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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숙환으로 별세
장남 조원태 사장의 경영권 승계 가속화되나
2019년 05월 08일 (수) 02:59:08 황태희 기자 hth@newsmaker.or.kr

지난 4월8일, 조중훈 선대회장의 창업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이어받아 45년간 한진그룹에 몸담으며 한국 항공산업을 이끌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병인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황태희 기자 hth@

한진그룹에 따르면 조 회장은 이날 새벽 0시1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들이 조 회장의 임종을 지켰다. 조 회장은 지난해 연말 미국으로 출국했고, 폐질환으로 수술 받은 후 회복했다가 최근 지병이 다시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 수행
조양호 회장은 1969년 8대의 항공기로 출범한 대한항공을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전세계 43개국 111개 도시에 취항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시키는 등 우리나라 항공물류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다. 조양호 회장은 조중훈 선대회장의 창업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이어받아 1974년 대한항공에 몸담은 이래 반세기 동안 ‘하늘길 개척’에 몰두하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물컵 갑질’ 등 가족들의 일탈에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말년은 순탄치 못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사정기관의 전방위 조사에 더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중훈 선대회장이 기틀을 닦았다면 조 회장은 덩치와 내실을 키우며 대한항공을 굴지의 글로벌 항공사를 키웠다.

1990년대 세계 항공운송산업이 성장하면서 전 세계 항공사들의 무한경쟁이 시작됐는데 조 회장은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며 회사를 이끌었다. 그의 경영능력은 위기 때 빛을 발휘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악재 속에서도 자체 소유 항공기를 매각해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유동성 위기를 넘겼다. 괌 여객기 추락 사건을 계기로 다국적 전문가를 영입, 안전 기준도 강화했다. 또한 2001년 9·11 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여파로 글로벌 항공사들이 구조조정, 항공기 도입 축소 등 긴축 경영에 나섰을 때 조 회장은 오히려 B787, A380 등 차세대 항공기 구매 계약을 맺었다. 향후 항공시장이 회복됐을 때를 고려, 선제적으로 항공기 도입 확대에 나선 것이었다. 조 회장의 예상대로 2006년 세계 항공시장이 회복되자 항공사들은 앞 다퉈 차세대 항공기 도입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도입한 항공기들이 회사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고 자평한다. 글로벌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FSC)와 저비용항공사(LCC) 간 경쟁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2008년 진에어를 창립한 것도 조 회장의 결단이다. 진에어가 저렴한 운임의 관광 노선 위주의 전략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대한항공은 프리미엄 수요 위주의 비즈니스 노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 회장은 한국 경제 발전과 민간 외교에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한-불 최고경영자클럽’의 한국 측 회장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받았다.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후원하며 문화적 교류에도 기여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재직 기간 세계 항공업계의 주요 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창설을 주도하고, ‘항공업계의 유엔’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요직을 맡으며 글로벌 항공업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높여왔다. 대한항공 초장기 시절인 1970년대에는 태평양과 유럽, 중동 하늘길을 연 데 이어 1988년엔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로서 공산권 국가까지 태극기를 띄우며 대한민국 알리기에 힘썼다. 조 회장은 국가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는 자세로 여수 엑스포 유치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도 지원했다. 특히 2009년 평창 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지구 16바퀴에 해당하는 64만㎞를 돌며 유치 활동을 벌였다. 유치위원장을 맡은 공로로 2012년 우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도 수훈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좋지 않았다.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가 이어지며 2대(代)에 걸친 수송보국의 노고는 크게 빛이 바랬다.

사회적 공분을 야기한 두 딸의 ‘갑질’ 사건은 급기야 조 회장 일가의 비리 의혹으로 확대됐다. 여론에 편승한 정치권은 조 회장 일가 비난에 앞장섰고, 한진가(家) 비리를 찾기 위해 검찰과 경찰 등 11개 사법·사정기관들이 지난 6개월간 총출동했다. 압수수색만 18차례에 달했다. 조 회장 일가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됐다는 지적까지 일었다. 회사의 혼란을 틈 타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마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3월 대한항공 정기주총에선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했다. 국민연금이 앞장서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한 까닭이다. 조 회장 일가가 더는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시점, 조 회장의 운명의 시계는 멈춰 섰다. 조 회장의 말년은 과(過)로 얼룩졌지만 대(代)를 이은 ‘수송보국’의 공(功)마저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 깊은 애도 표해
지난 4월8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 자료를 내고 “조 회장은 항공·물류 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으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어 “조 회장은 지난 45년간 변화와 혁신을 통해 황무지에 불과하던 항공·물류 산업을 일으켜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며 “덕분에 우리나라는 우수한 항공·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역동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으며, 세계 무역 규모 6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고인의 생전 활동을 평가했다. 또 “평창올림픽 유치위원장, 전경련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 교류를 증진하고 우호 관계를 강화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며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조 회장의 별세는 재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전경련은 “경제계는 조 회장이 선대에 이어 평생을 실천하신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유지를 이어받아, 우리 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논평을 마무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평생 국내 항공·물류 산업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대한상의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임직원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계는 큰 충격을 느끼며 삼가 고인에 대한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경총은 입장문에서 “조 회장은 지난 20년간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을 이끌어 오면서 대한항공을 단단한 글로벌 항공사로 키웠고, 우리나라 항공산업과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가적 행사에도 공로가 많았다”며 고인의 생전 활동을 평가했다. 또 “고인은 2004년부터 경총 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경영계의 리더로서 모범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경총은 그러면서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기려 나갈 것이고, 대한항공이 흔들림 없이 세계적인 항공사로 더욱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다시 한번 삼가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장남 조원태 사장이 그룹 경영 잇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장남 조원태 사장이 그룹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LG그룹이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구광모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데 이어 이번 한진그룹까지 불가피한 세대교체로 젊은 나이에 총수에 오른 재계 인사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경영 공백이 생기면서 1975년생 조원태 사장의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질 예정이다. 조 사장은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릴 ‘항공업계의 UN회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에서 조 회장이 주관사 자격으로 맡았던 IATA 총회 의장직을 조 사장이 이어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한진그룹의 조원태 체제가 공식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조 회장도 부친이자 그룹 창립자 조중훈 회장이 2002년 세상을 떠난 다음 해 2대 회장직에 오른 바 있다. 당장은 지분 상속 등을 통한 후계 승계작업과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지분이 3남매에게 비슷한 비율로 상속되더라도, 물의를 일으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 조현민 자매의 경영일선 복귀 가능성은 낮다. 3남매 간의 지분정리 및 계열분리 등은 장기적인 숙제는 남겠지만, 당분간 지분공동보유와 조원태 대표이사에게 경영권 집중될 가능성이 높고, 조 사장은 44세의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갑작스레 총수를 잃은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의 미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될지 주목된다. 한진그룹은 이날 “그룹 전체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며 “사장단 회의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진행, 안전과 회사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경영 공백이 현실화된 만큼 일단 비상경영 체제를 통해 그룹 안정을 꾀하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지난 3월27일 그룹 주력계열사인 대한항공 대표 및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3월29일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에 조 회장이 어수선한 그룹 분위기를 일신하고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서울 총회 등을 마무리한 뒤 ‘3세’ 조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조 회장이 갑자기 별세하면서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은 장례 이후로 미뤄졌다. 일단 한진칼 주총에서 조 회장의 최측근인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재선임된 만큼 조 사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지분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조 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조 사장이 대한항공 이사진에 일가 구성원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서며 운신의 폭을 넓혀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잇단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경영일선 조기 복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진그룹은 지주사인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진칼→대한항공·한진→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대주주이자 진에어(60%) 칼호텔네트워크(100%) 한진(22.2%) 등을 소유하고 있다. 한진칼은 조 회장과 조 사장, 조 전 부사장, 조 전 전무 등 오너일가가 지분 28.95%를 보유해 지배력이 아직 확고하다. 다만 조원태·조현아·조현민 3남매 간 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 정리,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 승계는 과제로 남는다. 조 회장은 한진칼 지분 17.84%를 가진 개인 최대지주다.

조 회장 지분의 상속 방식에 따라 그룹 전체의 경영권 향방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2000억원대에 달하는 ‘상속 재원 마련’도 쉽지 않은 숙제다. 국민연금, 사모펀드 KCGI 등 외부 세력의 견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내년 주총에서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은 ‘표 대결’을 뚫어내고 조 사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와 한진칼 사내이사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앞서 조 회장과 대한항공 주관으로 6월 서울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IATA 연차총회부터 무사히 치러내야 한다. 대한항공이 델타항공과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조인트벤처의 성공적 안착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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