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화칠기는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칠공예 분야의 전통공예로 알려져 있다. 기록된 역사만도 BC 3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기능이지만 최근 청목옻칠연구소의 김환경 명인에 의해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청목 김환경 명인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채화칠기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 ‘채화칠기의 아름다움이 그의 손 끝에서 다시 피어났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 청목 김환경 명인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채화칠기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 ‘채화칠기의 아름다움이 그의 손 끝에서 다시 피어났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채화칠기는 작은 보석함에서부터 장롱까지 모든 가구와 공예품에 적용할 수 있는 우리의 고유 전통공예이며 천연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접시, 그릇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신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가 바로 채화칠기일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지만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자개를 쓰는 나전칠기가 칠기의 대종이 되고 만다. 채화칠기는 색깔이 들어간 옻칠 기물을 일컫고 있지만 옻칠은 공기와 접하면 검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검은색과 대비되는, 반짝이는 자개를 쓴 것이 각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한 전통의 계승은 그 전통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
“옻칠 제품은 서양에서는 발달하지 못한 동양 특유의 공예품으로서 옻칠에 천연색소를 배합한 것이 바로 채화칠기이다”며 채화칠기를 설명하는 김환경 명인은 “유화 소재에 싫증을 내거나 한계를 느낀 예술가들이 유화의 또 다른 기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 덧붙인다. 김 명인은 문헌 등에 근거한 전통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나전칠기에 흔히 쓰이는 검은색 옻칠이나 붉은색 옻칠을 사용해 바탕을 깔고 다양한 색상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넣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칠을 가루 형태로 만들어 뿌리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색채 응용작업을 위해 고구려의 수렵도, 사신도, 비천도 등을 그려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1천년 전의전통을 지금 그대로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전통이 아니다”며 자신의 작품세계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김 명인은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선조들의 기법을 되살리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만의 전통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인간문화재들이 단순히 과거와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송학도장농

그의 어렸을 적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부흥 목사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우연히 ‘창작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김진갑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나전칠기, 목칠기, 건칠, 채화칠 등 전반적인 옻칠제작 기능을 전수받았다. 그가 채화칠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6년. 이후 1979년 일본을 방문한 그는 그곳에서 낙랑시대 채화칠기 유물들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 전통공예기법인 채화칠기가 마치 일본의 문화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 방문 후 그간 우리 사회가 전통문화를 홍보하는 것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귀국 후 우리의 채화칠기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본에 전해 준 채화칠기의 전통을 되찾아야 된다는 마음을 먹었다. 나는 낙랑의 채화칠기가 고구려로 이어지고 다시 고구려의 예술이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달되었다고 본다. 신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가 바로 채화칠기이며 그만큼 우리나라의 채화칠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일본의 채화칠기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데 비해 김 명인의 작품은 더 큰 정신과 여백을 담고 있어 열려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바로 그것이 우리나라와 일본 예술 정신의 차이점이라고 김 명인은 피력하고 있다.

전통 채화칠기 이상을 완성해 낸 명인

▲ 수복문 좌경

47년 동안 채화칠기 외길을 걸어 온 김환경 명인은 1987년 동아공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현대미술전 대상, 국제 이시가와 디자인전 특별상,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국회 문화체육 공보위원장 표창, 부시대통령상, 대한민국문화예술대회 공예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1986년 내당공방이라는 이름의 채화칠기 연구소를 내고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매년 두 차례씩 채화칠기 작품전을 열어 채화칠기의 미를 세상에 알려 왔다. 채화칠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김 명인은 왕성한 창작정신으로 그 독보적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단순히 전통의 모사에 머물지 않고 채화를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가구나 기물부터 그림, 도자기, 고구려 벽화, 민화, 전통문양 등을 채화칠로 만들어냈다. 특히 전통 채화칠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상의 칠기를 실험했고 현대적인 채화작품으로 18차례 개인전을 열어 칠기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채화칠과 현대회화의 접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색을 내는 비법에 있어서도 그의 독보적 위치는 더욱 확고해진다. 채화칠은 깊고도 따뜻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칠은 정제한 뒤 햇볕을 쪼이며 저어 주면 맑아진다. 여기에 여러 가지 안료를 섞는 것이 색을 내는 비결인데 김 명인은 돌가루나 이끼, 흙 등 우리만의 재료를 섞어 자연색을 내는 방법을 완성했다. 이에 대해 “전통 채화칠기 이상을 완성해 냈다”는 평가는 그만의 색 비법을 따라올 자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현재 4명의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김환경 명인은 자신의 손으로 전통문화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오랜 세월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분야이기에 그의 안타까움은 유난히 더한다. 또한 “문화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조합에서 인간문화재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채화칠기의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다 준 김 명인의 이러한 바람이 꼭 이루어져 하루빨리 ‘채화칠기는 일본 문화’란 인식이 사라졌으면 하는 것 역시 필자의 바람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