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위는 23일 공청회를 열어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전면 실시된 기초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유지 여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공청회에 출석한 진술인들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내놓으며 유지와 폐지를 놓고 입장을 달리했다.

정당공천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은 필수불가결 조건이므로 만일 정당공천 없이 지방선거가 치러진다면 지방 토호들의 금품 선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지역주의 극복과 공천비리 근절, 지방자치 실현, 여성참여 확대 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중앙당의 지방선거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초지방선거에 중선거구제를 실시한 결과 당초 목표인 지역주의 타파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부각된 만큼 국회의원 선거의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오프라인 방식으로 규제하지 말고 상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열린 _공직선거제도에 대한 공청회

정당공천으로 지역감정 조장과 유능한 인재의 의회 진출 차단
이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열린 '공직선거제도에 대한 공청회'에서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정당 없이 대의제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할 수 없듯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에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하지만 "정당공천이 줄서기를 강요할 뿐 아니라 공천헌금이나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수수 등 정치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면서도 "그렇다면 정당공천을 투명하고 올바르게 하도록 해야지 그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침소봉대"라고 정당공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이연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

이에 비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한 이연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예로 들며 "정당공천제를 둘러싸고 각종 비리와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지역감정의 조장과 유능한 인재의 차단, 법과 제도 경시풍조 등의 폐단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의 경제와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해 잘 알고 봉사할 준비가 돼 있는 지역 일꾼이 필요하다"며 "비록 정당공천제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부작용이 극심하고 내년 지방선거가 지방자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만큼 정당공천제는 폐지돼야 할 것"이라고 정당공천제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회장은 이어 정당공천의 대안으로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주민공천심사위원회',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남녀동반선출투표제 등을 제시했다.

조진만 인하대교수는 발제를 통해 "(2012년) 대선과 총선이 맞물리며 20년만에 변화를 위한 호기를 맞이했다"며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선거구제를 실시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의 의석을 독점하는 폐해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이어 "하지만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1등과 차점자간 득표 차가 많이 날 경우 정치 대표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역주의가 오히려 내부에서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했다. 또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경우도 지역주의 타파의 효과가 적을 수 있다며 직능 대표를 뽑는 기본취지를 살리면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영태 목포대교수는 "기초지방의회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갈등 조장 △중앙정치에 지방정치가 예속화 △지방정치인의 비리 증가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적절하게 조정하면 정당정치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만큼 폐지보다는 개선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중선거구제를 실시했지만 지역주의 해소의 효과가 미미했다"며 "한 당에서 여러 명을 공천하거나 같은 정당 후보끼리 경쟁하면서 정당의 안정성이 커지고 비용이 증가하는 등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를 연동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 손혁재 경기대 교수

손혁재 경기대교수는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환원하기보다는 오히려 5인 이상의 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게 낫다"며 "비례대표의 경우도 현재 10%에서 30%로 확대해 장애인 등 정책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또 "선거운동의 자율을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며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오프라인 방식으로 규제하지 말고 상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여, 야 정치권은 정당공천제 옹호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 여야 정치인들은 정당공천제 폐지보다는 유지 쪽에 무게를 실어줬다.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은 "공천심사가 지구당 국회의원이나 시도당위원장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며 "공천비리도 일부 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돈을 받고 해주는 사례가 얼마 없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의 정치 진출에 대해서도 정당공천이 비례대표 의무비율 도입 등으로 유리한 점이 있다면서 "같은 경쟁력이라면 여성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정당인데 왜 개별로 하는 게 여성에 유리한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도 "정당공천을 하면 내부에서 나름대로 후보자 검증 과정을 거친다"며 "현 기초의원들과 전 기초의원을 비교했을 때 현 의원들의 자질이 더 우수하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이어 정당공천이 안된다면 지역토호들의 돈정치를 막을 수 없다는 우려와 더불어 정당공천 없는 기초의원들이 연륜 있는 기초단체장을 견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정당공천제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선거구제 개편안,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 선상투표, 재외동포 투표권 시행방안 등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를 나눴다.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