용각의 행적을 담는 데 활용됐다. 이 중 파리 방돔 광장은 지금까지 어떤 한국 영화도 로케이션이 허락된 적이 없었던 지역. 영화 촬영이 최초로 허가가 난데에는 <남산의 부장들>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기에, 프랑스 관계자 측도 사건 재현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드론 촬영으로 진행된 프랑스 외곽 지역 풍광도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듯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풍기는 풍광이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Q. 원작이 있는데 책 접한 시기랑 제작을 결심하게 된 계기, 원작을 살리기 위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무엇인지?
- 군대를 갔다 와서 원작을 접했고 재미있게 봤다. 그때 영화학도였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드라마틱한, 중앙정보부가 문을 닫는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사건을 중심으로 그 전 40일간의 이야기에 대해 ‘도대체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까?’를 좇다 보니 사건 속 인물들에 더 관심이 가게 됐다. 긴 시간이 흘렀고 원작자님께 연락해서 판권이 팔리지 않았다면 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시나리오가 완성이 돼 <남산의 부장들>을 찍게 됐다. 김충식 기자의 기자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흥분하지 않고도 깊게 파고들어가는 그 기자정신이 좋았다. 영화도 그 원작의 정신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영화가 나온 것 같은데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원작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꼽히는 10.26 사건에 집중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건이지만, 그 인물들이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기에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들렸는지 탐구하고 싶었다. 인물들의 내면과 심리묘사에 중점을 뒀다,

Q. 원작자가 영화를 본 반응과 이병헌 배우와 <내부자들>에 이어 호흡을 맞춘 소감은?
- 원작자께서는 재밌게 봤다고 하셨다. 본인의 작품이 사진첩이라면 ‘영화는 풍경화 같다’고 했다. 이병헌 배우와 함께하는 두 번째 작품이기에 첫 번째보다는 편안했지만 더 치열하게 했다. <내부자들>에서 전혀 보지 못한 모습을 ‘김규평’이라는 캐릭터에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Q. 김소진 배우와의 작업 후 만족도에 대해 알고 싶다.
- 김소진 씨는 다음 작품에 기회가 된다면 더 큰 역할에 참여시키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마약왕>때 처음 만났는데 연기를 잘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 좋았다. 김소진 씨 같은 경우에는 로비스트 역할을 한번도 해 보신 적이 없다.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만 당시에 로비스트는 유명한 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가공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 여성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었고 살아남으려고 했나를 보여주려고 했다.

Q. <내부자들>이 뜨겁게 찍었다면 이번에는 냉정하게 찍으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맞는지, 그리고 김규평 과거에 대한 정보가 더 있어야 하지 않나?
- 들뜨지 않고 원작의 정신과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40일간의 내용이기에 방대하게 담을 수는 없었고 단지 그의 전사가 어땠을지,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전사가 어땠을 지에 대해서는 배우들의 호흡이나 모습 속에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처음 작업한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배우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이성민 배우와 함께 역할을 연구하며 캐릭터를 창조해 나갔다. 현장에서 상당히 섬세하고 세밀하게 연기했다. 정권의 끝자락에서 인물이 느꼈을 심리를 잘 그려줬다고 생각한다. 곽도원 배우는 디렉션을 순발력 있게 흡수하고 캐릭터를 폭발력 있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 배우다. 현장에서 대본을 놓지 않는 모습에 감동받기도 했다. 이희준은 체중 증량과 함께 발성, 몸의 움직임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Q. 설 연휴에 개봉하는데 흥행 어떻게 예측하는지, 어떤 부분이 통할 거 같나?
- 사실 근현대사의 큰 사건이다. 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의 감정과 내면을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지점들을 폭 넓게 보시면 좋다. 과거의 먼 역사와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부모님, 친구, 자녀들과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단순히 시네마에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못 다한 이야기가 시네마 밖에서도 관객들을 통해 만들어지길 바란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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