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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는 도시문명, 그리고 새로운 도시
2019년 11월 06일 (수) 16:18:29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내 안의 꽃이 다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
만발해 너울거리는 자태보다/ 잔바람에 떨어져 낡아가는 꽃잎들이 먼저 보인다/ 하, 저 꽃잎들은 (전영관, ‘나무에 걸린 은유’ 부분)

인간은 도시문명을 창출했고 그것을 누리는 중이지만, 어디까지가 절정일까.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어느 곳에서는 이미 쇠락하여 빈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선진국에서의 출산율 감소와 인구증가율의 정체는 더 이상 도시를 채울 인구가 부족한 시대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도시탈출’을 외칠 필요도 없이 도시문명 자체가 저절로 시들어가는 현상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도시는 확실히 인류문명의 정점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발명품, 새로운 볼거리, 새로운 문화예술은 인구를 불러 모으고, 인구 집중은 도시화로 이어졌다. 호모사피엔스는 계속되는 발전 또는 진화과정에 필연적으로 ‘도시인간’의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통계를 보았다. 국토의 태반이 사막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도시에 몰려 살 수밖에 없다는데,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의 인구도시집중률은 84%에 이른다고 한다. 100명 가운데 84명이 대도시에 몰려 살고, 그 밖의 지역에 흩어져있는 소규모 촌락에 사는 사람은 16명 정도 되는 셈이다. 척박한 사막지역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편의시설이 잘된 대도시에 몰려 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사막 가운데 바레인이나 아부다비 같은 초밀집형 첨단도시가 불쑥 서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놀랍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들 사막의 도시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도시집중 비율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서울 주변에 5천만 인구의 거의 절반이 몰려 사는 것은 알았지만, 그 외의 인구들도 거의 지방 대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이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에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마치 도시밖은 사막이기라도 한 것처럼 도시에 모여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환경보다는 도시를 더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전통적으로 ‘도시’를 규정하는 기본 조건의 첫째 항목은 ‘인구’다. 도시는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주거단위를 의미하며, 법적으로 한 촌락이 읍이 되고 도시로 인정받는 조건 또한 등록된 주거인구가 유일한 기준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도시의 기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도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을 예고해 보여주는 것이 도시 공동화현상이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텅 빈 마을, 텅 비어가는 ‘유령도시’들을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한때 수만에서 수십만까지 인구가 모여 살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 건물은 허물어지고 철탑이나 철문은 녹슬어 거꾸러진 황량하게 변한 폐허들이다. 한국 교과서에도 실린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는 수년전 공장들이 다른 도시나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공동화가 진행되어 위기의 도시가 되었다. 지역경제의 중심이던 공장들이 사라지자 지역 경제가 어려워져 자동차와 무관한 기업이나 경제활동 인구들마저 이 도시에서 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서부개척시대 광산업으로 성시를 이뤘던 지방 도시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로 변한 전례가 있다. 러시아의 체로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 같이 원자력발전에 의지하던 도시들이 원전 사고와 함께 공동화되기도 하고, 대학을 중심으로 흥청거리던 마을이 대학의 폐쇄와 함께 유령마을로 변하기도 한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도시 주변에 늘어난 베드타운들은, 인구가 줄면서 시작된 도심 재개발사업의 여파로 빈 아파트가 늘면서 유령도시로 변하기도 한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한 도시들이 비게 될 이유는 수두룩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고령인구 밖에 남지 않은 농촌지역의 도시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끝없는 투자보다는 대도시에 자원을 집중하는 형태의 도시중심 투자정책이 효율적이라는 보고서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다. 앞으로 10~20년 안에 수백개의 소도시들이 공동화될 거라는 경고도 나온다. 일본만 그런게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단 1달러에 마을 전체를 맡기겠다는 이탈리아 지방도시들 이야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시는 21세기 현대인류 문명의 상징이다. 어쩌면 현대도시는 고도로 진화한 인간 자체의 상징일 수도 있다. 인간이 병들지 않고 외롭지 않게 오래 사는 길을 모색하듯이 도시들도 좀 더 생기를 유지하며 건재할 방도를 찾아야만 하는 시기인 것이다. NM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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