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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법’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우리나라의 임종 문화가 달라진다
2019년 03월 05일 (화) 00:23:55 황태희 기자 hth@newsmaker.or.kr

이른바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존엄사법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환자는 3만 5,000명을 넘어섰다. 시행 6개월 차에 1만 4,000여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반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황태희 기자 hth@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을 연장할 수만 있는 의학적 시술이다.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은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는 ‘유보’와 이미 시행 중인 연명의료를 멈추는 ‘중단’ 등 두 가지다. 연명의료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나라 임종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사전영면의료의향서 1년 사이 12배 이상 급증
지난 2월4일은 보건복지부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본격 시행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 중 연명의료 중단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의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마아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라고 판단하면 환자 개인의 의지나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진술 등을 토대로 이뤄진다. 지난 2월3일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1만5259명(남성 3만7285명, 여성 7만7974명)이 연명치료를 계속하기보다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을 마감하겠다고 결정했다. 지난 1월3일 10만명대(10만1773명)를 넘어선 뒤 11만명대에 접어든 것이다.

시범사업을 통해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9336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12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미리 본인의 의사를 밝혀두는 문서로, 지역보건소와 의료기관, 비영리단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전국 94개 기관 290곳에서 설명을 듣고 작성할 수 있다. 누적 작성자가 처음 2만명을 넘어선 지난해 4월 5531명이었던 신규 신청자도 6~9월 8000명 안팎을 오가다가 10월부턴 1만4305명, 11월 1만3541명, 12월 1만5082명, 1월 1만3486명 등으로 늘어났다. 신규 작성자가 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람도 지난해 3월 1명에서 2월 들어 293명까지 늘었다. 2월7일부터는 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94개 기관, 총 290개소)에서 의향서를 작성할 때 상담자가 요청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을 발급하고 있다. 의향서 효력과 등록증 발급·소지 여부는 무관하지만 평소 작성 사실을 확인하고 증명하기를 바라는 작성자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유보) 결정이 내려진 사람들(3만6224명) 가운데 미리 의사를 밝힌 사람은 아직 0.8%에 불과하다.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진술이나 가족 전원 합의에 따른 경우가 1만1529명(31.8%)과 1만2998명(35.9%) 등이다. 10명 중 7명 정도가 가족에 의해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 받고 있는 셈이다. 1만1404명(31.5%)은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명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 생을 마감하고 있다.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상급종합병원(42개)을 제외하면 나머지 의료기관에선 연명의료 중단 판정을 받기도 어렵다. 전체 3337곳 중 5%인 168곳에서만 임종과정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다. 대신 오는 3월28일부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땐 가족 전원 동의 없이 배우자나 부모·자녀(1촌 이내 직계가족)만 동의하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모든 직계가족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연명의료 중단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에 따른 법 개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내서 합법적인 존엄사 인정받기까지
국내에서 합법적인 존엄사가 인정되고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남성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치료를 받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가족들은 “병원비를 부담하기 힘들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병원 측은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환자를 퇴원시켰다. 환자는 얼마 뒤 사망했고 2004년 법원은 가족과 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해 논란이 됐다. 지난 2008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뇌사 상태에 빠진 70대 김 모 할머니의 가족은 연명치료를 중지해달라고 병원에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가족들은 법원에 연명의료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리고 2009년 대법원은 연명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2009년 ‘연명치료중단 제도화 관련 사회적 협의체’와 2012년 ‘무의미한 연명치료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두 번에 걸쳐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다.

그 결과 ‘특별위원회’는 2013년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2015년 국회에서 김재원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을 대표발의 했으며, 2016년 2월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제정됐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위해 의료계·윤리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환자단체 등이 중요 쟁점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와 관점이 달라 치열한 논쟁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일부 논점은 끝내 합의를 하지 못하는 등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8년 2월4일 시행됐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은 시행 두 달도 안 된 2018년 3월27일 개정됐다.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하거나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해 연명의료결정을 예외적으로 할 수 있는 경우의 가족의 범위를 기존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에서 ‘배우자, 1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 배우자·1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 2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로 변경된 것. 연명의료결정 대상인 의학적 시술의 범위도 기존 4가지(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에서 3가지(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승압제 투여)가 추가됐다.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이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말기환자 진단 후 호스피스전문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는 환자인 경우 담당의사 1명만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했다.

환자단체 “의료기관 내 윤리위원회 설치해야”
지난 2월7일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 본인의 의사가 존중받는 성숙한 임종 문화를 만들기 위해 환자 본인이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의사가 환자와 함께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환자단체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환자가 생전에 건강할 때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수는 11만5259명이다. 의사가 환자 본인의 의사를 물어서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1만6366명이다. 사전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수 실적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 성적표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그러나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된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수는 290개에 불과하다. 이 중 의료기관 수는 173개 밖에 되지 않는다”며 “연명의료와 관련성이 가장 높은 곳이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명의료결정 이행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내 윤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며 “전체 3337개 대상 의료기관 중에서 윤리위원회 등록기관은 168개(5%)에 불과하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다음으로 임종기 환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요양병원의 경우 1526개 대상 의료기관 중에서 22개(1.4%)만이 윤리위원회 등록기관이다”고 밝혔다. 환자단체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의료기관을 상상할 수 없듯이 연명의료결정을 시행할 수 없는 의료기관도 상상할 수 없다. 연명의료도 의료행위의 일부라면 임종기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한 연명의료결정 이행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초기임을 고려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근거한 경우가 적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연명의료계획서’에 근거한 경우의 비중이 낮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은 ‘연명의료계획서’다. 일부 환자나 환자가족은 담당의사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권유에 대해 강력히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담당의사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임종기 환자의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유할 수 없다”며 “만일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 보상에 적다면 정부는 그에 합당한 보상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담당의사가 환자와 죽음을 상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료행위와는 차이가 있고 많은 시간과 노력 투입이 필수적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또 연명의료가 예외적으로 시행되는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31.8%)와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경우(35.9%)가 총 67.7%로 전체 연명의료결정 이행 규모에 비해 너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남용 우려가 높은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가 31.8%로 걱정스러운 수준이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지난 1년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의료현장에서는 법률과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환자가 임종기에 접어들지 않았는데도 환자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의사에게 요구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치료비·상속·보험금 등 경제적 동기로 가족 전원이 합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사례들도 있었다”며 “이러한 생명 경시 풍조 조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연명의료결정제도 남용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는 “환자단체들도 앞으로 치료환경과 함께 임종환경도 환자 중심으로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제도·법률을 개선하고, 대국민 인식개선 및 홍보활동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문화가 조속히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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