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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20년만에 고향 찾은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의 가수 오기택[5]
2018년 12월 04일 (화) 16:05:53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처음으로 ‘오기택 전국가요제’에 참석한 주인공, 그 2박3일 동행 취재
‘고향무정’의 가수 오기택, 20년 만에 고향 ‘땅끝 해남’을 가다 2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의 매혹의 저음가수, 오기택씨가 20년 만에 고향, 해남을 찾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오기택 전국가요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그는 그동안 건강을 이유로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 가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22년 전 바다낚시를 갔다가 당한 불의의 사고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늦추면 직접 참석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 강행한 고향길이었다. (뉴스메이커 2017년 12월호~2018년 2월호, 오기택[1][2][3]편 참조) 또한 이 날은 ‘오기택 노래비-고향무정’ 제막식도 함께 펼쳐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오기택 전국가요제’ 방문길에 둘러본 해남은 축제, 그 자체였다.

모처럼의 고향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추억이 서려 있는 유년시절의 흔적들과 친구들. 그가 유년시절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지금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도 함께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여행길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오기택 전국가요제의 현장, 그 눈물과 감동의 현장을 지난 호부터 세 차례에 걸쳐 돌아본다. 그 2박3일 간의 동행 취재, 두 번 째.

글l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사진l장성하(사진작가)

인사를 대신해 만든 축하 영상 속 오기택은...

필자가 오기택 선생으로부터 직접 가요제에 참석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건 행사 한 달 전인 9월 초였다. 함께 참석하지 않겠느냐는 제의와 함께 몇몇 가요계 인사들의 축하 영상을 받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과연 오기택씨 다운 발상이었다. 그는 지인들을 모두 초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은 축하영상으로 대신해보자는 것. 물론 인맥이 워낙 넓은 그로써는 리스트 작성 또한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에게 붙어있는 또 다른 별칭은 ‘의리의 사나이’다. 가요계의 맏형으로써 항상 궂은일에 발 벗고 나섰던 그였다. 때문에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땐 문병 오는 동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했던 그로써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가요제에 지인들 모두를 초청하고 싶어 함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오기택 선생은 온종일 이 생각에만 몰두하는지 지인들은 가요제 소식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필자 역시 매일 아침 걸려오는 오기택 선생의 전화벨소리에 잠을 깼을 정도였다.

인사를 대신해 영상도 만들었다. 그의 프로필과 함께 소개되는 7분짜리 본 영상과 3분짜리 추가 영상, 두 개가 만들어졌다.

가요제 포스터와 함께 시작되는 본 영상의 첫 부분은 오기택씨가 방송에서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빠의 청춘’, ‘영등포의 밤’,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 ‘우중의 여인’...등.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노래하는 장면들이었다.

이어 등장하는 방송인 송해씨. 그는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먼저 “전국~~!!” 하고 외쳤다. 그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에이, 제가 ‘전국~~!’하면 여러분들이 ‘노래자랑~~!!’해야 재미있죠, 다시 한 번요, 전국~~!!” 역시 그는 원로방송인답게 노련하게 관중들을 리드했다.

송해 선생이 영상에서 축하메시지로 전한 말은 이러했다. 옮겨보자면, “오늘은 제가 해남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해남하면 여러분들도 땅 끝이다, 토말이다 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많이 담아 오실 텐데요. 또 해남하면 뺄 수 없는 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누군지 아시죠? 바로 매력의 저음가수, 오기택!”이라며 “요즘도 제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출연자들이 그분의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왜 그렇게 많이 부르나 했더니만 추억이 서리고 지난날이 그립고 이웃이 서로 따듯하게 가까워지라는 의미에서 ‘충청도 아줌마’라든가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 등... 특히 이 노래는 요즘 사, 오십대 아빠들이 어려운데 얼마나 용기를 줍니까?”라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서 오기택씨에 대한 소개 영상이 시작된다. 짧은 시간의 영상이었던 만큼 주요 프로필만 간략하게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다. 영상의 마지막은 후배가수 박상철씨의 응원으로 이어졌다. “오기택 전국가요제 파이팅, 오기택 선생님 사랑합니다.”란 말과 함께 오기택 선생의 인사말 또한 자막으로 흘렀다.

“고향무정 노래비 제막과 더불어 ‘제12회 오기택 전국가요제’를 위해 수고해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사랑하는 해남군민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8년 10월 가수 오기택”

고향 방문에 맞춰 해남군민들에게 드리는 오기택 선생의 인사인 셈이다. 이 영상은 가요제가 열리는 도중 대형 스크린을 통해 소개될 것이다. 아울러 동료가수들의 축하 영상 메시지는 가수 이미자, 김상희, 윤항기, 남진 그리고 그를 치료했던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이사장까지로 이어졌다.

오기택 선생이 처음 완성된 이 영상을 본 것은 목포행 KTX 열차 안 노트북 화면을 통해서였다. 영상을 보자마자 오랜만의 고향길에 긴장하던 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내 얼굴은 오른쪽에서 봤을 때 더 나은 것 같아.” 갑자기 밝아진 표정에 조크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왠지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첫 번째 반전이었다.

해남에서 2박3일 간의 바쁜 일정을 시작하다

20년 만에 고향, 해남을 찾은 오기택씨의 일정은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진행되었다. (뉴스메이커 2018년 11월호, 오기택[4] 참조)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만난 해남중학교 동창들과의 만찬. 그리고 고향마을 사람들의 기금으로 세워진 ‘오기택 노래비’ 개막식 참관, 내친 김에 둘러봤던 고향마을의 살던 집과 모교 북일초등학교와 북일면사무소 방문... 짐짓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일정은 ‘오기택 전국가요제’가 열릴 예정인 해남군민광장으로 곧장 이어졌다.

행사 당일인 12일, 오후 7시부터 열릴 예정인 현장은 벌써부터 가요제 출전가수들의 리허설로 시끌벅적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주먹밥 먹기’ 행사와 ‘무료 차 나눠주기’ 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해남주민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팔 걷어 부치고 나선 듯했다.

홍차, 연근차, 해남만의 독특한 댕쇼차 등이 쉴 새 없이 주민들 손에 들려졌다. 주최 측과 별개로 나선 자원봉사였다. 행사장에서 차 나눔 무료봉사를 하고 있는 윤향자씨(60, 새금다정자 대표)는 돌아가신 부친 생각에 자청해서 나왔다고 했다.

“아버님이 생전에 오기택 선생님의 팬이셨어요. 얼마 전 유품을 정리하다보니까 오선생님의 노래가사를 자필로 적어놓으신 걸 평생 보관하고 계셨더라구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아버님은 이 노래들로 향수를 달래시곤 하셨는데 이번에 주인공이 직접 가요제에 오신다고 해서 자원했지요. 오기택 선생님 노래야말로 아버님의 체취이자 해남 어르신들의 마음인 것 같아요.” 그가 준비해온 차는 귀하다는 ‘청귤 청홍차’와 ‘위스키 홍차’ 그리고 ‘핫뱅쇼 티’였듯 그는 삼산면 민박촌길에서 찻집 새금다정자(해남의 옛 이름이 ‘새금’이라고 했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듯 가요제 현장은 따듯한 차 한 잔과 무료 주먹밥 행사로 분위기가 훈훈하고 정겨웠다.

오기택 전국가요제, 화려하게 막이 오르다

오후 7시가 가까워오자 군민광장은 삼삼오오 모여드는 관중들로 점차 붐비기 시작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5백석 의자를 모두 채우고도 그 두 배가 넘는 인파가 서서 관람했을 정도로 가요제 개최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이 몰렸다.”는 게 주최 측인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박태일 해남지회장의 설명이다. ‘농번기 시즌이라 군민들이 많이 나오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주인공 오기택씨가 직접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많은 관중이 몰렸다.’고도 했다.

1차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12명이 열띤 경연을 펼칠 가요제에서 필자는 심사를 맡았다.

“전국가요제인 만큼 해남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가수 지망생들이 몰렸지요. 사실 예산이 충분치 않아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해남지회 회원 50여 명이 힘을 합쳐 지난 2007년부터 한 해도 안 거르고 행사를 이어왔습니다.”는 박태일 지회장의 설명대로 이 가요제는 처음 ‘오기택배 가요제’로 시작되어 제9회(2015년)부터 ‘오기택 전국가요제’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 12회 째로 이어지고 있다.

초대가수들도 화려했다. 첫 오프닝 무대는 김흥국씨가 장식했다. “제가 요즘 뉴스에 너무 많이 나와서 사실 이 무대에 설 입장이 아닌데...”라며 무대에 오른 그는 “하지만 오기택 선배님 전화를 받고 해병대 직속후배로, 또 후배가수로써의 의리 때문에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 들이댔다.”며 자신의 히트곡인 ‘호랑나비’와 ‘59년 왕십리’를 불렀다. 앙코르가 쇄도하자 ‘저는 히트곡이 단 두 곡뿐이라서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다’며 무대를 내려갔다.

이어진 무대는 여전히 파워가 넘치는 가수 현미씨의 무대였다. 어느덧 80세를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현미씨는 “1960년대에 함께 활동하던 많은 가수들이 그새 하나, 둘씩 사라져 이제는 몇 안 남았다. 얼마 전 최희준씨 마저 떠났다,”며 “그럴수록 더욱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 자신의 대표곡인 ‘보고 싶은 얼굴’의 마지막 부분을 ‘보고 싶은 기택아, 건강해라’라고 가사를 바꿔 응원을 보냈다.

‘두 살 위인 현미누나는 함께 공연도 많이 했고 공연 때마다 성격이 안 맞아서 서로 티격태격했던 사이였다. 그런 만큼 오히려 정이 든 단짝 가수’라고 오기택씨는 귀띔한다.

드디어 가요제 본선이 시작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린 참가자들 중 본선에 오른 가수 지망생들은 해남을 비롯해 가까운 목포, 순천, 고흥, 완도 그리고 전북 군산과 경남 통영에서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신인 등용문으로써 많은 가수들을 배출해왔죠. 그러나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대상을 제외하고 금상부터 시상하게 되어 많이 아쉽습니다.” 박태일 해남지회장의 말이다.

가요제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 중간에 축하무대가 이어졌다. 김흥국, 현미에 이어 오승근, 서수남, 남상규의 무대로 계속 이어졌다. 모두 오기택씨와는 친분이 매우 두터운 가수들이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와 ‘있을 때 잘해’를 부른 오승근씨는 오기택씨와 같은 여의도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로 집을 방문하며 식사도 자주 했던 각별한 사이. 전화를 받자마자 축하해주기 위해 단숨에 달려왔다고 했다.

‘동물농장’과 ‘팔도유람’을 부른 서수남씨는 지방이나 해외 공연 다닐 때마다 항상 오기택씨의 룸메이트였다고. 직접 오기택씨가 입원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특별 콘서트를 해주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추풍령’의 가수 남상규씨 또한 소문난 죽마고우. 한때 일본 진출을 꿈꾸던 오기택씨에게 먼저 일본에서 자리 잡은 남상규씨는 일본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남상규씨가 귀국하면 제일 먼저 오기택씨를 찾아와 함께 어울렸고 오기택씨 또한 일본에 갈 때면 남상규씨가 가장 먼저 반겼다. 축하무대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깜짝 이벤트로 가요제 후반, 또 다른 스타가 예고 없이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화려한 영상들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도 화려했다. 방송인 송해씨를 비롯해 가수 이미자, 김상희, 윤항기, 남진, 박상철씨 그리고 오기택씨를 치료했던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이사장까지. 이들은 한 결 같이 오기택씨가 ‘평소 동료 선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 서왔던 의리의 사나이, 멋진 사나이’임을 강조했다.

가수 김상희씨는 “이렇게 한 사람의 이름을 걸고 가요제가 쭉 진행되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라며 “앞으로도 10년, 20년, 30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특히 매년 해남에서 보내주는 고구마를 잘 먹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미자씨는 “아름다운 고장 해남은 여러 가지 자랑거리가 매우 많은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해남이 낳은 가수 오기택씨를 빼놓을 수가 없다.”며 “개인적으로 친분도 각별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연예협회 가수위원장’을 맡아 동료, 선후배들의 권익에 앞장을 섰던 의리의 사나이”임을 강조했다.

후배가수 박상철씨는 “늘 큰 산처럼 존경하는 오기택 선생님께 많은 응원을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오기택 전국가요제가 영원히, 그리고 무조건 대박나기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오기택씨의 팬으로써 무료로 병을 치료해준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이사장은 “오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저희 병원에 모셔서 3년7개월 간 전 의료진과 함께 적극적인 진료를 했다,”며 “오기택 선생도 나아야 되겠다, 회복되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서로 노력을 해서 지금은 거의 80% 가까이 회복되었다. 앞으로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만 있게 되면 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회복되리라 믿는다.”며 응원을 보냈다.

‘영원한 동기이자 벗’임을 강조한 윤항기씨, 그리고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왔다는 가수 남진씨의 영상메시지도 훈훈했다. 남진씨는 “60년대에 처음 데뷔했을 때 고향후배라고 해서 사랑해주셨던 잊지 못 할, 의리의 사나이 기택이 형님”이라며 “노래는 소프트하고 부드럽지만 가요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가장 힘 있는 사나이, 멋진 사나이로 최고의 스포츠맨”이라며 “어느 누구도 함부로 까불다가는 한방에 갑니다.”라며 웃어보였다.

그 외에도 여러 가수들의 축하영상 메시지를 내년으로 미룰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기택씨는 많은 가수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가수였음이 느껴졌다.

박수와 환호성 속에 드디어 주인공 오기택, 무대에 등장하다

축하 영상이 전성기 시절의 모습과 함께 스크린에 소개되자 관객들은 아낌없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많은 중년들 또한 추억에 젖어들었다. 이어 ‘해남의 자랑, 오기택 선생님을 직접 무대로 모시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소개되자 현장은 그야말로 떠나갈 듯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기대와 흥분 속에 ‘오늘의 주인공’ 오기택 선생이 천천히 무대로 등장하고 있었다. 순간, 필자 또한 마치 나 자신이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긴장했다. 오랫동안 옆에서 그를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그가 왜 그토록 오랜 동안 꿈꿔왔던 이 무대에 그동안 서지 못했는가를. 보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 자랑스럽게 서고 싶었던 무대, 그리하여 보란 듯이 고향사람들과 자신의 노래를 소리쳐 부르고 싶었던 소중한 무대, 하지만 마음일 뿐 건강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채였다.

전성기 때 누구보다 사나이다웠던 가수 오기택,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통했던 그, 역삼각형의 몸매는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며 그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기름졌던가.

드디어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모습을 나타냈다.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딴 가요제 무대에 선 그에겐 고향사람들을 절대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각오만이 전부였다. 그것이 그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때문에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무대에 서야 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무대를 지켜보던 필자도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의 곁에는 늘 요양보호사가 붙어있었다. 사회자가 부인이라고 잘못 소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아직도 독신임을.

당시 숨죽이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던 옛 친구의 말을 빌어본다. “처음엔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좀 거시기했어요.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까웠죠. 특히 기택이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중년 팬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모습과 너무도 달라서 당황했을 수도 있을 테구요. 물론 누구도 드러내지 않았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정말 멋진 무대였어요, 특히 기택이가 노래 부를 때는 눈물이 나려 하더군요.” 해남중학교 동창인 성유추(79) 총무의 후일담이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죽을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사회자로부터 ‘오기택!!’이라는 이름이 호명되자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관객들도 손을 들어 화답했다. 사실 오기택씨는 최근 근육이 굳어 평소에는 움직이기 힘든 팔이었다. 인사말과 함께 몇 마디 말을 더 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말소리가 관객석에 잘 전달되지 않았다. 안면근육마비로 인해 표정은 더욱 굳어 보였다. 그는 이내 ‘잘 안 되는 말보다 노래로 대신 인사하겠다.’며 ‘아빠의 청춘’을 부르겠다고 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다시 한 번 관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우렁찼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기저기 관중들도 따라 부르며 합창하기 시작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무대에서 박수치며 노래하는 오기택씨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보였다. 비록 왼팔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른손을 왼손으로 옮겨가며 치는 박수였지만.

고향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상황을 뛰어넘는 의지, 이것이 바로 가수 오기택이다. 가수로써 벽에 부딪쳤을 때 일본으로 진출했고, 더 이상 가수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땐 보란 듯이 골프선수로 전향했던 불굴의 사나이.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당시 무대에서의 소감을 직접 들어보았다.

“사실 노래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했어요. 춥고 온몸과 근육이 굳어서 마이크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만큼 힘이 없었죠. 그러나 고향 분들을 앞에 모셔 놓고 노래를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죽을힘을 다해서 불렀죠. 이십년 전 사고 난 추자도의 무인도, 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에 매달렸던 상황을 떠올리며 죽기를 각오하고 불렀습니다.” 오기택씨의 소회다.

바로 그 사고가 난 추자도의 염섬에서 열두 시간을 꼬박 매달려 죽음 앞에서도 살아난 그. 허리끈을 풀어 소나무와 연결해 손목에 감고 발밑에는 낭떠러지와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던 바다, 그 엄청난 공포감으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시간들... 혹여 잠에라도 빠져들면 그대로 바다로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이 전부여서 졸음을 쫒기 위해 밤새 소리쳐 불렀던 노래들...

그가 말했다. “이십년 전 사고 난 그곳을 반드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곳엔 아직도 내 허리띠와 농구화 끈이 소나무에 걸려 있을 겁니다.”

눈물과 감동의 무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제12회 오기택 전국가요제’의 열기는 앙코르곡 ‘고향무정’으로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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