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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권리의 시대로 가고 있다
2019년 07월 04일 (목) 00:06:23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독재가 좋으냐 민주주의가 좋으냐 물으면 열 사람 중 적어도 7~8명은 민주주의가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독재를 하는 나라의 독재자조차도, 스스로는 민주주의자를 자처하고 그들의 강령에 민주정치를 표방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지구상의 나라들은 대개 군주에 의한 전제정치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공화정이 대세다. 왕정을 유지하는 나라들도 현대화된 정부와 의회를 따로 두어 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다.

정치제도만 그런 건 아니다. 가족제도에서 경제제도에서 교육제도에서 신분제도에서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확장되어 왔다. 이것은 단지 어떤 이데올로기들의 대결이나 승패의 문제로 국한하여 볼 문제가 아니다. 인류문명은 전제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의무와 책임 중심에서 권리와 자율 중심으로 일관되게 변화해 왔다. 우리는 이것을 발전이라 부른다. 우연적인 대결과 승패에 의해 결과된 변화가 아니라 인간 DNA가 본능적으로 지향하는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한발 더 나아간 결과라는 의미다.

인간문명은 결국 온전한 자유를 지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오래된 습관과 새로운 질서 사이의 갈등이 따르고 때로는 격심한 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때로는 오히려 일시 퇴보하거나 상당 기간 진전 없이 답보하는 시행착오의 과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류 문명이 전제적인 수직관계에서 민주적인 수평의 관계, 통제와 의무 중심에서 자율과 권리 중심으로 틀이 바뀌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의 문제로 들어가 보자. 오랫동안 남자와 여자관계는 주종관계로 여겨져 왔다. 여자를 남자의 부속물처럼 여기던 것은 고대로부터의 전통에 해당한다. 고대인들은 여자와 아이를 가부장인 남성에게 소속된 재산과 같은 정도로 취급했고, 심지어 전쟁을 할 때도 상대 종족의 남자들은 적으로 간주해 죽이더라도 그들에게 소속된 여자들은 재산처럼 탈취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은 이러한 전통 위에서 생겨난 의식일 것인데도 우리의 경우 가까운 조선시대나 해방 이후 사회에까지 이어져왔다. 한국은 그만큼 정신적 개화가 늦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녀관계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뒤늦게 시작되기는 했어도, 그 속도는 경제발전의 속도만큼이나 급속하였다. 문제는, 겨우 20~30년 사이에 일어난 급한 변화의 결과 새로운 질서 속에서 자라난 세대와 그 속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세대가 한데 어울려 살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마치 지게를 진 사람과 드론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이 공존하고,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하여 상투를 고집하는 사람과 머리를 패션으로 알고 마음대로 자르고 깎고 물들이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과 같다. 그냥 뒤섞여 살기만 해도 다행인데,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상대의 신념까지 비난하며 뒤엉켜 싸우니 문제다. 
 
지금은 법적 제도적으로 조금도 이성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시대지만,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온 노년세대나, 그들에게 충실히 교육받은 일부 젊은 세대들은 남녀의 권리가 대등하게 취급되는 21세기가 무척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혼을 해야 하는가, 자식은 낳아야 하는가에서 시작하여, 여자도 호주가 될 수 있는가, 부모는 누가 봉양해야 하는가, 반드시 해야 하는가, 유산은 누가 상속해야 하는가,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하는가, 부부 중 돈벌이의 의무는 누가 더 져야 하는가, 동성간 결혼은 허용될 수 있는가 등등, 여러 문제에서 기존세대 관념과 신세대 관념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큰 배경이 먼저 마당을 펼쳐놓고 있다. 이 흐름의 추세는 어느 정도 명확하다. 서두에 먼저 전제했듯, 인간의 문명 풍조는 의무와 책임 중심에서 권리와 자율 중심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결혼이며 성이며 가족제도 역시 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부일처의 결혼제도는 사유재산 제도와 함께 오랫동안 인간의 인간다움을 보증하는 주요 장치의 하나로 기능하였다. 그래서 이 제도에 따르지 않는 것은(이를테면 결혼을 안했거나 했다가 헤어졌거나 정절의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등등의 경우는) 반사회적이거나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여기는 고정관념마저 존재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어느새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처럼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치열하게 맞서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저항도 있지만, 세월처럼 흐르는 시절의 대세를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옳고 그름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선(善)’이라는 고사를 떠올린다. NM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

▲ 이은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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