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3.31 화 11:34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컬처·라이프
     
혼을 꽃피운 여주군 ‘제3대 도예명장’
도예가는 평소 삶에 진실과 정성이 깃들어야
2009년 08월 05일 (수) 19:40:06 김형규 기자 khk@

예로부터 경기도 여주는 도자기의 고장으로 일컬어졌다. 여기 여주군 선정 제3대 도예명장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은 중견 도예가 단아 박광천 명장이 있다. 거의 40년에 걸쳐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고 있는 박 명장은 그의 아들 박수동씨까지 그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어 여주군에서는 ‘장인부자’로 통하고 있다.
   
▲ 거의 40년에 걸쳐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고 있는 박 명장은 그의 아들 박수동씨까지 그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어 여주군에서는 ‘장인부자’로 통하고 있다.

지난 1975년 인천 소재 고암도예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기초적인 도예기법을 익히기 시작했던 박광천 명장은 1979년 말 고향인 여주로 옮겨 해동도예에서 화공으로 10여 년간 활동했다. 1989년 개인 요장을 마련해 이듬해 독립한 그는 이후 계속 여주에 머물며 ‘도자기의 고장 여주’의 네임밸류를 더욱 드높이는 데 일조해 왔다. 특히 박 명장은 그동안 여주도자기 협동조합에서 8년간 이사직을 맡아 활동한 것을 비롯해 지역 내 도자기 예술 발전을 위해 기여한 것은 물론 조합차원에서 운영해 온 ‘도공제’ 행사를 20여 년 동안이나 치르는 데 앞장서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능을 보였던 어린 시절,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자기에 일생을 바치다

뛰어난 그림솜씨를 도자기에 입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박광천 명장은 어렸을 적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내의 불조심 포스터와 환경미화 그림 등을 도맡는 등 그림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올 친구들이 없었다고. 아버지는 “환쟁이는 장차 밥을 빌어먹기 일쑤다”면서 심한 반대를 하였으나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박 명장이 장차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오직 그림만이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 될 것 같았고 그림 그리는 것이 그렇게 좋았기에 아버지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어린 시절 서울로 무작정 가출하기에 이른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그는 정처 없이 떠돌았고 여기저기서 밥을 얻어먹는 어려운 가출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는 동양화학원을 운영하는 한 은인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 학원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공부를 병행했다. 일찍부터 매ㆍ란ㆍ국ㆍ죽과 사군자 기법을 이곳에서 익힐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고향 후배의 소개로 인천에 있는 어느 도자기 요장에서 화공으로 5년 가까이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지만 철이 들면서 아버지 생각이 자꾸 떠올라 너무나 죄송스러웠다”고 말하는 박 명장은 자녀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했던 아버지였기에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 나서는 아버지의 올곧고 떳떳했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후 여주로 내려와 지금까지 40여 년간의 경력을 쌓은 박 명장은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부인 윤영애 여사의 내조가 컸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장남 박수동씨도 여주대 전통도예과를 졸업해 현재 자신의 모든 기법을 전수받아 대를 잇는 도자기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려 하고 있으며 차남 박수강씨 역시 반듯하게 자라 호텔경영학을 전공해 앞날이 촉망받는 인재로 자랐기에 주위에서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의장특허등록을 마친 도자기 분수대, 해외에서도 인기
“도자기의 제일 중요한 핵심 요소는 질 좋은 흙이다”고 말하는 박광천 명장은 “도자기는 흙과 물과 바람이 흙과 불의 오묘한 조화 속에 도공의 숨결 따라 혼을 불사르며 색다른 흙 맛과 함께 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진 인류 최고의 종합 예술품이다”고 이야기한다. 박 명장은 이러한 흙의 참맛과 지금껏 나름대로 정립한 자신만의 작품스타일을 타 도예가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고집을 작품 세계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백자 작품의 경우 단아하고 담백한 맛과 멋을 창출해야 하기에 작가의 진실성과 정성이 깃들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작품이 창출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작품관에 있어서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창출한 ‘도자기 분수대’ 작품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일명 ‘분수대 도예가’라는 애칭도 얻었고 이를 통해 박 명장은 도자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도 열정을 쏟고 있다. 현재 도가지 분수대 작품은 10여 년 전 의장특허등록을 마쳤을 정도로 단순한 관상용의 차원을 떠나 일반 가정의 거실에서 실내가습기 역할도 겸하고 있어 국내 도자기 애호가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선호하고 있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는 국내 최초로 겨울철에는 적당한 습도를 자동적으로 유지해주는 장치를 부착해 그야말로 도자기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도자기 분수대 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통해 박 명장은 제12회 신미술대전 대상, 제13회 한국예술대전 종합대상, 1996년 한국예술문화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뉴질랜드의회 초대전, 한국우수작가 초대전에 초청됐으며 폴란드 대사와 주한 미8군 부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기도 했다. 또한 미국 시카고에 전원도예 전시장을 설립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제4기 서예최고위과정을 수료하고 있다.

도자기의 고장 여주군에서 제3대 도예명장으로 선정된 것에 대해 ‘매우 영예로운 일’이라 생각하는 박광천 명장은 앞으로 이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훌륭한 작품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후진양성에도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하고 있다. 아들 박수동씨까지 대를 잇는 모습에서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가 오랜 세월 후 후손들에게도 매우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NM

 

김형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