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숙 작가의 「꿈꾸는 시간」展이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들꽃을 중심에 두고 주변을 수묵의 톤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한국의 들꽃은 어쩌면 또 다른 상징체계로서 작품 구성의 핵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신선영 기자 ssy@

수묵 빛깔로 표현한 자유로운 주제의식
노진숙 작가는 오랫동안 수묵화 영역에도 관여했기 때문에 방법의 기조가 수묵에 근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동양적 깊이를 지닌 먹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나타내고 있다. “채색만으로는 딱딱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먹의 번짐이 어우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한국적인 미감이 가미되면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어머니가 주신 꽃밥》에 나타난 먹의 번짐이 작가세계의 단면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먹이라는 재료를 통해 표출되는 심미세계, 그 세계는 근원적인 것으로 회귀를 갈구한다. 이는 화면의 중심에 놓인 그릇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여인의 가슴을 닮은 그릇으로 어머니를 대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각을 더 세우고 굽을 더 높여서 형상을 극대화 했어요. 실제로 사발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가 이런 모형을 하고 있어요.”

▲ 어머니가 주신 꽃밥

《마음드림》에서는 검은 실루엣의 그릇을 참숯가루 분채로 그렸다. 여기에 소담하게 담겨진 들꽃을 보고 있으면 꿈꾸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런 어둠의 영역은 보는 이로 하여금 초월적이면서 영적인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수묵 빛깔의 신비한 톤이 몽환적인 깊이를 더해주기 때문에 음의 영역은 곧 초월적인 공간이 되고, 그 시선은 잠시 아득하게 하면서 막막함으로 빠뜨린다.《가슴에 담은 맑은 영혼》에서는 그릇을 돌가루인 석채로 그려서 돌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작품 설명이 관람객들을 울리기도 했다고. 강한 색채의 꽃으로 메워나간 화면, 여기에 먹의 여백으로 공간 관계를 설정한 것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통감하게 한 것이다.

▲ 마음드림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이 희망의 밥
노진숙 작가는 2011년 첫 개인전인「엽과 색」展을 통해 낙엽을 그렸다. 상생과 소멸, 죽음과 부활이라는 의미였던 낙엽이 이번「꿈꾸는 시간」展에서는 꽃을 틔움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뿌리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 잎이 가을이 되면 낙엽이 돼서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그 낙엽을 거름으로 핀 들꽃이 다시 길을 밝혀주는 것이 자연의 섭리예요.” 땅 속에서 숨고르기를 거친 낙엽이 슬며시 꽃이 되어 나타나 손수건을 건네주고, 아픈 데를 감싸주고, 기쁜 일을 나눠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 (위) 내일도 사랑을 채워가며 (아래) 가슴에 담은 맑은 영혼

꽃의 섬세한 묘사와 조화는 생의 기쁨과 연관된다. 노진숙 작가가 그린 들꽃은 생명이자 꿈과 희망이다. 그래서 이 작은 꽃에 수술과 잎까지 그려 그릇에 한가득 담았다. “시간이 지나서 제가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이 나의 꿈과 희망을 키워준 ‘꽃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하디 흔하지만 귀하디 귀한 꽃밥이요.” 이 꽃은 자신의 감각, 체험, 기억, 안타까운 흔적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 꽃이다. 그러기에 세필(가는붓)로 작은 크기의 꽃을 무수히 반복해서 그려간 작업이 자신을 가다듬는 행위로도 비친다.

▲ 노진숙 작가

이러한 아름다움의 근저에는 그 같은 생을 보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부드럽고 따스한 시선이 녹아있다. 특히 《내일도 사랑을 채워가며》에서는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필 때는 꽃이 없어 서로를 그리워 한다는 상사화를 은은하고 푸근하게 그려냈다. “누구에게나 마음 설레는 만남, 가슴이 아픈 이별을 간직하고 살잖아요. 사랑하고, 기억하고, 또 서로 그리워하면서 날마다 사랑을 채워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해요.”

생명, 꿈, 희망의 메시지
 “생명, 꿈, 희망의 원천을 처음에는 낙엽에서 찾았고, 그 잎맥의 가느다란 생명력으로 꽃을 피웠어요. 다음 작품도 자연의 섭리로 이어지는 연작이 되지 않을까 해요.” 삶의 작은 부분에서 영원까지 내다보는 태도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어머니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작가를 흔들게 했다면, 작가는 그 흔들림을 바탕으로 다시금 어머니와 교류하는 정서를 서정적으로 이어나갈 것이다. 앞으로 노진숙 작가의 정진이 더욱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