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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울릉도 트위스트'의 여성트리오, 이시스터즈의 삶과 노래[1]
톡 쏘는 콜라맛, 그 '절대음'의 하모니
2019년 03월 06일 (수) 16:03:32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울릉도 트위스트’, ‘워싱턴광장’, ‘서울의 아가씨’,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남성금지구역’, ‘좋아졌네’...

밝고 경쾌한 하모니에 특히 고음이 매력적이었던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 마치 ‘톡’쏘는 콜라 맛처럼 짜릿짜릿한 매력적인 하모니를 구사하던 이시스터즈의 등장은 ‘소리의 변화’로 대변되는 60년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들의 화음에 대해 작곡가 이봉조는 ‘절대음’이라고까지 표현했을 정도다.

60~70년대 ‘만인의 연인’으로 불리며 사랑 받았던 이시스터즈의 삶과 노래를 총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본격적으로 본 칼럼을 연재하기에 앞서 그동안 이시스터즈에 관해 썼던 글을 찾아 먼저 소개한다. 이 글은 지난 2006년, 서울신문에 게재했던 칼럼으로 이시스터즈의 활동기록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했던 글이다. 이시스터즈의 삶과 사랑, 그리고 노래에 관한 이야기. 그 첫 번째.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김씨 둘, 이씨 한 명으로 구성된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등장

▲ 김씨 둘, 이씨 한 명으로 구성된 이시스터즈 초기 멤버. 좌로부터 김천숙, 이정자, 김명자(희선)씨

밝고 경쾌한 하모니에 고음이 특히 매력적이었던 이시스터즈(Lee sisters). 마치 '톡'쏘는 콜라 맛처럼 짜릿짜릿한 매력적인 하모니를 구사하던 3인조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등장은 '소리의 변화'로 대변되는 60년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들의 화음에 대해 작곡가 이봉조씨는 '절대음'이라고까지 표현했을 정도다.

세계적인 인기그룹 ‘맥과이어시스터즈(McGwire sisters)’의 영향을 받아 출발했던 이들 멤버는 세살 터울의 친자매 김천숙, 김희선(본명 김명자)씨와 멜로디 이정자씨. 처음 김씨 성을 가진 멤버 둘, 그리고 이씨 성을 가진 멤버 한 명으로 결성되었다.

“우리가 데뷔하기 전에 국내엔 이미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김시스터즈가 있었어요. 김해송·이난영 부부, 그리고 이난영씨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 선생의 딸들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김씨 둘, 이씨 한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래서 우리 팀은 김씨 성이 둘이었지만 이들을 피하기 위해 ‘이시스터즈’라고 이름 지었지요. 이것은 미국의 맥과이어시스터즈나 앤드류시스터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당시엔 성씨를 붙여 그룹명을 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였던 것 같아요.”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이시스터즈의 맏언니 김천숙씨의 설명이다.

이시스터즈는 김천숙씨가 모처럼의 고국 나들이를 한 지난 2006년 5월, 브라운관을 통해 오랜만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무려 18년 만에 TV에 등장했던 지난 1990년도로부터 또다시 16년만이다. 그러나 이들은 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친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들이 일반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4년 번안곡인 '워싱턴 광장'으로부터지만 이들의 결성은 이보다 앞서 미8군 쇼 연예인 공급업체 ‘화양’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 1963년에 발표된 허니김스 음반(LKL-130). 남성 4중창단 멜로톤과 함께 스필릿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먼저 친자매 중 동생인 희선씨가 수도여고를 막 졸업하자마자 미8군 가수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울대 출신의 작곡가 겸 연주인 박선길씨로부터 여성보컬그룹을 제의받는다.

그래서 가세한 멤버가 당시 철도청에 근무하던 언니 김천숙, 그리고 그의 직장 후배였던 이정자씨다.
둘은 함께 철도청에 근무하면서 '철도의 날'을 비롯한 교통부 행사 때마다 무대에 섰을 만큼 노래실력에 관한한 정평이 나있었다.

충북 영동 출신의 두 자매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콩쿠르를 휩쓸던 소문난 재주꾼들. 또한 함흥 태생의 ‘함경도 또순이’ 이정자씨 역시 한국전쟁 기간 중 ‘경찰어린이합창단(단장 정세문)’에서 일찌감치 활동했던 재원이다.


미8군쇼 무대에서 데뷔, ‘허니김스’로 첫 음반 발표

이들은 ‘화양’에 전속되면서 쇼단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를 거쳐 박선길씨가 ‘쇼 오브 쇼(The Show Of Shows)’ 단장으로 독립하자 전속가수로 합류, 미8군 장교클럽을 통해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인 1962년, 이들은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현 KBS) 연말 톱싱거대회 연말 결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월말 예선을 거쳐 최종 결선을 벌인 이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한 한 여성보컬 팀이 연락이 두절되자 방송국 측에서 긴급히 박선길씨에게 섭외, 이들의 출전을 요청해온 것.

방송국 전속가수 자격이 주어지는 이 대회에서 이들 이시스터즈는 평소 레퍼토리인 ‘신시어리(Sincerely)’를 불러 2위로 입상한다. 참고로 이 대회 1위는 이재성, 3위는 차도균씨가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 이시스터즈는 이미 미8군쇼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미8군 무대에서 출발한 이시스터즈, 그러나 이들의 첫 음반 취입은 63년 두 자매만으로 구성,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먼저 LKL음반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작곡가 이봉룡씨가 운영하던 음반사 LKL은 이봉룡, 김해송·이난영 부부 이름의 이니셜을 따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이미 '이시스터즈'라는 팀명으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할 때였는데 어떤 연유로 우리가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따로 음반을 취입했었는지 기억이 어렴풋해요. 아마도 당시 절친하게 지내던 김시스터즈의 남동생들인 김보이스(후에 김브라더스로 활동)의 멤버 김영일씨가 음반 취입을 제안했고 역시 김보이스 멤버였던 김영조씨가 곡을 만들어줘 우리가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음반만을 취입한 것 같아요” -김희선씨의 회고다.


‘워싱턴 광장’ 빅히트로 여성중창단 시대 열어

▲ 이시스터즈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린 ‘워싱턴 광장(신세기 SL-10410)’ 음반, 1964년

이들은 '쇼 오브 쇼'단의 주축 멤버로 활동하던 중 이시스터즈 이름으로 64년, '워싱턴 광장'을 발표하며 급부상한다.

1. 넓은 광장 한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이네/벤조 줄을 울리면서 생각에 젖어있는/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보고 싶네.

2. 저 넓은 광장 한구석에 외로이 서 있는/그 사람은 누구일까 난 알고 싶어지네/먼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있는/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보고 싶네.

3, 메마른 낙엽 흩어지는 저 워싱턴 광장/오고 가는 사람 없어 외롭기 한이 없네/돌아갈 생각 하지 않고 벤조만 울리는/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보고 싶네.
-워싱턴광장(김문응 작사, 박선길 편곡, 이시스터즈 노래)

작곡가이기도 한 박선길 단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이들의 성공에는 62년, 먼저 결혼한 언니 천숙씨의 부군 장준기(2011년 작고)씨의 외조도 한몫했다. 당시 KBS 전속악단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이들 노래에 대한 모니터는 물론, '워싱턴 광장'의 1절 가사를 직접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시 해외로 진출했던 김시스터즈, '아리랑 목동'의 김치켓, '세드 무비'의 정시스터즈, 그리고 ‘워싱턴 광장’의 이시스터즈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비로소 여성보컬 전성시대가 개막된다.

이후 이시스터즈는 번안곡인 ‘레몬트리’를 비롯해 ‘울릉도 트위스트(황우루 작사, 작곡-이하 작사, 작곡 순)’, ‘남성금지구역(유호. 최창권)’, ‘서울의 아가씨(김남석, 박선길)’, ‘목석같은 사나이(정민섭, 정민섭)’,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황우루, 황우루)’, ‘날씬한 아가씨끼리(황우루, 황우루)’, ‘별들에게 물어봐(길옥윤, 길옥윤)’, ‘모래 위에 적어본 이름(김원식, 박선길)’ 등 창작곡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아울러 66년, 동갑내기 김희선, 이정자씨가 각각 결혼, 9개월 만삭의 몸이 되어 무대 활동을 잠시 접을 때까지, 불과 2년 동안 무려 스무 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했다.


이씨가 한 명도 없는 김씨들로만 구성, '제2의 이시스터즈' 탄생

출산과 함께 6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멤버 이정자씨가 솔로로 전향하며 그룹을 탈퇴한다. 이 빈 자리에 65년 KBS 톱싱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등장한 김상미씨가 1년간의 방송국 전속가수 활동을 끝내고 새롭게 멤버로 가세했다.

이때가 67년 2월. 이로써 이시스터즈는 김천숙, 김희선, 김상미씨로 구성된, 말하자면 이씨가 한 명도 없는 김씨들로만 구성된 '제2의 이시스터즈'가 탄생한다. (서울신문,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1]’, 2006년 7월6일 자)


Eb(이플렛)음까지 구사했던 하이톤 음색의 매력

림보록, 트위스트, 보사노바, 차차차 등, 60년대를 장식한 이 리듬을 국내 무대에서 한껏 펼쳐 보이며 번안곡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시스터즈, 이들의 음악성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폭을 한층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Eb(이플렛)' 음까지 구사했던 이들의 자극적인 하이 톤의 매력은 국내 작곡가들에게도 매우 구미 당기는 것이었다. 위로는 높은 음, 아래로는 낮은 음까지 매우 폭넓게 표현되기 때문에 고음, 저음의 제약 없이 어떠한 곡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작곡가들의 창작의욕 또한 자극시켰다.

“당시 신세대 작곡가였던 정민섭, 황우루씨의 프로포즈는 대단했지요. 특히 황선생은 우리가 청파동 택시를 타는 곳까지 일부러 나와 매번 기다렸다가 본인의 곡을 불러달라는 주문을 해오기도 했지요.” -초기멤버 이정자씨의 회고다.

이들은 처음 미8군 무대를 통해 번안곡 위주의 노래로 출발했지만 곧 국내 창작곡 위주의 노래로 탈바꿈한다. ‘목석같은 사나이(정민섭)’, ‘뻐꾸기(정민섭)’, ‘남성금지구역(최창권)’, ‘서울의 아가씨(박선길)’,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황우루)’, ‘별들에게 물어봐(길옥윤)’ 등, 특히 고음이 매력적인 노래들로 무장한 이들의 레퍼토리는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시대였지만 사뭇 생동감이 넘쳤다. 그리고 20대 중심의 가요 팬 층을 골목 안 개구쟁이들로까지 끌어내린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호박엿’의 '울릉도 트위스트'까지, 이들의 하모니는 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67년 1월에 발표된 이 ‘울릉도 트위스트’를 끝으로 멜로디 이정자씨가 솔로로 전향하며 탈퇴한다. 이후 이정자씨는 '평화의 나팔소리(조영남 작사, 외국 곡)', '모래 위를 맨발로(김희갑 작사, 작곡)' 등을 발표하며 여전히 빼어난 고음의 기량을 뽐냈다.

잠시 해체 위기를 맞은 이시스터즈는 서둘러 65년 KBS 톱싱어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한 재원, 김상미(본명 김군자)씨를 영입, 제2의 이시스터즈로 재탄생한다.

“1년간의 방송국 전속기간을 끝내고 독립하려 할 때쯤 작곡가 이희목 선생의 추천으로 이시스터즈 멤버에 합류했지요. 물론 방송국 측 일부에서는 반대하기도 했지만...” 멤버 중 막내 김상미씨의 회고다.
‘목석같은 사내’들의 무딘 감성까지 자극했던 초기 멤버의 섹시한 목소리의 ‘관능코드’는 후기 멤버로 교체되자마자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노래를 발표, 섹시한 외모로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어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군대 애창곡 ‘여군 미스리’를 비롯해 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주제가처럼 불리는 ‘좋아졌네’ 등이 이들의 후기 히트곡들이다. 이들은 밝고 건강한 이미지, 깨끗하고 탄력 있는 목소리로 정책 캠페인 송 등을 도맡으며 70년대 초를 장식했다.


출산 하루 전까지 스케줄이 잡혔을 정도로 바쁜 나날

▲ 멤버들이 번갈아 임신했던 탓에 아예 임신복을 개조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설 정도로 인기 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기혼이었던 이들 멤버 셋은 번갈아가며 배가 불렀던 탓에 임신복을 개조한 펑퍼짐한 의상으로 종종 무대에 나서기도 해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자신들의 히트곡 이미지를 무색케 했다. 그렇게 출산 하루 전까지 스케줄이 잡혔을 정도로 이들은 10년을 하루같이 바쁘게 무대에 올랐다.

1971년, 마지막 신곡, ‘병아리 데이트(이민섭 작사, 이현식 작곡)’를 취입할 당시 이들 멤버 모두는 각각 1남1녀를 둔 엄마였다. 그리고 73년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독집음반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접는다. 이 무렵 멤버 김희선씨의 세 살 난 딸, 유선양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아 활동 중단을 선언했던 것.

이후 맏언니 김천숙씨는 새로운 멤버 정숙자씨와 듀엣을 이뤄 워커힐 무대 등을 통해 이시스터즈의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 동부 버지니아로 이주, 81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뇌성마비 딸을 박사로 키워낸 어머니, 김희선씨의 감동 드라마

무대보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무대를 떠났던 멤버 김희선씨는 최근 ‘뇌성마비 딸을 박사로 키워낸 어머니’라는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김명자씨의 딸, 정유선양이 뇌성마비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의 언어소통 보조기구에 대한 사용자들의 시각'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 이 장애극복 감동스토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천숙씨의 귀국으로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이시스터즈 멤버들. 좌로부터 필자, 김천숙, 김상미, 김희선씨. 2006년

현재 재미교포 남편과 두 아이의 어머니로 미국 조지 메이슨대 대학원 교육학과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는 정유선 박사는 이후 독일학회에서 수여하는 에세이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지난 2006년 8월, 독일 ISAAC(국제 의사소통 보조기기학회) 시상식장에 섰다. 그녀가 쓴 에세이 제목은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내 아이들 간의 사랑에 관한 모든 것’.

이들 이시스터즈의 멤버들은 각각 연예인가(家)를 이루고 있다. 인기그룹 ‘히화이브(He 5)’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김용호씨가 김천숙·희선 자매의 남동생, 김상미씨의 올케가 가수 현미씨다. 그리고 해외공연 위주로 활동하며 ‘안젤라현’이라고도 불리던 가수 현란(본명 이명자)씨가 바로 이정자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서울신문,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2]’, 2006년 7월20일 자)

당시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일간지라는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이시스터즈의 활동사항만을 간략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글에 미처 담지 못한, 못 다한 이야기를 다음 호부터 본격 시작하려 한다. ‘삼천만의 연인’ 이시스터즈의 삶과 노래’에 대해서... (계속)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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