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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운명인 찰나와 순간이 흘러 만들어진 진리
2019년 02월 06일 (수) 21:08:43 안지은 기자 aje@newsmaker.or.kr

“역사는 필연이고 순간과 찰나는 운명이며 이 운명인 찰나와 순간이 흐르고 나면 숙명이 되어 이를 역사라 말하고, 역사는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이풍용 원장이 주장하는 만년인류 역사주기설이다.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위해 십수 년간 바른 역사를 알리는 일에 전념해 온 이풍용 원장. 수많은 성과 중에서도 특히 이삼평 도공 비문 정정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의 활약은 그를 명예독립운동가로 인정받게 했다.

안지은 기자 aje@

‘한의사, 철학박사, 시인’ 하나만 해도 어려울 법 한 이 역할은 모두 그를 나타낸다. 1938년 천안에서 태어나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이풍용 원장은 대전대 대학원 동양철학 문학석사, 동대학원 철학박사, 주성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등단 시인으로 NGO 환경운동본부 연기군 지회장, 삼일동지회 충남지회장 등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했으며 독도 홍익인간 문화창조추진 사이버연합 대표, 독도 칙령 기념 사업 국민연합 공동 대표, 명예독립운동가 모임 대표, 이삼평 도공 비문 정정 추진위원회 위원장과 더불어 일본도조 이삼평공 제전위원회 한국측 대표를 역임했다. 왜 우리 사회는 그를 주목하는가?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역사, 바로 잡아야 할 변하지 않는 진리
▲ 이풍용 원장
이풍용 원장은 “바르게 고치는데 20여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588년 선조 21년, 일본인들이 조선에 잠입해 방방곡곡을 정탐한 후 1952년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다. 당시 일본에 끌려가 일본 백자의 시조가 된 이삼평 도공. 일본 사람들은 1917년에 군국주의 사관에 기초한 이삼평 도공의 현창비를 아리타 연화석산에 세웠다. 그 비문에는 ‘우리 도조 이삼평은 조선 충청도 금강 사람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 현창비는 무엇이 잘못 됐을까?

 이풍용 원장은 “아리타쵸의 도조비의 뒷면에는 정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삼평 공이 스스로 협조 해 길을 안내 했으며 그 공적으로 귀화시켜 주었다라는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내용으로 자칫 이삼평 도공이 국가를 배신한 인물로 비춰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풍용 원장은 잘못된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일 양국의 의견을 수렴해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는 등 역사상 이삼평 도공의 평가를 바르게 이끌어냈다. 이삼평 도공 비문 정정 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일본도조 이삼평공 제전위원회 한국측 대표 의 적극적인 각고의 노력 끝에 이풍용 원장은 명예독립운동가로 선정 되고 한국 광복군 배지를 증정 받았다. 늘 흐트러진 역사는 없는지 살핀다는 이풍용 원장은 “우리가 제대로 고쳐두어야 후손들에게 우리의 바른 뿌리를 건네 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계룡, 시작이 이루어 질 그 곳
이풍용 원장에 따르면 민족의 진정한 광복은 남북통일이 이룩되는 날 비로소 구현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통일론인 ‘두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종 특별자치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1392년 고려 500년을 이어 조선을 창건한 이성계. 그 후 1393년 도읍지 문제로 계룡산을 택하여 10개월간 궁터 공사까지 했으나 정도전 등 개국 공신들의 주장에 의해 1934년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이풍용 원장은 계룡이 도읍지에 이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첫째 계룡은 개경으로부터 거리가 너무 멀고, 둘째, 강이 없어 경세에 어렵고, 셋째 물이 퍼져나가는 형국으로 도읍지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역성혁명을 주도했던 이들로서는 당연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계룡산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됐고 민족의 선각자들은 개경에서 뿌리 내리어 한양에서 600년 꽃을 피우고, 그 결실은 계룡 800년이라는 예언을 남겼습니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계룡산은 앞으로 만년 인류역사의 새로운 시원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성계, 이토히로부미, 미군, 박정희, 모두 계룡산을 향한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한 것을 예로 들며 그들이 왜 그렇게 세종시와 계룡을 염두에 두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뜻 있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앞으로 필요한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새로운 만년의 시간이 오고 그 만년의 시원지는 한반도, 거기서도 계룡산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앞으로 세계는 수많은 근원에 의해 결국은 하나의 국가처럼 살게 될 것이라며 그 역사의 섭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하루 빨리 자주적 통일을 이뤄 세계일원국 건설의 선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세계는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통일이야말로 세계 일원국의 선도국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이풍용 철학가에게 빠져있던 기자에게 그는 한의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듯 한의사로서의 소임이 느껴졌다. “곰을 사람으로 만든 쑥, 마늘, 거울에 4차 산업시대의 기적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단군신화에서 알 수 있듯 마늘과 쑥은 사람의 병을 낫게 하고 변화까지 시키는 힘이 있다고 나타나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많은 오늘날의 연구 성과와 전통의 방식을 융합해 마늘과 쑥, 상추의 완전발효를 통해 산화질소를 생성시키는 물질을 개발했고 이는 4차 산업시대 바이오산업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심 뇌혈관질환, 암 등 세계적으로 가장 고민인 질환들을 예방, 치료할 수 있는 제품이 생산되고 있음은 우리 건강에 크나큰 청신호라며 앞으로도 바이오산업의 활성화로 현대인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제품이 많은 발전을 하기를 바라며 아픔이 있어 이러한 의학이 필요한 이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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