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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박사에서 미술작가로 제2의 인생을 걸어가다
2019년 02월 15일 (금) 17:40:24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관람객들은 이진환 작가의 개인전을 그룹전으로 착각하곤 한다. 서예, 수채화, 유화, 아크릴, 민화, 도자, 포슬린페인팅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팔순기념 작품전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 최선을 다해온 그의 팔십여 년의 생애가 한 눈에 목도된 전시였다.
 
신선영 기자 ssy@
 
약박박사로서의 삶
   
▲ 이진환 화백
이진환 작가의 작업 스케줄은 이렇다. 월요일에는 한국화와 서예를, 화요일에는 서양화와 포슬린 페인팅을, 수요일에는 도자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그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다. 팔순이 넘는 나이에도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건 직장생활에서의 패턴이 몸에 배였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그는 40여 년간 저명한 약학박사였다. 하지만 회고록을 읽어보니 다부지고 부지런한 성격은 그 이전에 형성된 거였다. 
 
중학교 때 6·25 전쟁을 겪은 그는 일찍이 생의 나락을 체험했다. 인민군의 진입과 강제 북송에 떨며 멀건 죽으로나마 연명했던 것이다. 당시 유학하고 있던 서울에서 고향인 전남 곡성까지 꼬박 12일을 걸어 내려갔는데, 아직도 그날을 어제와 같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그를 안간힘으로 키운 것이 분명했다. 언제나 막다른 골목에서 뚫고 나올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조선대학교 약학대학에 들어가 약사국가시험에 합격한 그는 학문 연구에 뜻을 두고 조선대학교 약학연구소의 연구원과 조교를 거쳐 전임강사가 됐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부속병원 설립이 불투명해지자 의과교육용 사체 확보와 기자재 구입 및 설치에 앞장서게 됐고, 한미재단으로부터 기증품을 받아 부속병원으로 승인받게 되면서 설립과 동시에 약국장과 사무국장이 됐다.
 
이후에는 폐교 위기에 놓인 조선대학교 병설 간호전문학교를 전문대학으로 승격시키는가 하면, 개설 허가에 문제가 있었던 조선대학교 부속광양병원도 연이어 개원하며 모두가 손사래 치는 일들을 도맡아 해결했다. 또 조선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환경공해연구소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 조선대학교 약학대학 학장과 1998년 조선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사회 분야에서는 평화통일정책, 전라남도정책, 전라남도지방 환경보전의 자문위원과 대한체육회 전라남도 테니스협회 부회장, 국제라이온스협회309-C지구 지대위원장, 보건사회부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광주광역시 약사회정책 자문위원으로 공헌하고 있다. 
 
   
▲ (시계 방향) 고린도전서 십삼장, 2016, 60ⅹ60cm, 한용운 시, 2016, 44ⅹ44cm, 동의보감 제1, 3, 5권 필사본 역주, 2016, 29ⅹ41cm, 법구경 중에서, 2018, 44ⅹ45cm
 
이밖에도 한국제약학회의 창립이사와 학회장, 대한약학회의 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86년부터 미국 American Association of Pharmaceutics Scientists(AAPS)의 Charter Member로 활동했다. 그동안 10여 권의 저서를 간행하고,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8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으며, 20여 명의 석사와 10여 명의 박사를 탄생시켰다. 1983년 한국약제학회 학술상, 1984년 전남 교육회 특별공로상, 1985년 전남 문화상, 2003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공로상 등을 수상하고, 1985년 대통령 표창, 2000년 교육부장관 표창, 2003년 황조근정 훈장 등을 수여 받았다.
 
196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42년 10개월 간 조선대학교에 몸 담아온 그는 이제 작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제 2의 인생을 제계했다. ‘젊어서는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몸이 잘 따라주었고, 늙어가면서는 몸이 누워 있어도 마음은 제 일에만 열중하더니, 아주 늙고 보니 마음이 몸을 보살피더라’는 이미경 선생의 글귀를 마중물로 삼아 은퇴 뒤의 심신을 보살피는 것이다.
 
   
▲ (시계 방향) 몽생미쉘, 2017, watercolor on paper, 51ⅹ36cm, 일출봉과 유채꽃, 2018, acrylic on paper, 31ⅹ23cm, 석양속의 기러기, 2017, watercolor on paper, 51ⅹ36cm, 우포늪의 어부, 2017, watercolor on paper, 91ⅹ65cm
 
미술의 세계로 들어가다
이진환 작가는 스스로를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대학시절, 새벽까지 공부하면서도 5시면 일어나 십팔기(자기도)라는 무술을 연마했던 것처럼 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겸사하는 것이다. 단지 신비스럽게 여겨져서 했을 뿐인데 유단증을 획득한 사범의 자격으로 매일 약대 운동장에서 100여명의 수강생을 가르치는가 하면, 취미로 시작한 펜싱으로 대회에 나가 일반부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국무총리배 전국 교수 테니스 대회에 대학 대표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고, 은퇴 뒤에는 골프를 싱글 수준으로 향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성격은 작품을 할 때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맞닥뜨린 것에 두려움이 없고 주어진 것에 거침이 없었다. 처음 한글 서예로 각종 서체를 익힌 뒤에 사군자를 비롯해 수묵화, 한국채색화, 수채화, 유화, 아크릴 등을 배워나갔다. 같이 그림을 그리던 동료의 권유로 도자기 공예를 배웠고, 접시나 타일에 그림을 그려서 구워내는 포슬린 페인팅도 이천도자기축제에서 단번에 매료돼 시작했다.
 
   
▲ (시계 방향) 연꽃청자향로, 2017, 백자 달항아리, 2018, 균요유병 직품유병 결정유화병, 2018, 과일부케Ⅰ, 2017
 
주지하다시피 그의 작업량은 실로 어마하다. 자택과 화방에서 밤낮으로 그리기 때문에 남들의 두세 배의 작품량을 가지고 있다. 서예 29점, 그림 74점, 도자기 37점, 백자청화와 포슬린페인팅 48점 등 180여점의 작품을 미술을 시작한 삼사년 만에 창작해 냈다. 그 사이 서예부문 전국공모전에 출품해서 19회 입상했는데, 여기에는 평화예술제평화미술대전에서 받은 서울특별시장상과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받은 특선이 포함돼 있다.
 
미술부문에서도 전국공모전에 13회 입상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상을 비롯해 특별상과 특선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채화 구상부문에서 입선해서 화단으로부터 인정받게 됐다. 이밖에도 이탈리아와 중국을 비롯한 단체전과 국제교류전에 참여했다. 이진환 작가는 “여러 분야에 도전하며 예술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며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옛말을 생각하며 여남은 생을 창작활동에 매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NM
 
   
▲ (시계 방향) 동해안 풍어제중에서, 2018, watercolor on paper, 116.8ⅹ91cm, 늦가을의 정취, 2017, 장지에 채색, 51ⅹ36cm, 눈덮인 광한루, 2018, acrylic on canvas, 53ⅹ4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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