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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삼천포 아가씨’,‘영산강 처녀’의 작곡가, 송운선의 삶과 노래[3]
전국 곳곳에 세워진 ‘송운선 노래’의 노래비를 돌아보다
2019년 09월 05일 (목) 14:52:08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삼천포아가씨’, ‘영산강 처녀’, ‘채석강의 절경’, ‘지는 해가 아름다워’... 등등. 전국 각지에 세워진 여섯 개의 노래비가 그렇듯 노래는 물론 작곡가로써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음에도 개인 활동은 비교적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송운선 선생(88).

▲ 작곡가 송운선 선생의 젊은 시절, 그리고 대표작 ‘삼천포아가씨(은방울자매)’ 음반.

그는 음악 생활 60년 동안 가요계 현장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가요계를 떠나서 외도한 적 또한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 방송작가 1호이자 작사가 유호 선생은 그를 ‘평생 놀지 못하도록 타고난 작곡가’라고 했을 정도다.

실제로 그의 활동 기록을 살펴보면 얼마나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파라마운트와 크라운 레코드사의 기획과 문예부 일을 도맡았으며 원로작가들의 모임인 한국가요작가동지회 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까지 역임했다.

어느덧 88세로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최고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최근에도 부지런히 관계자들을 만나고 가수를 키우고 곡을 쓴다.

평소 목소리 톤은 높지 않지만, 저력이 느껴지는 인물. 그 일관성과 부지런함….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결코 평범치 않은 작곡가 송운선 선생의 삶과 노래. 그 세 번 째. 이번 호에서는 전국 곳곳에 세워진 ‘송운선 노래’의 노래비를 돌아본다.

글ㅣ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전국 곳곳에 세워진 송운선 노래의 노래비를 찾아서...

▲ 2005년 사천시 삼천포대공원에 세워진 ‘삼천포아가씨’ 노래비와 ‘삼천포아가씨’ 친필악보.

우리나라 곳곳이 그 유래와 더불어 노래의 소재가 되고 아울러 대중들로부터 애창됨으로써 다시금 관광명소로 거듭난다.

노래비는 노래가 지닌 가치의 형상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노래비 건립으로 인하여 그 의미가 더욱 깊게 각인됨과 동시에 오래도록, 후세에까지 널리 전파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래비는 총 5백여 개에 이른다. 그 중 대중가요의 노래비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노래 또한 마찬가지. 노래의 배경을 알고 나면 그만큼 노래가 더욱 가슴에 와 닿기 마련이다. 전국의 명소 곳곳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되어 불리면서 더욱 명소로 거듭나는 이 노래비 현장, 송운선 선생이 만든 노래의 노래비를 찾아 떠나보자.

사천시 삼천포대공원에 세워진‘삼천포아가씨’ 노래비

1.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는 내 님이여/이제 가면 오실 날짜 1년이요 2년이요/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

2. 조개껍질 옹기종기 포개놓은 백사장에/소꿉장난 하던 시절 잊었나 님이시여/이 배 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마는/기다려요 네 기다려요 네 삼천포 아가씨는.

3. 꽃 한 송이 꺾어 들고 선창가에 나와 서서/님을 싣고 떠난 배는 날마다 기다려도/그 배만은 오건만은 님은 영영 안오시나/울고 가요 네 울고 가요 네 삼천포아가씨는. -‘삼천포아가씨(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 은방울자매 노래)’

이 노래는 작곡가 송운선씨가 은방울자매를 위해 만든 두 번 째 음반 타이틀곡으로 1965년 크라운레코드사에서 출반, 은방울자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회심의 역작이다.

“한려수도의 한가운데 자리한 소도시 삼천포(지금의 사천시)를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노래죠. 이 노래는 1960년대 초, 을지로 ‘스카라 계곡(가요인들이 주로 모이는 스카라극장 주변을 그들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에서 반야월 선생이 아주 드라마틱하고 애절한 가사라며 직접 쓴 ‘삼천포 아가씨’ 가사를 건네주었죠. 그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 ‘초막집’에서 막걸리를 안주삼아 흥얼거리는데 옆에 계시던 작곡가 박시춘 선생이 ‘돌아와요 네’ 부분을 한 번 더 반복하면 좋겠다는 조언에 따라 그 부분을 수정해 완성시킨 곡이었죠.”

옛 스카라극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던 ‘초막집’은 작곡가 박시춘, 김교성, 손목인, 반야월, 고명기, 유춘산, 월견초, 전칠성 등 가요계 유명 작가와 가수들의 발걸음이 잦기로 소문이 나 전국 각지의 유명 인사와 기자들까지 단골로 찾아오는 대폿집으로 각종 가요계 정보를 주고받던 장소로 유명했다.

“특히 그 때 반야월 선생이 가사를 건네주면서 작곡가 이재호 선생과 삼천포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약제사 간의 로맨스를 듣고 쓴, 그러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지은 가사라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납니다.” 선생의 회고다.

또한 이 노래 ‘삼천포아가씨’에 대해 작사가 김지평씨는 ‘송운선 가요명곡전집(2001년, 아름출판사 발행)’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삼천포아가씨’는 첫 도입부 ‘비 내리는-’의 멜로디에서부터 사람의 간장을 반쯤 녹여 놓는다. ‘미’에서 6도 음정 상에 있는 ‘도’까지 솟았다가 그 ‘도’에서 다시 3도 음정상의 ‘미’까지 치감아 올려, 결국 ‘미’까지의 가파른 1옥타브를 유연하게 돌아 오르도록 마무리 했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맺혔던 정한(情恨)의 응어리가 한 달음에 분출되는 그런 모양새다. 가수의 노래도 이 부분에서 가히 절창의 경지를 보여준다...”라고.

이 노래의 노래비는 2005년, 삼천포대공원에 세워졌고 현재 사천시에서는 이 노래의 제목을 딴 ‘삼천포아가씨가요제’를 매년 여름에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9회 째다.

▲ 광주 너릿재에 세워진 ‘영산강처녀’ 노래비 제막식에서의 송운선, 송춘희씨(2000년 10월)와 ‘영산강처녀’ 음반.

영산강 지류, 광주 너릿재에 세워진 ‘영산강처녀’노래비

1. 영산강 굽이도는 푸른 물결 다시 오건만/똑딱선 서울 간 님 똑딱선 서울 간 님/기다리는 영산강 처녀/못 잊을 세월 속에 안타까운 청춘만 가네/길이 멀어 못 오시나 오기 싫어 아니 오시나/아-- 푸른 물결 너는 알지 말을 해다오.

2. 유달산 산마루에 보름달을 등불 삼아/오작교 다리 놓고 오작교 다리 놓고/기다리는 영산강 처녀/밤이슬 맞아가며 우리 낭군 얼굴 그리네/서울 색시 고운 얼굴 정이 깊어 아니 오시나/아-- 구곡간장 쌓인 눈물 한이 서린다. –‘영산강 처녀(천지엽 작사, 송운선 작곡, 송춘희 노래)’

196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송춘희의 감칠 맛 나는 가창력을 한껏 끌어낼 수 있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송춘희씨는 KBS 송영수 PD의 소개로 처음 만났어요. 정감 어린 창법이 일품이었지요. 이 노래로 콤비를 이룬 작사가 천지엽(본명 천정식)씨를 만날 때마다 주위에서 ‘처녀박사’끼리 제대로 만났다고 한마디씩 하곤 했지요. 천지엽씨는 ‘개나리 처녀’에 이어 이 노래 ‘영산강 처녀’를 만들었고 나 역시 ‘삼천포아가씨’와 함께 이 노래를 히트시켰기 때문이었겠죠. 허허...”

이 노래 전주 부분에 당시로써는 새로운 리듬이었던 ‘룸바 탱고’를 과감하게 도입해 사용한 것이 당시 미8군 쪽에 출입하던 음반 제작자 킹박(본명 박성배)의 눈에 띄어 본인이 직접 음반을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아울러 이 노래의 빅 히트로 인해 당시 무명이었던 가수 송춘희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출연료가 거의 세 배 가깝게 올랐지요. 하루 출연료 3천원에서 무려 1만원으로 순식간에 올랐는데 당시 인기가수들이 7천 원 정도 받을 때였으니까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였죠. 제겐 무명을 벗어나게 해준 노래인 동시에 이후 작곡가들과 음반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러니까 다른 노래들도 여러 곡 받아 취입할 수 있게끔 계기가 되어준 노래죠.” 송춘희(82)씨의 말이다.

“송선생님은 가수들에게 기타로 연습시킬 때마다 항상 ‘참 잘 한다.’, ‘한 번 더 불러보면 더 잘할 것 같다.’ 등등... 칭찬의 말을 통해 늘 기를 살려주시는 분이세요. 그 때문에 가수들 입장에서는 정말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며 “가수들마다의 목소리 특징을 잘 살려주시고 또 예나 지금이나 매사 정확하고 빈틈이 없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노래는 2000년 10월 17일, 영산강 지류인 광주 동구 너릿재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 만리포해수욕장에 세워진 ‘만리포사랑’ 노래비 앞에서 가수 박경원(좌측)과 작사가 반야월 선생. 이 노래비는 두 개가 세워졌다.

만리포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빅히트, ‘만리포 사랑’ 노래비

‘만리포 사랑’은 1958년, 만리포 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발표된 노래다.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 노래. 그러나 실제로는 이 인물들 모두 만리포를 가보지 않은 채 노래를 만들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이들은 수영을 전혀 못하는, 당시 용어로 속칭 ‘맥주병(물속에 넣으면 꼴깍거리며 가라앉는다는 의미)’들이었다. 이 노래의 편곡자가 바로 송운선 선생.

그 무렵 우리나라는 아직 ‘춘궁(春窮)’이란 단어가 있던 시기였다. 또한 원조물자로 살던 때였던지라 ‘레저’라는 것이 일반화되기 전이었지만 50년대 말, 전국의 해수욕장들이 줄줄이 개장하며 동시에 여름 피서를 겨냥한 대중가요도 대거 쏟아질 때 함께 등장한 노래다.

말하자면 대중가요란 매개체를 통해 상상 속의 여행을 떠남으로써 서민들에게 꿈을 대신해주던 시절이었다. 그렇듯 이 노래 ‘만리포 사랑’에는 50년대식 해수욕장에 대한 꿈과 낭만이 구구절절 담겨져 있다

1.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그립고 안타까운 울던 밤아 안녕히/희망의 꽃구름도 둥실 둥실 춤춘다.

2. 점찍은 작은 섬을 굽이굽이 돌아서/구십 리 뱃길 위에 은비늘이 곱구나/그대와 마주 앉아 불러보는 샹송/노 젓는 뱃사공도 벙실 벙실 웃는다. -‘만리포 사랑(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송운선 편곡, 박경원 노래)’

이후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자 반야월 선생은 새롭게 3절 가사를 만든다. 참고로 3절 가사는, ‘수박빛 선글라스 박쥐양산 그늘에/초록빛 비단물결 은모래를 만지네/청춘의 젊은 꿈이 해안선을 달리면/산호빛 노을 속에 천리포도 곱구나.’이다. 이 노래의 노래비는 1994년 8월15일 만리포해수욕장에 세워졌다.

수만 권의 책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 아름다운 ‘채석강의 절경’

▲ 부안에 세워진 ‘채석강의 절경’ 노래비 앞에서 작곡가 송운선과 작사가 신현택씨.

전북 부안에는 송운선 작곡의 노래비가 유독 많이 세워져 있다. ‘채석강의 절경’, ‘해넘이 노래비-지는 해가 아름다워’, ‘변산 아으리랑’ 등.

우리나라 8대 관광지 중 하나인 노령산맥이 뻗어 내리다가 서해로 튕겨 나온 듯, 변산반도에 위치해 있는 채석강.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채석강의 절경’ 노래비가 지난 2007년 7월5일 세워졌다.

수만 권의 책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 아름다운 채석강을 노래한 ‘채석강의 절경’은 부안 출신의 작사가 신현택씨(72)가 유년 시절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쓴 노랫말에 송운선 선생이 곡을 붙이고 가수 김현아가 불러 1999년 발표되었다.

그러나 가수 김현아가 갑자기 타계, 빛을 보지 못하다 지난 2007년, 채석강에 노래비가 세워지면서 가수 최영주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1. 산과 바다 천혜절경 발길 닿는 곳마다/수성암층 아름다운 해안선 신비롭다/내소사 돌고 돌아 바다의 변산/백사장을 내님과 걸어갔던 옛 추억들/이제는 이제는 카페리호 타고서 위도로 가네.

2. 수천만 년 파도 속에 부딪히며 길고 긴/세월 속에 수만 권의 책만을 쌓은 듯한/기이한 형상들의 채석강인데/바람처럼 왔다 간 나의 님은 소식 없고/격포항 손 흔들며 카페리호 타고서 내 마음 애태우네. -‘채석강의 절경(신현택 작사, 송운선 작곡, 김현아, 최영주 노래)’

부안 출신의 작사가 신현택씨는 이밖에도 부안을 소재로 많은 노래를 발표했다. ‘선운사 풍경소리(나현재)’, ‘도포서원(최영주)’, ‘추억의 변산반도(태민)’. ‘못 잊을 선운산(최영주)’, ‘향우의 노래(최영주)’ 등등...

젊은 시절 가난이 싫어 무작정 떠나온 고향, 그러나 타지를 돌수록 고향에 대한 사무침은 더해갔다. 그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준 것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때문에 그는 고향에 관한 노래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를 누군가 듣는다면 그 또한 자신처럼 노래를 통해 향수를 달래고 위안을 받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고향풍경,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어려웠지만 한편 행복했다.

본래 직업이 택시기사였던 신현택씨는 승객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면 수시로 서툰 글 솜씨로 노랫말을 끄적거렸다. 그렇게 만든 노래가 ‘채석강의 절경’이다.

특히 유년시절에 뛰놀던 풍광은 그에게 더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향수였다. 그러한 만큼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할 기억도 많았다. 늘 돌아가고픈 곳, 어머니 품속 같이 따뜻한 고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던 그였다. 그의 노랫말은 동요처럼 꾸밈이 없다. 그만큼 순수하다. 고향 앞에서는 늘 동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일까....

신현택씨의 원 직업이 택시기사였듯 작사할 때 또 하나의 예명은 ‘신호등’.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은 15곡정도. 이 모든 노랫말에 멜로디를 입힌 사람은 다름 아닌 작곡가 송운선 선생이었다. 어느덧 30년 지기가 된 작사가 신현택씨와 작곡가 송운선 선생. 이 콤비의 노래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하기로 한다.

부안 해넘이 노래비 ‘지는 해가 아름다워’

양규태씨의 노랫말에 작곡가 송운선씨가 곡을 붙인 노래 ‘지는 해가 아름다워’의 노래비가 지난 2005년 5월, 변산반도 국립공원 입구에 건립되었다. 이 ‘해넘이 노래비’가 건립된 곳은 북쪽의 새만금 방조제 입구에서 남쪽에 곰소항에 이르기까지 38번국도 전체가 해넘이 명소인 지역. 특히 의상봉, 신선봉, 쌍선봉 그리고 그 사이에 개암사, 내소사 등 유서 깊은 고찰이 있고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등의 명소가 산재해 있다.

1. 오늘도 사랑 찾아 굽이굽이 천리 길/내 사랑 어디 있나 어디로 갔나/금수강산 휘휘 돌아 변산이라네/산천이 아름다워 팔경이런가/내소사 직소폭포 봉래구곡 물소리/월명암 낙조대로 천년 해가 진다.

2. 오늘도 사랑 찾아 돌아돌아 천리 길/내 사랑 어디 있나 어디로 갔나/일출이 동해라면 낙조는 서해라네/지는 해 아름다워 변산이런가/채석강 적벽강 하도에 파도소리/형제섬 저 너머로 즈믄해가 진다. -‘지는 해가 아름다워(양규태 작사, 송운선 작곡, 김현아 노래)’

이 노랫말에서 ‘즈믄해’는 ‘천년 해’라는 뜻. 이 노래를 작사한 양규태씨(79, (사)변산마실길 이사장)에게 노랫말을 만든 배경을 들어보았다.

“1999년도에 새천년, 즉 2000년을 맞이하면서 낙조(해넘이)가 특히 아름답고 전국에서 가장 늦게까지 볼 수 있는 지역으로 부안 해안이 선정되었지요, 그래서 부안에서는 격포 앞바다, 서울에서는 광화문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는 행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격포 앞바다에서 천 년 해를 보내는 ‘낙조 행사’의 추진위원장을 제가 맡았는데 이에 따른 행사 홍보가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노랫말을 쓴 뒤 송운선 선생님께 작곡을 의뢰해서 만든 노래입니다. 변산의 아름다움과 함께 향토적 홍보 내용을 담았던 때문인지 이후 부안지역 예술인들이 앞장서서 변산반도 국립공원 입구에 노래비를 세우게 되었죠.”라며 “당시 송운선 선생님께 작곡료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형편이었는데도 흔쾌히 작곡과 편곡을 맡아주어 행사를 원만하게 치를 수가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덧붙인다. NM

송운선 작곡의 노래비를 찾아서... 계속 해서 ‘변산 아으리랑’ 노래비가 있는 변산 마실길로 걸음을 옮겨 본다. (다음호에 계속)

▲ ‘해넘이노래비/지는 해가 아름다워’ 노래비 앞에서 작곡가 송운선씨와 ‘변산 아으리랑’ 노래비 앞에서 가수 최영주와 작사가 양규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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