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과거나 지금이나 혼탁하고 혼란의 시대에도 그것들을 직업으로 혹은 천직으로 여기고 예술을 하는 이유와 그것들을 확인하고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예술은 그렇게 예술가들의 정신과 기술을 통해서 그림으로, 글로, 음악으로, 다양하게 보여지고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차성경 기자 his@

서양화가 김동석의 행보가 화제다. 어머니의 땅, 길, 씨앗 등을 주제로 30여 년간 화업을 이어온 작가 김동석은 지난해 12월5일~1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개인전은 1996년 <어머니의 사계(四季)>라는 주제로 첫 개인전을 가졌던 김 작가가 30여년의 창작활동을 연구 분석하고, 앞으로 펼쳐질 30년을 준비 설계하고자 기획한 전시회다.

▲ 서양화가 김동석

‘씨앗’의 생명성을 열린 공간 속에 함축하고 확산
작가 김동석은 <석과불식>전에서 1000미터 길이의 wire rope와 10미터의 평면설치에 수천 개의 복숭아 씨앗을 오브제로 제작한 설치미술과 30여년 동안 제작한 대표작 60여점을 선보이며, 이를 통해 그동안 추구했던 철학과 조형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김이천 미술평론가는 “김동석 작가의 설치작품은 씨앗이라는 오브제의 생명성을 전시장이라는 열린 공간 속에 함축하고 확산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이전까지 씨앗 오브제는 평면에 붙여서 회화적 조각으로서 평면과 입체, 색채와 물성의 조화를 유기적으로 보여주었던 것과는 다른 조형방식이다. 오브제를 엮은 줄들이 구획하는 육면체의 공간 속에 군집의 씨알 형태의 원형 이미지가 철학적 관점에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우리 전통의 우주 관념인 천원지방을 연상시키고, 미학적으로는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면서 균형과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적·미학적 조형성이 작가의 씨앗 오브제 설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의 주제인 ‘석과불식’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석과는 가지 끝에 남아 있는 마지막 ‘씨 과실’로, 땅에 그대로 두어 새로운 싹을 틔워 나무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석과불식에는 추운 겨울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뒤 새로운 생명이 재탄생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석과불식의 의미를 갖는 김동석 작가의 설치작품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작가 김동석은 지난 30여 년간 화업을 이어온 것에 대해 “외롭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오늘날 학연·지연·스펙이 지배하는 화단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작가들의 고달프고 슬픈 현실이 담겨 있는 말이다. 실제로 수십 명에 달하는 김동석 작가의 동기 중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김동석 작가 역시 현재 여러 대학에서 강사를 역임하고 있지만 강의를 하고 나면 항상 뒷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지만 그 자신조차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현실과 문화정책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김동석 작가의 <석과불식>의 또 다른 의미처럼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희망과 강한 의지를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작가 및 창작활동을 고민하는 전업작가들과 스스로에게 전하고 싶은 강한 메시지인 셈이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풍경

 
30년 화업의 길 축약한 18번째 개인전<석과불식 碩果不食>
“그린다는 것은 참새 눈곱보다 작은 씨알이 얼은 대지를 찢고 나와 우주를 관통하는 일이다”. 작가는 1mm 희망으로 캄캄한 가시덤불을 헤쳐 나와 날마다 씨 뿌리는 농부로 내가 나를 기억하는 일이다.” <석과불식>전으로 18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김동석 작가.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해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이어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책임감 하나로 매일 매일 자신과 싸우며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이번 <석과불식>전은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이러한 작가 김동석이 지금껏 걸어온 화업의 길이 축약되어 있으며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김동석 작가는 그만의 조형 의지와 독창적이고 심미성 발현을 위해 치밀하게 공간을 구성하고, 오브제의 크기와 수량, 설치 위치와 조명 효과 등을 위해 많은 실험을 거쳤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와 착오의 흔적들이 작업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작업실 바닥에 놓인 커다란 도면에서도 세밀한 작가의 정신을 볼 수 있었으며, 도면 위에 줄을 길게 펼쳐놓고 씨알을 일정한 간격으로 끼워 고정시키는 작업은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행위이지만, 공학자 같은 치밀한 계산과 논리적 구성을 요구한다. 작가의 설치작품에서 씨알과 씨알사이의 빈 공간은 여백이다. 그러나 3차원 공간 속의 여백에는 2차원 평면 속의 여백과는 전혀 다르다. 2차원 공간의 여백이 작가의 의도를 모두 반영한 반면, 3차원 공간의 여백은 작가의 의도와 함께 주변의 환경이나 관람객의 관점 또는 참여로 완성된다. 이때의 관람객은 작품의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해석자가 된다.

추계예술대학 서양화과,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작가 김동석은 공무원미술대전, 호국미술대전을 비롯해, 심사임당미술대전, 대한민국문화미술대전, 충남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순천미술대전, 여수바다미술제 등 각종 공모전의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사)한국미술협회 사무국장, 삼육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전남대학교, 백석예술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입선 3회·특선2회, 구상부문 입선2회, 구상전 공모전 특선, 대한민국환경미술대전 우수상, 광복 70년 대한민국미술축전 특선 등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는 지금까지 총 18회 개인전(LA, 북경, 서울, 부산, 순천)과 25회 아트페어(덴마크, 홍콩, 상하이, 북경, 서울, 부산, 경주, 충주, 광주, 여수)와 500여회의 초대전 및 기획전에 참가하며 국내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NM

▲ 석과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