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하는 방법은 무한하다. 그 중에서도 가구와 소통을 하는 독특한 디자이너가 있어 가구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체어스 온 더 힐(Chairs on the hill, 대표 한정현)의 한정현 디자이너가 바로 그 주인공. 가구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여성 디자이너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가운데 그녀의 독보적 행보와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체력적인 소모가 큰 가구 디자인계에서 한정현 디자이너의 가구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들어본다.

▲ 지난 6월 20일부터 7월 18일까지 계획되었던 한정현 디자이너의 개인전 ‘모던 아날로그’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8월 말까지 연장 전시되었다.

현재 한정현 디자이너는 가회동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체어스 온 더 힐’에서 자신의 작품관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한옥을 개조한 아담한 공간에 그녀가 디자인한 의자와 가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이곳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갤러리이며 동시에 카페이기도 하다. 한 디자이너가 유학시절 만들었던 작품부터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그녀 작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기에 이곳의 의미는 더 크다. 그녀의 많은 작품 중 가장 의미 있는 작품에 대해 묻자 그녀는 대학 2학년 때 만든 첫 작품 ‘벤치 포 투’를 꼽는다. 가구 디자이너로서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미술에, 특히 찰흙이나 종이 공작 등 만드는 솜씨 뛰어났던 한정현 디자이너는 어릴 적 소질을 살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3D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찰흙과 공작 등을 만들기 좋아했던 어렸을 적 소질에 이어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그녀의 대표작 ‘벤치 포 투’가 만들어진 시기도 그 때쯤이었다. 이 작품 하나로 한 디자이너는 영국의 유명 디자인 잡지인 ‘월페이퍼’에 “Eastern Promise"로 소개되면서 한정현의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을 잡지에서 본 남아프리카 출신의 한 외국인은 그녀의 작품 가격과 맞먹는 배송료까지 지불하면서 그녀의 작품을 사 갔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작품을 통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첫 번째 작품이었다.” 때문에 ‘벤치 포 투’는 개인적으로 더욱 애착이 가가는 작품이 되었다. 외국에 있을 때에는 용접부터 시작해 끌로 나무를 파는 작업 등 하나하나 손수 만들곤 했다. 최근에는 작업 공간이나 현실적인 여건들 때문에 디자인과 모델  제작만 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작업은 공방에 맡기고 있다. 지난 2003년, 8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에게 우리나라는 여성 가구 디자이너가 설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살 길을 찾아 갔겠지만 한 디자이너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고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며 가구 디자인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이러한 다짐은 가화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귀국 후 처음 연 전시회에서 대중과 전문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낸 것. 국내 전시를 시작으로 런던 디자이너스 블록, 파리국제가구박람회 등의 해외 전시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한 언론에서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어떤 공간에서도 어울릴 수 있는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과 유머러스함을 지닌 그녀만의 매력이 숨어 있다”고 전례 없는 호평을 하기도 했다. 이후 그녀의 가구 디자인에 공감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만큼 그녀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제자들에게 스스로 만들어 볼 것을 가르쳐
한정현 디자이너는 잇따른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가구를 통해 소통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점점 그녀의 디자인에는 이야기가 깃들기 시작했고 기능성보다도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가구가 바로 나의 가구이다.” 특히 그녀가 중점적으로 디자인하는 분야는 ‘의자’이다. 그녀의 대표작인 ‘벤치 포 투’를 비롯해 ‘텔레사피언스’, 얇은 목재판구조물에 샴페인 개인이 직접 코르크를 꼽아서 완성시키는 ‘코르크 앤 코르크’ 그리고 여성들의 외출 필수품인 핸드백을 걸 수 있게 등판이 옆으로 튀어나오도록 디자인된 ‘오리’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의자야말로 사람과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한 가구이다”고 말하는 한 디자이너는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오브제이기도 하다”며 의자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매번 다른 가구 디자인을 고안해내느라 고심한다는 그녀는 특별히 어느 곳에서 영감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느낌이나 순간의 아이디어를 특히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때문에 그녀의 디자인에는 일상의 포근함은 물론, 재치와 유머도 함께 엿볼 수 있어 가구 애호가들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외에도 그녀는 후진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계원조형예술대학교에서 가구 디자인 겸임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 보게끔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더 큰 깨달음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그녀 역시 공부하면서 배웠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0일부터 7월 18일까지 계획되었던 한정현 디자이너의 개인전 ‘모던 아날로그’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8월 말까지 연장 전시되었다. 개인전 외에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출품과 강의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녀는 그 가운데에서도 일상의 소소함과 유머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재미와 철학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그녀의 다음 가구는 어떤 색다른 모습일지 자못 기대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