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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한글부터 광화문 동상까지…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2018년 10월 07일 (일) 02:35:39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백성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세종대왕의 즉위교서 중 한 구절이다. 2018년 9월 19일은 세종대왕이 임금으로 즉위한지 600돌이 되는 날이다. 세종대왕은 1418년 음력 8월 10일 스물두 살에 왕위에 올랐다. 32년 재위 기간 한글을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정 전반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백성을 두루 살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룬 성군이었다.

신세영 기자 syshin@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다. 그러나 양녕대군이 개와 매(鷹)에 관계된 사건을 비롯해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련의 행동과 사건들로 인해 태종의 선위에 대한 마음이 동요됐다. 태종은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태종의 마음이 이미 세자 양녕대군에서 떠난 것을 알게 된 신료(臣僚)들은 그를 폐위할 것을 청하는 소(疏)를 올려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 이도(李? 세종대왕의 본명)를 왕세자로 삼기에 이르렀다. 세종의 즉위식은 선왕인 태종이 스스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행해진 행사였기 때문에 최대의 축제로 거행됐다. 실록의 기록은 “종실과 문무백관이 조복으로 경복궁 뜰에서 반열과 서차대로 늘어섰다. 임금이 원유관에 강사포로 근정전에 나오니, 여러 신하들이 전(箋)을 올려 하례를 올리고, 성균관 학생과 회회노인(回回老人·아랍인)과 승도(僧徒)도 모두 참여했다”며 당시의 즉위식을 전하고 있다. 세종이 반포한 즉위 교서에는 “태조와 태종과 같은 선왕의 업적을 잘 계승해서 나라의 창고가 넉넉하고 가득하며, 해구(海寇)가 와서 복종하고, 문치(文治)는 융성하고 무위(武威)는 떨치게 되는 나라를 잘 만들어 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종대왕 즉위식으로 살펴본 조선 국왕 즉위식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소장 류근식)는 9월 4일부터 11월 4일까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국왕의 즉위식’ 기획전을 개최한다.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작한 ‘세종대왕 즉위식’ 재현 영상자료, 조선국왕 즉위 형태에 대한 설명자료, 조선국왕의 즉위식에 사용된 최고의 예복인 구장복과 면류관, 일월오봉도, 세종실록 등이 출품됐다. 특히, 즉위식에서 임금이 착용했던 조선 시대 최고의 예복인 구장복과 면류관이 눈길을 끈다. 『세종실록』과 「오례의」에서 규정한 이 예복은 면복이라고 부르며 면류관과 구장복 등으로 구성된다. 왕이 즉위할 때,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낼 때, 왕비를 맞이하는 등 중요한 행사에 임금이 착용한 것이다. 면류관은 면판(冕版)과 면판에 늘어뜨린 류(旒, 구슬)를 합쳐 부르는 말로, 왕이 예식 때 쓰는 모자다. 앞뒤로 늘어뜨린 류는 왕의 시야를 가리는데 이는 왕이 악(惡)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유학자들의 해석이 있다. 구장복은 청색 상의에 다섯 문양(용, 산, 불, 꿩, 호랑이?원숭이가 새겨진 제기)을, 홍색 하의에 네 가지 문양(풀, 쌀, 도끼, 불)을 수놓아 9가지 문양을 표현한 옷이다. 이 문양들은 모두 왕이 갖춰야 할 덕목을 표현한 것으로, 이를 통하여 조선 시대 유교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즉위형태는 왕이 생전에 왕권을 물려주는 수선(受禪), 선왕 사후에 왕권을 계승하는 사위(嗣位), 선왕을 몰아내고 추대로 왕위에 오르는 반정(反正)이 있으며, 세종대왕은 선왕(先王) 태종의 수선을 받아 즉위했다. 세종대왕은 즉위한 이후 미흡했던 국가의례를 정비하고 즉위 절차 등을 규정했으며, 후대 왕들은 이 규정에 따라 즉위식을 거행하게 됐다. 조선 시대 국왕의 즉위식은 절차가 복잡하고 용어가 생소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전시를 통해 세종대왕이 큰 틀을 마련한 조선 국왕들의 즉위식을 국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글 독창성·과학성 세계 최고
세종대왕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바로 한글창제다. 누구나 손쉽게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한 한글은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문자다. “한글은 소리와 글이 체계적인 연계성을 지닌 과학적인 문자로서 한 나라를 뛰어넘어 세계의 선물이다.”(미국의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영국의 문화학자 존 맨).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면서도 로마문자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자질문자다.”(우메다 히로유키, 전 도쿄대 교수) 이처럼 한글은 전 세계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1397~1450) 탄신일인 5월 15일을 세계문맹퇴치일로 정하고, 문맹을 없애는 데 힘쓴 인물과 단체에 주는 상의 이름도 ‘세종대왕 문해(文解)상’이라고 붙였다. 2007년에는 세계 9번째의 국제 공개어로 채택되기도 했다. 한글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독창성과 과학성 때문이다. 소설 <대지>를 쓴 미국 작가 펄벅(1892~1973)은 일찍이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살아있는 갈대>에서 “한글은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문자 체계지만 자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음성도 표기할 수 있다”고 극찬했다. 미국 시카고대 맥콜리 교수는 1966년 언어학회지 ‘랭귀지’에서 “한글은 혀·성대 등 목소리를 내는 데 관여하는 발음 기관을 정밀 분석해 만들어진 알파벳이어서 소리의 음성적 특징을 시각화하는 데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독일인 최초의 한국학 박사인 함부르크대 사세 교수는 “서양이 20세기에 비로소 완성한 음운 이론을 세종대왕은 5세기나 앞서 체계화했다”며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평가했다.

한글에 대한 상식과 오해, ‘한글’과 ‘국어’는 같은 말?
국어기본법 제3조의 개념 정의를 보면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뜻하며 ‘한글’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 오른쪽의 만화는 한글과 국어에 대해 혼동하는 일상적인 사례이다. 역사적으로 문자를 만들었던 창제자는 개방형 웹사전인 위키피디아(List of inventors of writing system)에 등록된 수만으로도 현재 100명이 넘는다. 현재 타이어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태국의 람캄행 왕을 비롯해 승려, 제왕, 학자 등 그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창제 시점이 명확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한글만이 창제자와 창제시점이 기록된 유일문자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유네스코는 1997년 10월 1일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미술관 소장)’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했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지만 이를 한글의 우수성과 바로 연결시키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모든 문자는 그 문화의 숨결을 담은 그릇인 것이기에 문자 간에 우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다만 세계의 문맹퇴치에 공이 인정되는 단체나 개인에게 유네스코가 수여하는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라는 점에서 한글과 세종대왕의 문명사적 업적이 인정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한글날인 10월 9일은 세종 28년인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창제일을 기념해 1월 15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5-10년 주기로 기념행사를 연다. 한글날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과 함께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한글날의 유래는 조선어연구회가 1926년 11월4일 ‘가갸날’을 제정한 뒤 1928년 명칭을 ‘한글날’로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이어 한글 반포 500돌인 1946년에 한글날을 10월 9일로 바꾸고 기념 공휴일로 지정해오다가 1991년 정부의 공휴일 축소에 의해 공휴일에서는 제외됐다. 다만, 2005년부터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국경일로는 지정됐다.

한글을 꽃 피우다…국립한글박물관
2014년 10월 9일 개관한 최초의 한글박물관인 국립한글박물관은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부지 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됐다. 연면적 1만 1322㎡,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문화행사, 전시, 교육 등이 가능한 잔디마당 등도 갖추고 있다. 건물은 한글 모음 글자를 만든 배경인 천·지·인을 형상화했다. 한글의 시작과 흐름, 세종대왕의 창제 이후 근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조성됐다. 한글박물관은 2010년 3월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이듬해 5월 16일 착공했고, 2013년 5월 박물관 개관위원회가 발족했다. 2014년 2월에는 직제를 확보했으며, 개관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326억 원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의 개관은 국가적 차원에서 한글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해 미래 세대에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층에는 한글누리(도서관), 2층에는 상설전시실, 3층에는 기획전시실, 어린이를 위한 한글놀이터, 외국인을 위한 한글배움터 등이 마련됐다. 세종대왕이 뿌리내린 한글이라는 씨앗이 어떻게 현대의 한글문화로 발전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은 한글 창제 당시부터 최근까지의 한글 관련 유물들을 보고 영상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다양한 한글 자료와 영상, 체험 자료를 제공해 한글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석보’ 뿐만 아니라 생활 속 한글 사용을 살펴볼 수 있는 한글 편지, 한글 악보, 한글이 새겨진 도자기, 소반 같은 생활용품까지 700여 점이 전시됐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세종대왕, 한글문화 시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세종시대의 한글문화와 전통 유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정연두, 이지원 등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한글의 문자적, 문화적 가치를 형상화한 작품들은 한글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역점을 뒀다. 어린이와 외국인을 위한 배움과 체험의 공간인 체험전시실은 ‘한글 놀이터’, ‘한글 배움터’로 나뉘어 구성됐다. 한글놀이터는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며 한글을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소리를 닮은 자음, 우주를 닮은 모음의 형상이 놀이기구로 구현돼 미끄럼틀을 타고 공을 던지며 제자원리를 익힐 수 있게 했다. 하늘(·)과 땅(ㅡ), 그리고 사람(ㅣ)을 뜻하는 천지인이 서로 만나 한글의 다양한 모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한글박물관 전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무료다. 단체관람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국립한글박물관이 지정한 날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누가 만들었을까
쇳물과 형틀을 만들고 주조와 조립을 하고 현재 완성된 모습에 이르기까지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이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쳤을까. 38년간 주물 장인으로 살아온 박상규 대표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했다. 공간 미술의 박상규 대표는 그 공로와 기술을 인정받아 2017년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이달의 기능한국인’이란 10년 이상 산업체 현장실무 숙련기술 경력이 있는 자로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우수 숙련기술자를 대상으로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매월 1명씩 선정한다. 숙련기술자에 대한 국민적 인식적환, 숙련기술자 우대 풍토 조성, 자긍심 고취 등에 기여하고자 만든 제도다. 세종대왕 동상은 2009년 10월 9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쪽으로 21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은 6.2미터, 폭 4.3미터에 무게 20톤 규모로 높이 4.2미터 기단 위에 세워졌다. 동상 주변에는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 세종대왕의 업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각종 조형물이 설치됐다. 동상은 서울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조각가 김영원 홍익대 미대 교수와 세종대왕동상위원회, 서울시가 함께 만들었다. 온화하면서 위엄 있는 40대 후반의 세종대왕 모습이다. 왼손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서 오른손은 가볍게 들어 올린 형태의 좌상으로, 한자를 배우기 어려웠던 백성을 위해 익히기 쉬운 한글을 만든 대왕의 어진 모습을 형상화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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