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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점에 선 43년의 ‘민화 마이 웨이’
2019년 04월 22일 (월) 19:21:44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43년 작품의 시간, 마이웨이>를 발간한 고광준 작가를 만났다. 광명시에 위치한 ‘한국전통채색화연구회’에서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문화생과 작가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곳이다. 이밖에도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소’에서 색채관련사업을 연구했으며, 그 이전에는 ‘광주요’의 전속작가로 전통 민화를 생활 용품에 적용하는 일을 했다. 그가 십대 후반 처음 붓을 잡은 이래, 43년 만에 첫 개인전을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신선영 기자 ssy@

생활 그림으로서의 민화를 그리다
직속 제자만 추산 300명이다. 그들의 제자까지 고려하면 민화계에서 고광준 작가의 가르침이 미치지 않은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화화단의 초석을 놓은 1세대 작가이자 채색화가의 거목인 그는 원래 손이 느린 우공(愚公)이었다. 미련한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우공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십대부터 정하정 선생의 공방에서 물감을 개고 채색을 했다. 차차 고미술상인에게 그림도 팔고 고미술의 보수작업도 할 만큼 실력을 갖추게 됐는데, 그 즈음 예기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광주요’였다. 

 

   
▲ 현촌 고광준 화백

그를 발탁한 건 조태권 대표이사였다.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작품 구매까지 한 조태권 대표이사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광주요의 계약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 즈음 광주요의 사업 영역이 새롭게 구축됐는데 단순히 전통 그릇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그 그릇에 담기는 음식, 음식이 진설되는 식탁, 식탁의 품격을 높여주는 소품과 공간 장식까지 전방위로 확대됐다. 특히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모토로 세운 토탈 인테리어 브랜드 ‘자비화’는 그에게 작업 반경을 넓혀준 계기이자 이름을 알리는 발판이 됐다.

 

   
▲ 현촌 고광준, 백선백접도, 순지, 수간분채, 봉채, 189x45.5cm(x8)

그는 자비화를 통해 벽지를 비롯한 민화액자, 병풍, 장식품, 각종 패브릭, 은기류 등의 생활용품을 망라하는 디자인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의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의 소품과 벽지로도 협찬됐는데 MBC 드라마 <궁>(2006), <태왕사신기>(2007), SBS 드라마 <식객>(2008), 영화 <음란서생>(2008) 등이다. 이렇게 자비화의 론칭과 함께 2001년부터 전속작가로 활동한 그는 2003년 자비화 초대전을 통해 그의 작품이 갖는 대중성을 확인하고 인지도를 다질 수 있었다.

 

   
▲ 현촌 고광준, 수원능행도, 한지, 수간분채, 185x73cm(x8)

이는 그의 기량과 인식을 한 단계 높여주는 거름이 됐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작품력을 한층 가다듬을 수 있었고, 민화의 놀라울 만큼 넓고 무궁무진한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 ‘생활 그림’으로서의 민화의 응용력을 깨달았고 민화는 옛 그림이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과 감성에 맞아야 ‘오늘의 그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이렇게 디자인 산업의 역사에 작지 않은 족적을 남긴 그는 2011년을 끝으로 비로소 자신의 자리, 민화 작가 고광준으로 돌아왔다.

 

   
▲ 현촌 고광준, 책가도, 비단, 수간분채, 봉채, 240x102cm

한국 채색화의 발판을 마련하다
전속작가는 소속감을 주는 한편, 말 그대로 완전히 한 곳에 속해 있는 거었다. 그래서 작가로서의 연구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준 곳이 ‘이화여자대학교 색채디자인연구소’였다. 1997년 산업자원부 지정 연구소로 설립된 이후 색채관련사업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기관이었는데, 색채 전문 강좌를 개설하고 이를 담당할 지도 교수를 물색하던 중 자비화 전속작가인 그를 주목하게 됐다. 그곳에서 그의 노하우를 정리하고 데이터화 하는 과학적인 교수법을 2003년부터 구축하게 됐다.

 

   
▲ 현촌 고광준, 화접도, 한지, 수간분채, 44x44cm

여기서 검증된 커리큘럽과 교육방식으로 2013년부터 개인 화실을 운영 중이다. 지금의 ‘한국전통채색화연구회’다. 채색화로 통칭되는 민화, 궁중화, 산수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신조 1조에 의거, 그가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남김없이 가르쳐 준다는 모토로 운영된다. 특히 색채의 쓰임이다. 무슨 색 옆에는 어떤 색이 와야 돋보이는지, 원하는 색을 만들 때는 어떤 색과 어떤 색을 어떤 비율로 조합해야 하는지를 데이터로 정리해준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붓 못지않게 노트를 많이 쓴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조합한 색의 샘플과 비율이 정확하게 적혀있어서 전국에서 교육 자료로 쓰고 있다고 한다.

 

   
▲ 현촌 고광준, 필묘도, 한지, 수간분채, 30.5x45cm

그렇다고 해서 고광준 작가가 모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민화의 특성상 초본을 모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 조차도 원래 그림과 똑같이 그리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족해 보이는 부분은 더하고, 지나친 부분은 덜어내며 현대적인 민화로 발돋움 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한다. 지난 9월에 열린 사실상 그의 첫 개인전 <현촌 고광준의 43년의 작품 시간, My Way>가 그 최종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민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으며, 그가 추구하는 간색의 조화와 둥근 형태미로 길상의 미를 북돋았다.

 

   
▲ 현촌 고광준의 제자들 작품 (좌) 장윤정, 송호도, 순지, 수간분채, 봉채, 99x58cm (우) 조미희, 화접도, 순지, 수간분채, 봉채, 124x35cm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백선백접도>는 조선시대 나비 그림의 명수인 남계우와 박기준의 작품을 병풍 하나에 모은 작품이다. 나비뿐만 아니라 부채, 글씨, 낙관까지 현대적인 감각으로 보완하고 연구한 수작을 손꼽힌다. 그가 “현대 민화가 단순히 옛 민화의 재현을 넘어 오늘의 그림으로 살아남아 발전하려면 현대인의 감수성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만큼, 현대인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그림의 초석이 되어주고 있다. 그의 철학인 ‘둥글고,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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