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떠나야 할 때가 되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떠나기 마련인 모양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립에 큰 업적을 이룩한 김대중 前 대통령이 끝내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8월 18일 1시 45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렴으로 서거한 것. 향년 86세. 대한민국 남성 평균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유난히도 그의 빈자리는 슬프고 아쉬우며 안타깝다. 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세운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만큼 납치, 사형언도, 망명, 몇 차례의 대선실패 등 고난과 역경의 굴레도 겪어야 했다. 호남인이었지만 전국이 하나는 것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대통령, 남북통일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고 실천하려 했던 대통령, 재치와 유머가 넘쳤던 대통령으로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있고 지난 8월 23일 치러진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아쉽지만 영원히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큰 위기가 찾아올 때, 남북관계가 유난히도 경색될 때, 국정 운영에 있어 누군가의 절실한 충고가 필요할 때, 우리는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본지에서는 김대중 前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그간 그가 걸어왔던 길과, 서거하는 순간까지 잃지 않았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1992년7월26일 손주들과 즐거운 한때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이하 김대중)은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작은 섬 하의도에서 한 농사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향마을인 ‘후광’을 평생 아호로 삼을 만큼 고향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수평선, 파도, 물새, 바람 그리고 햇살은 그에게 꿈과 용기 그리고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는 자연과 함께 성장하며 조금씩 꿈도 크게 키워가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일제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급장 자리를 내줘야 했던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그는 어렸을 적부터 나라를 걱정했고 비굴하지 않았으며 당당하게 해야 할 말을 할 줄 아는 어린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에 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한 그는 이후 5년제인 목포상업고등학교를 1943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곧바로 해운회사에 취직한 김대중은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은 1945년을 기점으로 해운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업가로서 수완을 보이던 그였지만 그는 갑자기 정계에 뛰어들었다. 청년 김대중이 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한국전쟁과 정치 파동을 겪으면서 올바른 정치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로 군림하고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기 시작하자 그는 부패한 정권과 싸울 것을 결심하게 된다.

▲ 서울 효창공원 유세장에서

고되고 힘들었던 초기 정치 시절
하지만 그의 정치역정은 시작부터 불운의 연속이었다. 1961년, 그는 두 번의 실패 끝에 세 번째로 도전한 선거에서 당당히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당선 3일 만에 5ㆍ16 군사쿠데타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고 당선이 무효가 되고 만 것. 이후 한동안 정치규제에 묶이는 비운을 맞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용기와 희망을 가진 젊은 정치인이었다. 이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건거에서 당선되면서 마침내 그 용기와 희망이 첫 결실을 맺게 된 것이었다. 1965년 민중당 대변인을 거쳐 이듬해에는 정책위원장을 역임한 데 이어 1967년에는 통합야당인 신민당 대변인이 되면서 정계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해 온 김대중은 철저한 준비로 일약 국회의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전체적인 윤곽에서부터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비판과 동시에 정석의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국회의 각종 위원회와 재무, 건설, 외교, 예산, 국방 등의 상임위원회를 통해 정치의 전문성을 계속 키워온 그는 박정희 대통령 정권이 장기 집권을 시작하게 되면서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특히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역사적인 장충단공원 집회는 올바른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큰 뜻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이 날 연설을 통해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야권의 결속과 민주주의 회복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 1987년11월2일 13대 대선 당시 여의도 유세 후 거리행진

마침내 3선 개헌 다음해인 1970년 9월, 김대중은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김영삼ㆍ김대중ㆍ이철승 의원이 함께 출마해 3파전으로 진행된 이 전당대회에서 소수파인 그는 1차 투표에서 김영삼에 밀려 2위에 그쳤으나, 2차 투표에서 유진산 총재의 김영삼 지지에 반발한 이철승이 지지표를 몰아줌으로써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은 향토예비군 폐지, 노동자ㆍ자본가 공동위원회 구성, 비정치적 남북교류,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국 안전보장안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박정희 대통령의 안보논리와 경제 성장론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선거과정에서 김대중은 과감한 공약과 호소력 있는 연설로 유권자들의 선풍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으나 박정희 후보에게 95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당시 공공연하게 벌어진 선거부정을 빗대어 “김대중은 선거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졌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1972년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은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귀국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반유신운동을 펼쳤다. 1973년 미국에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결성한 데 이어, 일본에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결성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73년 8월 8일 그가 일본 도쿄 팔레스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129시간 만에 서울로 압송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라 불렸던 이 사건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정부는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 국내 야당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과 주권 침해라는 일본의 비난에 직면해 대일관계가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들자 미국의 주선으로 일본 정부와 막후접촉을 벌여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 김동운의 해임, 김대중의 해외체류 중 언행에 대한 면책, 김종필 총리의 진사방일(陳謝訪日) 등에 결국 합의했고 이 사건은 사건 발생 86일 만에 정치적으로 매듭짓게 되었다. 1974년 12월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은 재야단체인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해 재야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 3ㆍ1절 기념미사에서 윤보선ㆍ함석헌ㆍ문익환ㆍ김승훈 등 재야인사들과 함께 민주주의, 경제입국 구상 재검토, 민족통일 등을 주장하는 ‘3ㆍ1민주구국선언(일명 명동사건)’을 발표해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그는 이듬해 3월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확정 받고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유신정권은 그의 투옥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고조되자 1978년 12월 그를 형집행정지로 석방해 가택 연금시켰다. 그러나 그는 1979년 3월 1일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을 결성해 윤보선ㆍ함석헌 등과 함께 공동의장을 맡으며 재야활동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 1980년 8월 14일 오전 10시 수인번호 201을 가슴에 붙이고 5월 17일 밤 중정에 연행된 후 90일 만에 처음 공개석상에 나타난 모습.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언도받았다.

격동의 7, 80년대를 거치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되면서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12월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데 이어 1980년 2월 사면 복권된 김대중은 1980년 초의 ‘서울의 봄’ 시기에 김영삼ㆍ김종필 등과 함께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12ㆍ12사태(1979)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도발에 대한 우려는 5월 17일 자정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를 통해 현실화되었고 이때 그는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체포, 수감되었다. 정부군의 학살행위에 대항해 시민군이 무력으로 맞선 5ㆍ18광주민주화운동 시기를 감옥에서 보낸 그는 9월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미국ㆍ일본ㆍ독일ㆍ프랑스를 중심으로 현지 교포들과 각국의 양심적 지식인ㆍ문화인ㆍ정치인들이 대거 그의 구명운동을 벌이자 군사정권은 그의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데 이어, 1982년 12월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열어 활동하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귀국했다. 김대중의 귀국은 국민들에게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는 그가 김영삼과 함께 급조한 신한민주당이 제12대 총선에서 어용야당이던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한 데서 잘 나타났다. 그는 이에 힘입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자 군사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수용과 그의 사면복권을 뼈대로 한 이른바 6ㆍ29선언으로 후퇴했다. 비로소 사면 복권된 그는 김영삼이 총재로 있던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자격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1987년 12월로 예정된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독자 출마로 방향을 돌려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와 3파전으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당초부터 없었다. 대통령선거에 패한 후 야당분열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지자 그는 평화민주당 총재직을 일시 사퇴했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이듬해 4월에 실시된 제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이 통일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했고 그는 다시 평화민주당 총재로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1990년 민주정의당ㆍ통일민주당ㆍ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은 정국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자신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호남 고립화 전략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사태는 그에게 정치적 새로운 시련을 안겨 주었다. 그는 3당 합당으로 출범한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에 대항하기 위해 1991년 4월 재야인사 중심의 ‘신민주연합당준비위원회(약칭 신민연)’와 통합해 신민주연합당(약칭 신민당)을 창당했고 9월에는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하던 과정에서 소수야당으로 전락하고 만 민주당과 합당했다.

▲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 중 여의도 유세 현장에서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되다
1992년 12월 18일 김대중은 제14대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해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호남지역의 압도적인 지지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190만여 표차로 패배했다. 이후 그는 1993년 1월 영국으로 출국해 연구 활동을 하다 6개월 만에 귀국했고 1994년 1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후 아태평화재단으로 명칭 변경)을 창립해 이사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6ㆍ27지방선거 과정에서 사실상 정치활동을 재개한 김대중은 같은 해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 제1야당의 지위를 굳히자 그는 오직 제15대 대통령선거를 향한 질주를 시작했고 1997년 11월 충청지역의 맹주로 자처하던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총재와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성공해 두 당의 단일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여권후보의 분열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외환위기를 등에 업고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7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건국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자유민주연합과 공동정부를 구성한 그는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 삼았다. 그는 대통령 선거운동과정에서 공언한 ‘준비된 대통령’답게 지역주의에 영합한 야당과 일부언론의 무조건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경제개혁에 착수해 지난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한편, 기존의 완강한 대북 흡수통일론을 배격하고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꾸준히 견지함으로써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는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관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분단 사상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역사적인 6ㆍ15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낸 그는 전 세계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의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크나큰 감격을 이끌어냈고 그해 10월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및 한반도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21세기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2003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자연인’으로, 손자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로 돌아왔다. 그가 진정으로 고대했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속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민주주의의 후퇴에 누구보다 가슴아파했던 그는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고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 당시, “민주주의의 반쪽이 사라졌다”며 오열했던 그는 영결식장에서 다시 한 번 정부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한 지 87일 만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획을 긋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에 대한 전 세계의 긍정적인 평가

▲ 2000년 12월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

과거 세계 언론들은 박정희 前 대통령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 평했고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재미언론인 ‘선충무증언’을 통해 “박정희 정권은 제거되어야 할 존대”라며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게 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분명히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게 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박정희가 권력유지를 위해 죄 없는 사람들에게 행한 그 짓이 분명히 악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신의 오랜 장기집권을 위해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킨 박정희 정권은 경제면에서는 그 어떤 대통령보다 찬사를 듣는 대통령이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국내외 정치인들과 언론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비해갈 수 없었던 것. 이렇게 반대파들에게 무자비했기에 김대중의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대운동은 그만큼 용기 있는 일이었고 죽음의 문턱까지 오가야 했던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외국 언론들과 정치계 인물들도 김대중에 대한 평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지난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된 후 뉴욕타임즈는 “전 국민이 외환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화운동 지도자로서 뛰어난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한국 국민들에게 행운이다”고 평했으며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김대중 대통령 퇴임 직후,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씨 만큼 나라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대중씨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 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씨를 마음으로부터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겐이치씨는 지난 1999년, “미국이 시키는 대로 나라를 해체하고 있다”며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 혹평했지만 그의 퇴임 직후에 와서는 그의 과감한 경제정책에 손을 들어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인 블룸버그도 “김대중 前 대통령은 경제, 정치, 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고 평했다. 경제면에서는 김영삼 정권의 후반기에 걸렸던 IMF를 슬기롭게 극복했고 IT 산업을 확실히 성장시킨 인물로 꼽힌다. 또한 정치면에서는 그간 우리나라 정권 중 부정부패 및 비리가 가장 적었던 때이다. 군사정권에 맞서기도 했으며 몇 번의 실패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그였기에 부정부패와 비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 또한 ‘햇볕정책’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유대감을 느끼고 따스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정책으로 우리나라 정권사상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진보를 했고 세계는 이 정책을 지지하고 인정했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 정권과 맞물렸던 미국 클린턴 대통령 정권 시기에는 세계 평화가 가장 안정돼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여러 나라와의 외교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김대중 前 대통령은 그 당시 경제성장률도 5%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한편 김대중 前 대통령은 정치활동 외에도 <행동하는 양심으로>,〈대중경제론>, <평화를 위하여>, <민족의 내일을 생각하며>, <공화국연합제>, <한국 : 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나의 길 나의 사상>, <후광 김대중 대전집>(전15권), <21세기 시민경제이야기>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으며, 1992년 러시아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에서 <한국 : 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위기 극복, 대북관계 개선 등의 업적

▲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성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직접 영접을 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역사적 만남

김대중의 가장 큰 공은 무엇보다 경제 위기의 극복이라 들 수 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자 김대중은 그가 가진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유동성 위기를 막을 자금을 흡수했고 결국 그 위기를 벗어난 우리나라 경제를 그 후 바닥을 치고 올라와 그 자금으로 채무를 상환함으로써 외환 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로 손꼽히게 되었다. 우리와 같은 위기를 받은 다른 나라들의 회복 속도와 우리의 회복 속도를 비교해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른 회복 속도를 자랑하고 있는 것. 또한 어느 정도의 거품은 있었지만 신기술 정책에 있어 그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벤처와 IT 등의 신기술을 육성, 지원하겠다는 그의 정책은 아직도 우리 경제의 잠재력을 세계에서 인정받게 한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우리가 이러한 신기술 면에서는 일본은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의 업적을 바로 알 수 있다.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아직까지는 미흡하지만 불필요한 구조의 정리에 있어서 꽤 괜찮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편 경제적인 면과 더불어 또 하나의 공은 바로 대북관계이다. 1999년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그 전까지는 무장 공비들에게 당하기만 했던 나약한 군사력이 아닌 한 번 화가 나면 무서운 호랑이로서의 면모를 과시해 국군의 명예를 살린 한편, ‘햇볕정책’으로 이름 붙여진 대북 평화정책을 통해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대북 관계를 혁신적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결국 남북 국민들의 만남의 장까지 열어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대중 정권에는 북한의 태도도 눈에 띄게 변했다. 할리우드 액션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던 안톤 오노를 함께 욕하면서 우리 편을 들어주는가 하면 충분한 사과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서해 교전에 대해 ‘유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등 대북관계가 크게 개선됐다. 또한 시위나 노동 쟁의에 대한 규제를 많이 완화시켰고 사형수들을 단 한 명도 집행하지 않음으로서 그는 ‘인권 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일은 우리나라도 그로 인해 노벨상 수여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떤 분야에서도 단 한 차례의 노벨상 수상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 남북화해 정책의 공로를 인정받은 김대중 前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2000)을 수상을 통해 첫 노벨상 수상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앞으로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논할 때 김대중 前 대통령을 빼놓고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에 크게 반발하며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던 그의 모습에서 지난 정치 일생동안 그가 일구었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는 듯했다. 물론 그도 사람이었기에 사람으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실수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고인이 된 그를 부정적으로 재평가하고 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없을 수밖에 없다.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는 유난히 크다고 했고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때도 그랬듯이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재평가는 분명 이루어지고 그의 긍정적인 면을 보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가? 뜨거운 날씨였지만 많은 이들이 영결식에 참여하고 그간 분향소에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의 서거를 애도했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