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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뒤에 장사상륙작전이 있었다
“작지만 단단한 영화로 그려내고 싶었다”
2019년 10월 07일 (월) 15:30:29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인천상륙작전 뒤에 가려진 장사상륙작전. 기밀에 부쳐진 탓에 기억하는 이가 드문 그날이 대한민국 대표 스토리텔러 곽경택 감독과 비주얼리스트 김태훈 감독의 공동 연출로 스크린에 되살아난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당시 학도병들의 치열했던 전투를 현장감 있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진정성 있게 전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신세영 기자 syshin@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역사에 숨겨진 772명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됐던 장사상륙작전을 그린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던 국군은 위태로운 전쟁의 판도를 뒤집고자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장사상륙작전은 경북 영덕군 장사리 해변에서 북한군의 이목을 돌리며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펼쳐진 기밀작전이다. 작전에 참여한 인원의 대부분은 2주간의 짧은 훈련기간을 거친 평균나이 17세, 772명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낡은 장총과 부족한 탄약, 최소한의 식량만을 보급받은 그들은 문산호를 타고 장사 해변에 상륙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다. 상륙 당시 태풍을 만나 문산호가 좌초되는 등 여러 차례 이어진 난관과 악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작전을 이어갔다. 좋은 구조를 가진 초고를 바탕으로 각색 작업에 돌입한 곽경택 감독은 먼저 두 가지를 염두에 뒀다. 첫 번째는 영화적인 멋스러움과 화려함을 배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실화를 실화답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문헌과 기록, 가능한 모든 자료를 검토했지만 실제 참가했던 분들의 증언,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오랜 조사를 바탕으로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속 학도병 캐릭터 각각에 고유한 사연을 부여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 곽경택 감독

“그들은 여기서 전쟁을 했다는 각오로 촬영에 임했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한국영화 제작환경에서 보기 드문 시도를 했다. 공동연출을 맡은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은 정확한 역할 분담 아래 유닛으로 나눠 촬영을 진행했다. 두 감독은 김성환 촬영감독, 김승규 조명감독과 함께 진정성이 담긴 영화의 룩과 화면의 질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참호 전투, 고지 점령 등 영화의 주요한 전투 장면은 핸드헬드 기법과 액션 커트를 최대한 길게 가져가는 롱 테이크 방식을 통해 생동감을 살렸다. 영화는 영덕 해변, 삼척, 밀양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학도병들의 상륙 장면은 영덕 고래불 해변 인근에서 촬영했다. 수심이 얕아 촬영에 용이했고, 바로 뒤 장사리 해변과 비슷한 소나무 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담당한 공간인 만큼 제작진은 자연스러운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얕은 수심에 비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파도가 높게 치는 곳이었기에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유격대의 가장 치열한 전투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넓은 부지가 필요했는데, 제작진은 삼척을 선택했다. 이 공간은 곳곳에 작은 나무들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숲과 다른 건설 부지였기에 충분한 세팅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화 속 고지는 다양한 지형과 지반을 이용한 전술적 방어진지였던 만큼 각각의 구조물들이 전체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설계했다. 터널 폭파 장면이 촬영된 곳은 밀양이었다. 차 한 대만이 지나갈 수 있는 넓이의 터널로 유동 차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이 간간이 이용하는 공간이었기에 마을과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 약 1주일간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곽 감독은 “로케이션 자체가 굉장히 험난한 곳들이었다. 화장실에 한번 가려면 20분은 걸어야 했고, 비를 뿌리니 진흙밭이 되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여기서 촬영을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이곳에서 전쟁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촬영에 임했다”고 밝혔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는 한국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믿고 보는 배우 김명민이 유격대를 목숨 걸고 이끄는 ‘이명준’ 대위 역을 맡았다. 중요한 작전의 순간, 묵묵히 앞장서는 일등 상사 ‘류태석’ 역은 김인권이 맡았으며, 곽시양은 위기의 상황에서 뛰어난 책임감으로 학도병을 이끄는 중대장 ‘박찬년’ 역할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여기에 할리우드 스타 메간 폭스와 조지 이즈의 참여해 기대감을 높인다. 메간 폭스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종군 기자 ‘매기’ 역을, 조지 이즈가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군인이자 미군을 대표하는 인물 ‘스티븐’ 대령 역을 소화해 무게감을 더한다.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친구>로 약 820만 관객을 동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는 등급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2001년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다시 썼다. “그간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가 좋아하는 영화, 또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영화들은 주로 실화 중심의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언급처럼 그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연출작 <극비수사>는 사주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탄생해 약 29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고,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암수살인>은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과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의 실화에서 출발해 약 38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Q.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데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비교적 짧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편집을 했나?
- 절대로 규모가 큰 이야기가 아니라고 작품에 함께한 동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화를 요약하자면 기밀작전을 시작해 학도병들이 상륙작전을 벌이고 큰 희생을 치렀고 그중에 몇 사람이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영웅의 이야기도 아니고 대규모 전투를 다룰 수도 없었다. 이 영화를 작지만 단단한 작품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따라서 큰 스케일의 장면을 구상하기보다는 상륙, 터널 전투, 퇴각 등의 주요 장면에서 그 속에 녹아든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편집의 방향을 잡았다. 한 사람이 중심이 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을 다루고 있어 드라마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법이 필요했고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장면들은 과감하게 편집했다.

Q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작품에 대한 제의를 받고 머릿속에 아버지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아버지는 17살에 피난선을 타고 평안남도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분이다. 남과 북이 현재까지도 갈라져 있는 가슴 아픈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세상으로 나왔으면 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던 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연출하게 됐다.

Q. 잘 알지 못했던 장사상륙작전, 이 작전은 어떤 기밀작전인가? 
- 장사상륙작전은 5000분의 1이라는 확률을 뚫고 성공시켜야만 했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위장작전이다. 당시 원산, 장사, 군산 등에 위장 작전에 대한 명령이 있었고 다른 작전들은 옛날 장비만 가져다 두거나 멀리서 포를 쏘는 방법으로 적진으로 침투할 것 같은 느낌만 전하는 작전이었지만 장사상륙작전은 실제 전투 병력이 파견이 됐던 작전이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이 위급한 상황이라 정규 병력이 아닌 학도병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작전이다.

Q. 캐릭터에 실존 인물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 실명을 사용하는 것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우선, 영화 속에서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처럼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 학도병들은 희생을 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본명을 쓰기보다는 가명을 사용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종군 기자 ‘매기’ 역시 하나의 인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전쟁을 기록했던 많은 종군 기자들 전체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화의 캐릭터는 새롭게 구축된 인물들이기 때문에 현재 실존 인물들 중 누구의 이름을 가지고 캐릭터화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편을 택했다.

Q. 역사적인 작품을 다룬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부분을 가장 조심스럽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 전쟁 영화를 연출하면 일반적으로 감독으로서 영화 속에 새로운 샷이나 영화적인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태훈 감독과 상의를 한 끝에 내린 결론은 스타일보다는 현실감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한 샷을 굉장히 공들여 촬영하는 것보다는 연기자들을 현실 상황에 놓인 것처럼 두고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Q. 공동 연출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뤄졌나?
- 작품에 참여할 당시에 김태훈 감독이 로케이션과 미술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출을 맡았을 때 짧은 시간 내에 촬영을 끝내야 했다.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촬영하는 것이 어려웠다. 기후나 시간을 고려해 따로 촬영을 할 때는 다른 장소에서 장면을 분배해 연출을 이어갔다. 유닛 작업을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연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소통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점차 손발을 맞추며 극복해 갔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가 유닛 촬영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태훈 감독과 함께 이런 작업을 해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작품의 메가폰을 잡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던 중 장사상륙작전 유격동지회 회장님을 만나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어린 학생들 중 살아남은 분들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다. 살아남지 못한 많은 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힘들겠지만 작품을 연출하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통해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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