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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만의 정권교체, 새로운 일본 탄생
중의원 선거서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압승
2009년 10월 01일 (목) 13:15:04 안상호 기자 press83@newsmaker.or.kr

일본이 ‘변화’를 선택했다. 지난 8월 30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총 480석 중 과반(241석)보다 훨씬 많은 300석 이상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로써 지난 54년간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 독주는 막을 내리고, 민주당이 이끄는 ‘새로운 일본'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된 것은 1955년 자민당 창당으로 양당 체제가 확립된 이후 처음이다.
   
▲ '만년 여당'이라는 자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은 민주당의 압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아베 신조 총리의 입지도 흔들어 놓았다.

8월 31일 아사히신문 최종집계에 따르면 중의원 480개 의석 가운데 민주당은 308석, 자민당은 119석을 얻었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던 공명당은 21석을 확보했다. 공산당과 사민당은 각각 9석, 7석으로 변화가 없었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300석 이상을 얻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사민·국민당과 합쳐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넘는 322석을 얻어냈다. 민주·사민·국민당이 예정대로 연립정권을 구성할 경우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까지도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의석수’를 확보한 것이다. 투표율은 69% 안팎으로 잠정 집계됐다. 민주당의 압승은 자민당의 54년 일당 지배와 관료체제의 병폐, 경제위기에 대한 불만과 변화 욕구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보내준 큰 성원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정권교체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정치를 바꿔야 한다’ 열망을 강하게 느꼈다”면서 “이것이 끝이 아니며, 민주당은 지금부터 국민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혼돈 거듭하던 정국이 민주당 출범의 단초 제공
   
일본 민주당의 출범에는 1990년대 초 혼돈을 거듭하던 정국 상황이 단초를 제공했다. 93년 자민당이 처음으로 집권당의 자리를 잠시 내주면서 8개 당파 연립에 의한 호소카와 내각이 탄생했다. 그러나 불안하던 ‘유리알 연립’은 1년도 채 못 버티고 자민당의 부활을 허용했다. 94년 호소카와 내각이 8개월 만에 붕괴했고, 하타 내각을 거쳐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를 수반으로 하는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 정권이 성립했다. 당시 신당 사키가케 대표간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결성한 야당 신진당이 95년 참의원 선거에서 40석을 얻으며 제2당으로 올라서자 사키가케가 매몰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사민당(옛 사회당)과 사키가케의 합병에 의한 신당 결성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합당하는 것만으로는 바람을 일으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당시 사민당의 ‘에이스’인 우파 아카마쓰 히로다카(赤松廣隆)뿐 아니라 좌파의 요코미치 다카히로(橫路孝弘)까지 다양한 성향의 실력자들을 끌어들였다. ‘약자를 위한 정치가들이 우애의 정신으로 모인 정당’을 기치로 한 민주당은 96년 9월 닻을 올렸다. 출범 당시 민주당은 의원 52명을 보유한 ‘제3세력’이었지만 신진당이 해체되고 그 일부를 흡수하면서 제1야당에 오른다. 민주당은 이후 두 차례의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98년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등 자민당 이탈파, 가와바타 다쓰오(川端達夫) 등 구 민사당 계열이 가세하면서 의원수를 131명으로 늘렸다. 특히 2003년 9월 오자와가 이끄는 자유당과의 합병은 민주당의 전환점이 된다. 오자와의 합류는 일본의 보수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의 수권능력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또 오자와의 선거 전술은 민주당의 체질 강화 효과를 가져왔다. 그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40석이 늘어난 177석을 얻으며 약진했다. 그러나 2005년 ‘우정(우체국) 민영화 선거’에서는 고이즈미 바람에 밀려 113석으로 참패했다. 민주당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다. 이때 60석을 획득, 자민·공명 연립의 과반을 무너뜨린다. 민주당은 올 3월 니시마쓰건설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오자와 대표의 비서가 기소되면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오자와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정권교체의 기회를 되살려낸다. 두 달 후 당권을 이어받은 하토야마 역시 정치헌금 허위기재 문제로 주춤했지만, 새로운 정치를 열망한 민심은 8·30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308석의 압승을 안겨줬다.

일한의원연맹도 민주당 중심으로 재편
여야 정권이 교체된 이번 일본 총선을 계기로 한일 의원외교의 최대 공식채널인 일한의원연맹도 조만간 민주당 중심으로 재편될 예정이다. 1972년 설립된 일한의원연맹은 총선 전 기준으로 중의원 230명, 참의원 72명 등 모두 302명으로 구성돼있다.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 171명, 민주당 37명이다. 그러나 자민당과 민주당 의석수가 역전됨에 따라 연맹 구성원도 민주당 중심으로 교체가 불가피해졌다. 연맹 회장은 관행적으로 여당의 총리급 의원이 맡아왔으며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현재 회장이다. 한국 측 파트너인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차기 총리 등 8명이 고문,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등 11명이 부회장이다. 간사장, 부간사장, 분야별 상임위원장 등 방대한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다선 중진인 간부 가운데 상당수가 총선에서 떨어졌다. 연맹은 재편을 통해 민주당 의원을 회장으로 교체할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엔 ‘총리급’ 경력을 갖춘 의원이 없어 결과를 알 수는 없다. 연맹이 민주당 중심으로 재편되면 의원외교의 흐름도 어느 정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등 한국에 대체로 우호적이다. 오랫동안 집권당으로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자민당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인맥은 적지만, 꾸준히 한국 문제를 연구하면서 관계 개선을 도모해온 지한파는 적지 않다. 하토야마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빅4’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과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은 모두 한국에 우호적이다. 오카다 간사장은 정동영 의원과 친분이 돈독하다. 연맹 고문인 하토야마 대표는 올 3월 출범한 당내 ‘전략적 일한관계를 구축하는 의원모임’의 고문이기도 하다. 소장파 중심으로 15명이 참여한 이 모임 회장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대표다. 이들은 창립총회에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를 초청해 미래의 바람직한 한일관계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2003년 일본 민주당과 한국 국회의원 간 친선을 위해 ‘일한 의원교류위원회’를 직접 만들었다. 지한파 의원의 중심에는 늘 하토야마 대표가 있었던 셈이다. 그가 친한파로 분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토야마 대표가 위원장을 맡았고 간 대표대행과 오카다 간사장이 고문이었다. 의원 24명이 참여했으나 눈에 띄는 활동은 없었다. 지난해 2월에는 의원 19명이 “유연한 방식의 대북 접근을 통해 납치와 미사일, 핵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북-일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자”며 ‘한반도문제연구회’를 결성했다. 이와쿠니 데쓴도(巖國哲人) 당시 중의원 의원이 회장이었고 국민신당과 무소속 의원도 1명씩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해 자민당과 북한 방문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민주당 압승의 주역은 젊은 세대와 여성
   
▲ 이번 선거에서 뜻밖의 당선자가 됨으로써 정권 교체의 대명사가 된 후쿠다 에리코 의원.
지난 8월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이던 민주당이 여당 자민당에 308석 대 119석으로 승리를 거두며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정권교체’가 화두가 된 이번 선거의 주역은 단연 젊은 세대와 여성이었다. 중의원 480명 중 초선의원은 158명으로 약 33%를 차지했다. 특히 대승을 거둔 민주당의 초선의원 비율은 46.4%. 이에 비해 자민당의 경우 4.2%에 불과했다. 또한 여성의원의 경우 2005년 선거의 43명보다 크게 늘어난 54명으로 전체의 11.3%를 기록, 일본 정치사상 여성의원 비율이 처음으로 10% 대에 진입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를 진두지휘한 민주당의 실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의 ‘여성자객’이라 부르며 앞 다퉈 크게 다루기도 했다. 사실 ‘여성 자객’이란 말은 2005년 중의원 선거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26명의 여성 후보를 추천해 전원을 당선시키는 이변을 낳아 ‘고이즈미 여성자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당시의 여성 전략 공천이 당내 반발을 물리치기 위한 ‘반짝 이벤트’였던 데 비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 의원들은 국민이 바라는 ‘정권교체’의 선봉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갖는다.
   
♣후쿠다 에리코=전 방위상으로서 10선에 도전한 자민당의 거물급 의원 규마 후미오에 맞선 후쿠다 에리코는 선거기간 중에도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인물. 정치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움직인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 정치라면 ‘생명’을 구하는 것도 정치”라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에서 비롯된 진심어린 호소였다. 2001년 대학 재학 중 혈액제제를 통해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3년 뒤 제약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단에 참여, 대변인을 맡아 C형 간염 감염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08년 마침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확정하는 순간이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피해를 입은 나가사키 출신으로 병마를 이기고 관료조직에 맞서 싸운 그는 공약에서 지역의료 붕괴와 감염환자지원법 등 일본의 의료 문제를 지적하고 ‘여성이 자립할 수 있고 젊은이가 일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오키 아키=현 공명당 당대표인 오타 아키히로가 버티고 있던 도쿄 12구는 ‘자(민당)·공(명당) 정권’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 7월 하순까지도 민주당 후보가 확정되지 못했던 이곳에서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 아오키 아키(靑木愛·44)다.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가 “직접 출전을 고려하기도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던 이 지역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로서 적극 추천된 인물이다. TV 리포터 활동으로 인기를 끌었고 6장의 싱글과 1장의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한 아오키 아키는 한 달 남짓의 짧은 유세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1일 50회를 목표로 2000곳을 돌며 가두연설을 하는 등 주민에게 다가갔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본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보육사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2003년 비례대표 중의원을 지낸 후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계속해왔다. “교육이나 육아 현장과 관련 행정 간에 위기를 느껴 정치세계에 도전했다”는 그는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바꾸고 ‘국민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밖에 없다”며 일본의 변화를 역설했다.
♣에바타 다카코=이번 선거의 최대 접전지로 꼽힌 도쿄 10구는 여·여 후보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지역. 이 곳에서 자민당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후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57)에게 맞선 이가 도쿄대 교수 출신의 정치 신인 에바타 다카코(江端貴子·50)였다. 당선이 확정된 후 그는 “정치를 바꾸고 싶다는 여러분의 마음이 승리로 연결됐다”며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의 기세에 밀린 고이케 유리코는 비례대표로 부활해 가까스로 의원직을 유지했다. 에바타 다카코는 개호보험(한국의 노인요양보험에 해당) 제도의 개선을 첫째 공약으로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이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육아를 도와주던 어머니가 병으로 간병이 필요하게 됐을 때 관공서에서 ‘가족과 동거하는 상태라면 개호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답해 어머니를 위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 그는 “일본의 개호나 고용의 제도는 모두 여성이 가정에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고 있다”며 “육아와 개호를 경험한 여성이 정치의 당사자가 될 필요성을 느꼈다”며 정치 진출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고바야시 지요미=훗카이도 5구에서 당선된 고바야시 지요미(小林千代美·40)는 3전 4기의 도전 끝에 승리를 거둬 화제를 모았다. 그의 상대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의 수장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64). 8선 의원이자 전 관방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고바야시와 마치무라의 대결은 2000년 제42회 중의원 선거부터 시작, 2003년과 2005년까지 잇달아 차점을 기록한 바 있다. 2003년에 소선거구에서 낙선 후 비례대표를 통해 당선돼 문부과학위원회와 법무위원회·후생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제빵회사의 세일즈맨으로서 일하는 동시에 노동운동과 평화운동, 선택적 부부별 성 쓰기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뛰어든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시아 평화 의원 연대회의’ 참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는 아시아 국가 사이의 신뢰감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일본의 우경화에 비판의 목소리를 전한 바도 있다.


♣미야케 유키코·다나카 미에코=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군마 4구)와 모리 요시로(森喜朗·이시카와 2구) 두 전 총리와의 대결에서 선전한 미야케 유키코(三宅雪子·44·사진)와 다나카 미에코(田中美繪子·33)도 이번 총선에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 각각 1만2000표와 4500표의 근소한 차이로 패한 후 비례대표를 통해 당선됐다. 미야케 유키코는 후지TV 기자 출신으로 자민당 중의원으로 50년대 관방장관과 노동상을 지낸 이시다 히로히데(石田博英)의 손녀이기도 하다. 그는 “민영 방송국 기자로서의 경험과 시점으로 국민의 시선으로 생각하는 ‘모두의 정치’를 만들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힌 바 있다. 정치 신인인 다나카 미에코가 13선 의원인 전 총리에 맞서 4500표 차이로 아깝게 패한 이시카와 2구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최접전지였다. 다나카는 유세기간 중 정권교체 깃발을 탄 자전거를 타고 거리 곳곳을 누비며 모리 전 총리를 위협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여행사 계약직 사원을 거쳐 현 나고야 시장의 의원 시절 비서로 일한 바 있다. 당선 후 “전직 파견 사원으로서 ‘격차 사회’의 시정을 위해 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민들의 만년 여당에 대한 심판의 결과
일본 총선에서 야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해 정권을 잡기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다. 1955년 창당 이후 일본을 통치해온 자민당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민주당 정권의 탄생은 ‘새로운 일본’의 출발을 의미한다. 지난 54년간 자민당 정권이 구축한 정치·경제·외교의 틀은 다시 짜여진다. 민주당은 일본의 ‘전후(戰後) 체제’를 떠받쳐온 자민당의 보수주의·성장 중시·친미 외교의 세 기둥을 뜯어고칠 태세다. 정치에선 중도 보수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관료 우위의 정책결정 시스템을 철저히 쇄신할 계획이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바꿔 중소기업·서민을 배려하고 복지에 치중할 예상이다. ‘성장’에서 ‘분배’로의 전환이다. 또 미·일 동맹을 골간으로 한 친미 안보외교가 그동안 일본 외교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론 ‘자주’가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총선은 ‘만년 여당’ 자민당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했다. 야당인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자민당이 못마땅해 일본 국민은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일본 국민은 왜 자민당에 등을 돌렸을까. 전문가들은 경기 악화를 가장 큰 배경으로 꼽는다. 김숙현 도호쿠대 법학부 교수는 “원래 보수적인 일본 국민의 마음이 자민당을 떠난 건 경제 사정이 나빠진 게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의 7월 실업률은 5.7%로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53년 4월 이후 최악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때보다 심각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생활이 빈곤해지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57%에 달했다. 이 역시 1953년 조사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기 대책은 헛발질이었다. 다나카 나오키 국제공공정책연구센터 이사장은 “일본은 돈은 돈대로 쏟아 붓고도 효과가 별로 없는 데 쓰는 바람에 선진국 중 경기 회복이 가장 늦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민당은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이 아니라 구태정치만 보여주자 ‘못살겠다, 바꿔보자’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김 교수는 “국민은 먹고 살기 힘든 마당에 자민당 정권은 총리직을 세습 정치인인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가 돌아가며 맡다가 무책임하게 내팽개쳤다”며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 행태에 일본 국민이 화가 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5000여만 건의 납부 기록이 사라질 정도로 부실한 연금 관리

△올초 나카가와 쇼이치 재무상의 로마 ‘음주 회견’ △아소 총리의 잇단 실언 등 최근 2~3년간 속출한 악재는 민심 이반을 재촉했다. 자민당이 이처럼 인기를 잃어가는 사이 민주당은 선거에서 △자녀 1인당 중학생까지 월 2만6000엔(약 34만원) 지급 △고교 무상화 △고속도로 무료화 등 인기 공약을 쏟아냈다.

 관료들이 모든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매개로 정치권 · 관료 · 기업이 서로 얽힌 정·관·경 유착의 ‘먹이사슬’ 고리를 끊겠다고 공언했다. 외교 부문에선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 설정을 강조하며 일본 정가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민주당이 ‘일본의 새로운 출발’에 시동을 걸기도 전에 여기저기 암초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외교노선 전환에는 반미주의란 비판이, 행정 개혁엔 관료들의 반발이, 경제정책 수정엔 재원 확보 문제가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선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생활 지원’ 공약 실천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본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달할 정도로 재정이 심각한 적자 상태여서다. 공약을 모두 지키려면 2013년까지 16조8000억엔(약 220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일본 정부 예산(207조엔)의 8%를 넘는 규모다. 민주당은 이 돈을 낭비 예산 절감(9조1000억엔),국유자산 매각(5조엔),조세 감면 축소(2조7000억엔) 등으로 조달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세금을 올리지 않고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 해결한다는 것.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예산 절감의 타깃인 공공사업비는 고이즈미 내각 때부터 계속 줄여 더 줄일 것도 없는 상황이다. 공무원 임금 삭감은 민주당 지지세력인 공무원노조가 반대할 게 뻔하다. 민주당이 과감히 줄이겠다는 정부 보조금도 노인간호나 생활보호 등 대부분 복지비용이어서 감축 여지가 많지 않다. 결국 공약 이행을 위해선 국채를 더 발행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재정 파탄이 우려된다. 반미 관련 시비도 민주당이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차기 총리 취임이 확실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의 바탕이 된 ‘나의 정치철학’이란 논문에서 “일본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시장원리주의에 농락당했다”며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도 미국의 시장원리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파탄이 초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보 전략은 미·일 동맹이 근간이라면서도 “미국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수 측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 오카모토 유키오 외교평론가는 “하토야마 대표만큼 미국을 비판하는 국가 지도자는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대통령밖에 없다”며 “특히 ‘일본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독립을 유지할까’라고 쓴 것은 미국이 일본의 동맹국이란 사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무성 관계자도 “자민당이 한때 정권을 놓쳤던 1993년 호소카와 내각 때 미국과 관계가 서먹해져 그걸 복구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며 “대미외교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야당이 된 자민당이 극우파 의원을 중심으로 ‘현실론’을 내세워 외교·안보정책을 물고 늘어지면 민주당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민주당은 국정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데다 당내에 외교전문가도 거의 없다. 또한 관료조직은 50년 이상 쥐고 있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버틸 게 분명해 관료 개혁에도 난관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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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ryn
(109.XXX.XXX.225)
2011-10-31 17:41:33
ubPChSgCy
Kudos! What a neat way of thniikng about it.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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