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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작가는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
2019년 04월 02일 (화) 04:30:47 황태일 기자 hti@newsmaker.or.kr

김구림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올해로 83세인 김구림 화백은 실험미술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는 작가로, 청년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바탕으로 현역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황태일 기자 hti@

1960~1970년대 퍼포먼스나 영화등의 실험미술을 선보이며 국내에서는 ‘기행’ ‘괴짜화가’로 통했던 김구림 화백은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오늘날 우리나라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는 김구림 화백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김구림 화백

시대를 앞서나갔던 한국 화단의 이단아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 ‘영원한 아방가르드’ 등으로 일컬어지는 김구림 화백은 그동안 타 장르와의 접점에서 다양한 도전을 이어왔다. 회화, 조각, 판화 등 전통적인 미술장르를 넘어 퍼포먼스, 보디페인팅, 대지미술, 일렉트릭아트부터 단편영화, 무대미술과 의상까지 방대하고 다양하게 각종 장르를 실험하고 도전했던 그는 오브제와 매체를 이용한 조형적 실험과 장르의 해체를 보여주었다. 미술 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전위영화를 만드는가 하면 전위연극 연출을 하기도 하고, 무용안무부터 무용의상, 무대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평면과 입체작품, 오브제 작품, 판화, 도자, 자수, 바디페인팅, 사진, 비디오, 설치, 대지미술, 퍼포먼스, 메일아트 등 다양한 방식을 선보여온 그의 활동은 한국 미술사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초창기만 해도 ‘김구림’은 국내 화단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자의로 그만두긴 했지만 미대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술계에서는 근본 없는 예술인으로 치부되었고, 작품을 눈여겨보는 이도 없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잘 팔리는 그림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국내 미술계 풍토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 Ball 공

실제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초대작가로 선정된 그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녹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는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작품을 설치하려 했지만 얼음작업을 허락하지 않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방침에 따라 개막 전날 설치가 취소됐다. 또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정권에서 눈엣가시로 여긴 탓에 경찰에 연행되고 심문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3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최초로 기획 초대전을 개최함으로써,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 미술사에서 심도 있게 조명을 받지 못했던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해학과 풍자의 메시지였다. 이후 국내에서도 그동안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설치가 취소됐던 얼음 소재의 <현상에서 흔적으로>가 1970년 이후 43년 만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설치가 실현되기도 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예술을 논하다
기발한 상상력과 본능에 따르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김구림 화백. 지난 2012년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개최된 <A Bigger Splash : painting after performance>전에서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니키드 생팔 등 전 세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내에서도 재조명되기 시작한 그는 “항상 나에게 거론되는 ‘실험성’이란 말은 실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다. 나는 이런 말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며 “일부 화랑들은 60~70년대 작품을 하면 시장에서 인기가 있을 텐데 왜 변모해가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인간의 사고도 변하게 되고, 그러므로 해서 작품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 작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실 속에서 작품에 대한, 부딪혀서 사회가 요구한 바를 반영하며 내가 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은 혼이 없고, 정신이 깃들지 않은 것이다”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란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평가 역시 역사가 내릴 것이다”고 전했다.

1936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김구림 화백은 미국 뉴욕의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하였고 일본 도쿄에서 판화를 수학했다. 국민대, 중앙대, 홍익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강의했으며 미국 LA 칼스테이트 대학교에서 미술에 대한 특별 강의도 하였으며 최근 런던의 SOAS대학과 골드스미스 예술종합대학에서도 특강을 하였다. 한국에서 최초로 판화공방을 열어 한국 판화 발전에 공헌한 바 있는 김구림 화백은 도쿄판화비엔날레를 비롯하여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국제미술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하였다. 미국에서 15년 간 작품활동을 했으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및 여러 갤러리에서 5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 기획전을 비롯해 약 200회 이상의 그룹기획전에 참여하였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외국의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판화COLLECTION>과 동화집 <별하나 나하나>가 있으며 제7회 이인성미술상과 대한민국무용제 무대미술상, 서울문화투데이 제5회 문화대상,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NM

▲ 기발한 상상력과 본능에 따르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김구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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