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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3대 정책 방향 아래 한국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나서
2019년 12월 07일 (토) 21:18:27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지난 10월25일 정부가 “향후 관련 협상 시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08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WTO 개도국 논의 대응 방향’을 논의해 의결하겠다고 밝혔다.

장정미 기자 haiyap@

홍남기 부총리는 “미래 협상 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 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Forego)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Not Seek)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다만 “현재·미래 WTO 농업 협상 타결 전까지는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를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서 “미래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영향이 없으며 이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트럼프 대통령의 4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26일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WTO가 90일 내 이 문제에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 차원에서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마감 시한은 지난 10월23일까지였다. 개도국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4가지 기준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무역에서의 비중이 0.5% 이상을 제시했다. 한국은 이들 4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하지만,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다만 농업 부문을 제외하고는 개도국으로서의 혜택을 받고 있지 않다. WTO 내 개도국 지위 포기시 피해가 불가피한 농민단체들은 정부에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농업 예산을 전체 국가 예산의 4~5%로 증액 ▲취약 계층 농수산물 쿠폰 지급으로 수요 확대 ▲공익형 직불제 도입 ▲1조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 정부 출연 ▲한국농수산대 정원 확대 등 6대 항목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경북 농업인단체협의회는 지난 10월24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도국 지위를 상실하면 관세 감축 폭이 선진국 수준으로 커지고 농업소득 보전을 위한 각종 보조금 한도도 축소될 수밖에 없어 농가 피해가 불가피하다”면서 “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는 “미래 협상이 타결돼야 (한국의) 개도국 특혜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그전까지는 국내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서 “마무리 단계인 쌀 관세화 검증 협상 결과에도 영향이 없다. 개도국 특혜는 지위와 별개의 사안이므로 과거에 참여한 아시아·태평양 무역 협정(APTA) 등과도 관련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3대 정책 방향 아래 한국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쌀 등 국내 농업 민감 분야 최대한 보호 ▲국내 농업에 영향 발생 시 반드시 피해 보전 대책 마련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등이다. 홍 부총리는 “국내 농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나가겠다”면서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농업소득보전법(농업 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과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정부, 통상협상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
지난 10월25일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공식 선언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통상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오랜 기간 개도국 지위를 누릴 대로 누렸고, 사실상 혜택이 종료된 상황이어서 당장의 피해는 없고, 오히려 미국 등 여러 국가들과 마주하는 통상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농업 분야에 한정해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현행 WTO 협정은 각국이 개도국임을 선언하면 관세나 보조금 등에서 우대(S&DT) 조항을 적용하도록 했다. WTO 협정상 개도국 우대 조항은 지난해 기준 155개이다. 대표적으로 관세 우대를 받거나 국제 금융기관 대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특정 품목 수입 제한 등이 있다. 나머지는 개도국에 대한 기술지원 등이 대부분이라 실제 혜택이 크지 않다. 산업부 고위 당국자는 “1990년대 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우리는 개도국 선언을 했지만 농업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선도국 의무를 부담하겠다고 했다”며 “"농업분야 외에는 개도국 특혜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WTO 내 개도국 지위와 관련한 논란의 불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26일 경제발전이 빠른 국가를 상대로 WTO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으라고 압박하면서 90일 이내(10월23일까지)에 개도국 지위 관련 WTO 규정 개정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린 대상은 중국이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가 빨라 통상 측면뿐만 아니라 패권 유지 차원에서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가지 기준 중 하나만 해당되더라도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고 압박했는데, 한국은 이 모든 기준을 모두 충족한 유일한 국가다. 미국이 중국을 노렸지만 우리로서도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할 명분이 없는 셈이다. 산업부 당국자는 “WTO 개도국 지위로 인해 얻는 혜택은 관세 감축이나 보조금 정도인데 이미 그런 혜택은 종료된 지 오래다”라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살아있는 유일한 협상인데 2004년도에 의무와 혜택 다 끝났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이미 많은 국가들이 개도국 지위 포기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대만과 브라질,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가 개도국 특혜 포기의 뜻을 밝혔다. 싱가포르의 경우 자국은 이미 개도국 특혜를 누리고 있지 않으며 미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일부에선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면서 농업 분야에서 얻는 특혜가 곧바로 사라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지만 농업 분야 통상규범이 될 WTO 농업협상, 즉 도하개발어젠다(DDA)가 아직 타결되지 않아 당장의 피해는 없을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에 농민단체 반발
우리 정부가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농민 단체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농협 농정통상위원회 조합장들은 지난 10월29일 WTO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은 데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대(對)정부·국회 건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아 황주홍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에게 건의문을 직접 전했다. 조합장 일동은 농업 보조 정책을 직불제 중심의 선진국형으로 전환하고 직불제 예산을 단기적으로는 3조원 이상, 점진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5조원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는 농정 공약인 ‘공익형 직불제’가 주요 대책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제도 도입에 서두른다는 방침을 세웠다. 관련 예산은 내년에 2조2000억원 수준으로 반영됐다. 농협은 농업 예산이 국가 전체 예산의 최소 4% 이상은 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아울러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확산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 국가의 책무를 실행하라고도 촉구했다. 이들은 건의문에 “전국의 250만 농업인들은 깊은 좌절감과 함께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며 “차기 농업 협상에서 개도국에 주어지는 여러 우대 조치를 받을 수 없게 돼 주요 농축산물은 물론 농업 전반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썼다.

농협에 따르면 WTO가 출범한 1995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의 농축산물 수입액은 69억달러에서 274억달러로 무려 4배 불어났다. 농업 강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연이어 맺으면서 수입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농업인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13일 박진도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장은 최근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과 관련 “개도국 지위 포기 철회는 실질적으로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경기도청에서 ‘2019 전국 순회 타운홀미팅’에 앞서 사전 브리핑을 가진 자리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선 안된다. 다만 언젠가는 이것을 계기로 유럽 같은 선진국농정으로 가야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WTO 개도국 지위 포기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된 것 같은데 우리 위원회와 협의 하지 않았다.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하지만 정부가 WTO 특혜 지위를 당장 포기한 것은 아니다. 차기 협상 때는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업부문의 예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보조금, 지역개발비 등 문제 있는 부문에서 예산을 대폭 줄여 구조조정한 뒤 정부에 농민관련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면 될 것”이라며 “아울러 농정예산을 늘리기 위해선 제대로 된 농정정책을 추진해야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농민기본소득 도입과 관련해 “경기도가 선도적으로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며 “그러나 이것을 국가차원에서 도입하는 것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경기도에선 1인당 60만원 정도로 기본소득을 시작하는데, 경기도 예산규모로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의미 있는 숫자가 되기 위해선 금액을 늘려가야 하고, 이를 위해 경기도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며 “그렇듯이 국가차원에서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선 국민적 공감이 형성되어야 하고,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와 경기도는 이날 오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전국 순회 타운홀 미팅 경기’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농특위 박진도 위원장, 경기도 김희겸 부지사를 비롯, 농어업관련 생산자, 소비자, 전문가, 시민단체, 공무원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원형테이블에 모여 앉은 도민들은 우리나라와 경기도 지역 농어업의 문제점을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농어업, 농어촌, 먹거리를 위한 농정혁신 방법에 대해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박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농어업·농어촌의 문제는 농어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이고, 농어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며 “지속가능한 농어업·농어촌을 위해서는 본래 갖고 있는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농정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도지사를 대신해 참석한 김희겸 경기도 부지사는 “WTO 개도국 지위 특혜 철회와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 등 농업현장의 분위기가 침체되고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선진국 농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어 지속가능한 농어업이 될 수 있도록 경기도가 가장 앞에 서서 나가겠다”고 밝혔다. 농특위와 전국 9개 도(道)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2019 전국 순회 타운홀 미팅’은 농어업·농어촌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소통을 통해 구조적 문제점을 도출하고, 국민의 집단지성으로 지속가능한 농어업·농어촌을 위한 정책방향을 모색함으로써 농정틀 전환을 위한 전략적 기초를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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