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 예정자의 인사청문회 발언으로 시작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가 여,야간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도권 과밀화를 막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하기로 한 세종시는 사실상 참여정부 시절부터 대통령 공약으로 추진되어 온 국정 과제 중 하나다.

▲ 세종시-조감도

지난 2003년 12월 정부와 여당은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을 처리했으나 곧바로 수도이전 논란에 휩싸였다. 다음해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고, 국회는 2005년 12부4처2청 규모의 부처를 이전하는 현재의 세종시를 건설키로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직제 개편이 추진됨에 따라 9부2처2청에 대한 관보 변경고시를 추진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게재하지 않고 있다.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현재의 세종시 추진안대로 결정될 경우 유령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당초 목표인 인구 50만 명을 이전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족기능이 없을 경우 이전한 기관들이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불필요한 비용만 소모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당은 세종시로 이전할 정부부처의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에 기업과 대학의 이전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중 한 개 본사와 교육과학기술부를 포함해 1~2개 부처를 옮기고 서울대 공과대학이 이전해 과학도시 기능으로 특성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운찬 국무총리의 계산된 발언?
이처럼 가끔씩 터져 나오는 세종시 축소론으로 속으로 들끓던 충청권 민심에 기름을 부은 건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발언이었다. 정 후보자는 9월3일 청와대의 개각 발표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원안대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충청권 국회의원들이 지난 22일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한 긴급 연석회의를 마친 뒤 규탄대회를 열었다.

정 후보자가 ‘원안 수정’을 언급하자 청와대는 곧바로 이를 정 후보자의 개인적 발언으로 몰고 갔다. 9월10일에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나서 “현재까지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행정도시 반대론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충청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행정도시 추진 방식에 대한 논란은 언제든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는 이슈였는데, ‘충청권 총리’로 불린 정 후보자가 총리 임명장을 받기도 전에 뇌관에 불을 붙여버린 것이다.

정몽준 “세종시 다양한 여론 수렴필요”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30일 세종시 논란과 관련,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SBS 라디오 `이승열의 SBS 전망대'에 출연, "수도권에서 떨어진 곳에 새로운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니까 그 취지를 충분히 살리는 게 좋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운찬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세종시가 많은 분들의 관심사항이 됐고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우리로서는 가능한 한 약속을 지키면서 어떻게 하면 취지를 살릴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은 “세종시법을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정 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당내에 퍼지면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장광근 사무총장은 2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동안 진행돼온 것에 일정 부분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며 “충청권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변화가 필요하면 수정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진수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진수희 의원도 “당론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여론이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당론을 바꿀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여의도연구소가 27일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28.5%로 12일 조사(40.4%)에 비해 11.9%포인트 낮아졌다”며 분위기를 잡은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 주류 일각에서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과 정 총리의 소신이 일치했고 이를 여당이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쟁의 대상이 아닌 균형발전의 신모델로 탄생시켜야  
정운찬 국무총리는 29일 세종시 건설 방향에 대해 "(수정 추진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으나 아직 어떻게 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부 부처와 국회 여론 등을 전부 살펴서 결정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세종시 문제는 약속을 지키는 것과 효율을 고려하는 것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라며 "현재까지 약속을 지키는 것만 따진다면 원안대로, 장기적으로 효율을 따진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대해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30일 정운찬 총리가 `송도와 과천모델로 나누어 의견을 제시한 것과 관련, "잘못된 선입관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당5역 연석회의에서 "정 총리의 발언은 세종시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세종시는 행정중심도시냐, 아니면 자족도시냐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 총리의 예를 인용하자면 과천과 송도를 합친 것과 같은 도시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법이 규정하고 있는 세종시의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원안추진이냐 아니냐의 세종시 향방은 국정감사후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총리를 비롯한 여권인사들의 발언속에서 세종시 축소론은 정부, 여당의 추진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사실 정권이 바뀐다고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국정과제까지 덩달아 뒤집히는건 옳지 않다. 세종시의 앞날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본래의 뜻을 살펴 정쟁의 대상이 아닌 중앙과 지방이 상생할 수있는 신모델로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