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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2018년 11월 07일 (수) 16:19:03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투(me too)운동’은 올해도 큰 폭풍으로 확산되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인간의 성생활 또는 성적 취향이 사회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성별에 따른 사회적 지위나 성 역할의 조건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결혼생활과 성생활의 패턴도 달라지는 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흐름을 보자. 한국 사회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것은 지난 얘기가 되었다. 여성의 지위와 권리의식은 예전과 다르게 높아졌고 대다수 가정에서 여성들은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간통죄와 호주제 폐지, 유행처럼 확산된 이혼, 섹스리스(sexless)의 증가, 혼인연령의 고령화에 이은 비혼(非婚) 풍조와 출산율 저하, 표면으로 떠오른 동성애 문화 등 이슈들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파노라마처럼 촘촘히,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급격한 변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비혼이거나 이혼이거나 혹은 별거거나 ‘졸혼’ 등으로 사실상 혼자가 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뜻하지 않은 독거인구(1인가구)가 확산되는 것도 뉴밀레니엄 들어서의 뚜렷한 현상이다. 새로운 현상들은 기존의 가치관과 사이에 필연적으로 갈등과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것은 제지되거나 되돌려지지 않는다.
이런 말단의 현상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거론하며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것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풍습은 더 새로운 국면으로 변해 가버린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난 후 인간의 성 역할과 성생활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를 내다보는 일일 것이다. 

20세기말 까지도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고 그 혼인의 서약을 평생 유지할 정절의 의무를 지닌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전통적 혼인제도의 가치는 신성했다. 그러나 짧고 빠른 격변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명제는 더 이상 신성시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성적 자유나 혼외정사 같은 것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있던 일이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미래의 성은 기본 컨셉부터가 다를 거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예견이다. 그러니까 성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즐기느냐 하는 상상은 진정한 미래의 상상이 아니다. 현재 나타나는 현상만으로도 섹스에 거의 관심이 없는 섹스리스, 무성애(無性愛 asexual: 반무성애를 포괄하여) 등은 이미 보편에 가까운 현상인데, 앞으로는 인간의 성생활 자체가 시들해져 결국 아예 관심 밖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성의 개방으로 자유분방해질 것이라는 관점도 있지만(사실 그것은 대다수 서구사회에서 20세기에 이미 지나간 풍조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성적 접촉에 관심을 잃게 될 거라는 예측이다. 요즘의 비혼자들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섹스는 즐긴다’는 정도의 형식적 비혼이 아니라 실제로도 섹스에 별 관심이 없는 ‘무성애’가 적지 않다. 굳이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는(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느끼는) 일명 ‘논-바이너리(non-binary)’도 있다. 논-바이너리란 말 속에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 이분법으로 나누던 전통개념에 대한 반론이 내포되어 있다.

파트너의 기분을 헤아리거나 인격적 보상을 해야 하는 복잡함에서 벗어나 자기 맘대로 되는 섹스인형과 즐기거나 보조 영상장치 등을 이용한 가상섹스(로봇섹스를 포함한 digi-sexuality)도 한동안은 더 유행할 테지만, 그조차도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전통적인 섹스의 주 기능을 종족 유지와 쾌락이라고 보았을 때, 과학기술의 발달은 섹스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이미 제공하기 시작했다.
헐리우드의 과학공상 영화들이 ‘선진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란 설정으로 그려내고 있는 ‘미래인’들은 20세기 지구인이 그토록 열광했던 로맨스를 거의 즐기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지 오래다. 그럴법하다.  
1988년에 나온 헐리우드 코믹영화 ‘새 엄마는 외계인(My Stepmother Is An Alien)’에는 지구문명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외계인 셀레스터(킴 베이싱어)가 여성의 몸을 입고 지구를 체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구인 남자와 만나 섹스와 가족이란 ‘낯선 것’을 경험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져 고향별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현대인이 현대 도시생활의 삭막함 가운데서 옛날을 그리워하듯, 삭막한 기술문명에 길들여질 미래인들에게 20세기 지구인들이 향유한 성생활은 역시 그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 이은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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