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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 날리며 사는 사람
2019년 01월 08일 (화) 01:45:01 정재홍 webmaster@newsmaker.or.kr

그의 향기는 우리마음을 따뜻히 데운다 .
꽃은 향기를 풍긴다. 향기는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사람도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다. 정재홍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20년 가까이 일본어 재능기부교육을 해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의 향기를 맡아간다. 일흔중반인 그가  두 달이라는 긴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더 짙은 향기를 만들고픈 여행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의 향기 나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일본 마음 체험기  
▲ 정재홍 원장
일본을 아주 많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 일지 모른다.. 70년 전 나의 첫째형은  징용으로 끌려가 머나먼 일본 가마이시에서 스무살 청춘을 마감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서로 미워만 하고 살 것인가.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반추하지는  말자.  세상사람 모두가 서로 돕고 협조하고 사랑하며 지구별에서 함께 평안히 살다 가자. 우리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2000년부터 재능기부로 일본어를 가르쳐 왔다. 그러나 언어만 가르치다보니 재미가 덜하다. 마음결심하고 일본으로 두 달 여행을 떠났다. 일본 문화, 일본사람들 사는 방식, 일본사람들의 생각 등을 공부해오기로 한 것이다. 숙소는 두 달 내내 한곳으로 정했다 사람 사는 모습을 깊히 들여다 보고 싶어서다. 여기서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옃가지 나누어 보려 한다. 

어느 할아버지의 경우
   사누끼시 시도(志度) 지역에 있는 시도지(志度寺)을 구경하고 배가 고파 조그만 음식점에 들어갔다. 옆에는 어느 노인이 혼자서 일본 정종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그분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 노인은 아흔한살이라 하셨고 열심히 옛날 전쟁 때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나도 맞 장구를 치며 경청을 했다. 목이 말라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 그 노인은 계산카운터로 가시더니 계산을 하고 다시 자리도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먹은 밥값이며 맥주 값도 다 지불하셨단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는 드물다.  더치페이가 일상화 되어있다. 함께 자리하여 대화하는 즐거움만 공유하는 것이다. 누가 돈을 낼 것인가 신경 안 써도, 구두끈을 맬 필요도, 화장실에 가는 척 할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 온 나이어린(?)나를 귀엽게 봐 주신 걸까? 그 노인은 매일 혼자서 술 한 잔을 하고 가신단다. 대화가 그리운 분같다. 나는 열심히 들어드린 값으로 공짜 밥 공짜 맥주를 얻어먹은 셈이지만 어쨌든 감사했다. 일본에도 아직 이런 문화가 남아있는 것에 사람 사는 맛을 느꼈다.   
 
 마쯔리에서 만난 사람들
 일본에선 신사(神社)가 있는 지역에서는 마쯔리(축제)를 한다. 마쯔리가 행해지기 하루 전날은 돈을 모으는 날이다. 독특한 복장을 한 마쯔리 꾼들은 마을 집집마다 돌며 북을 울려주고 돈을 추렴해 간다. 내가 사는 게스트하우스에도 이들이 찾아왔다. 어린아이들이 북을 치며 리듬에 맞춰 노래(?)같은 것을 한다. 그러면 뒤쪽에 서있던 어른들이 형편대로 돈을 거두어 간다. 집 주인은 5000엔을  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말하고 1000엔을 내주었더니 고맙다고 했다. 다음날 신사를 찾아 마쯔리 구경을 갔다. 흡사 엣날 우리나라 시골동네에서 상여꾼들이 발인 전날 상여를 메고 전야제(?)를 하는 모양으로 여러 사람이 가마 같은 것을 메고 가마 안에서 아이들 셋이 두드리는 북소리에 맞춰 신사 마당을 돈다. 그러나 그 도는 모습이 너무도 과격하여 꼭 어딘가에 부딪칠 것 같았지만 잘 제어해 나갔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힘을 쓴다. 한 방향으로 달려가다가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달려간다. 빙빙 돌기도 한다. 북소리는 연신 리듬을 맞춰준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리듬에 맞춰 발을 움직인다. 여기서 일본의 단합정신이 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다. 간식을 파는 좌대가 있었지만 술을 파는 곳은 없었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절제를 보여 주었다. 먹자판 문화가 아니었다. 신 앞에서의 엄숙한 축제였다.

 눈물로 대신한 마음의 편지
   의외였다. 내가 일본체류를 마치고 돌아오기 이틀 전 나와 연을 맺었던  한국어교실 요꼬유찌 선생님  오가와 학생, 하라다 학생  그리고 다른  몇 명의 학생들이 함께했다. 한마디씩 하는 순서가 되었다. 먼저 요꼬우찌 선생님이 일어나 인사말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마디 말을 하다가 그만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이제까지 나를 위해 눈물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던가. 언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요꼬우찌 선생님이 날 위해 눈물을 흘려주시다니... 고마운 생각에 나의 가슴도 찡했다.
   내가 떠나오던 날, 송별회를 해주신 세분이 공항까지 환송 나와 주셨다. 나는 요꼬우찌 선생님께 물었다.  왜 우셨냐고. 갑자기 작별을 한다니 슬퍼지더란다. 또 내가 혼자서 1000키로가 넘는 머나먼 길을 형님의 냄새라도 맡는다며 떠나던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나더란다.
  일주일에 두 차례 게스트하우스 일을 도와주는 유끼꼬라는 여인이 있었다. 영어도 잘하고 늘 밝은 얼굴로 서투르지만 항상 한국어로 인사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몇  차례 한글문자와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귀국하기 하루 전날 나는 이천엔 짜리 한 장을 보이지 않게 여러번 접어 작게 만들어 그녀의 손안에 꼬옥 쥐어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의 눈언저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시대의 우리는 너무 건조하게 살아간다. 감정도 메말라 간다. 심한 경쟁 속에서 항상 긴장하며 정신은 피곤하다. 이 두 사람의 눈물로 나의 일본 여행은 의미가 짙어 졌다.  잊지 못할 기억으로 오래 오래 가슴속에 남을 것 같다.  

 한국어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
요꼬우찌 선생님은 겨울연가를 보고 한국이 좋아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분이다. 마침내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 지금은 미끼죠 평생교육원에서 다섯 강좌를 맡아 한국어를 가르친다.   나는 요꼬우찌 선생님의 부탁으로  한국어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경청을 해 주었다. 수업이 끝나면 간단한 다과 파티를 했다. 이렇게 칠십여명의 학생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 후의 일 이자만 이 학생들을 동네 마트에서도 만나고 공항에서도 만났다. 모두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어느 남학생은 차를 가지고 화서 하루 종일 날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어느 학생은 다도수련에 나를 초대하여 다도체험을 시켜주기도 했다. 한국 가요를 잘 부르는 오가와씨는 늘 옆에서 나를 보살펴 주었다. 모든 분들이 고맙고 감사했다. 그 분들은 한국을 좋아했고 한국을 사랑했다.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 드라마도 매일 보고 있었다.  이분들 덕분에  난 외롭지 않게  일본 경험을 하고 왔다.
   이렇게 두 달간의 일본 여행을 끝내고 11월 30일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름답고 따뜻한 기억들은 오래도록 나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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