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모태이며 영원한 보금자리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 생명의 근원이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소중한 터전이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예술을 한다는 것은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표현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사전적인 한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예술가는 표현을 과정으로 삼으며 예술가와 감상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갑고 강한 스틸의 칼로 엮임의 미학 창조

▲ 김희재 화백

“사람들은 시들어 가는 꽃을 절망으로 느끼지만 오히려 시들어 가는 꽃은 종자인 씨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 시든다는 것이 꼭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게 더 큰 환희고, 더 큰 희망이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김희재 화백은 시든 꽃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이에 대해 김희재 화백은 “시든 꽃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들어 가는 꽃에서 슬픔이나 절망을 느끼지만 시든 꽃은 씨를 새로 만드는,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과 다름없기 때문에 인인간의 삶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스치는 바람소리까지 들려올 것 같은 섬세함과 깊이가 있는 김 화백의 작품에는 시가, 그리고 음악의 선율이 흐르며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갈색의 서정과 우수, 사색이 녹아든 캔버스 속 들꽃은 유려하고 단아하며 존재감이 명료하다. 특히 그가 개발한 붓칼화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해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자적인 화법이다. 차갑고 강한 스틸의 칼이 현란한 꽃밭을 일구어 내며 아름다운 엮임의 미학을 창조해낸다.

▲ 기억 속으로(into the memory)

작은 꽃들의 미세함, 꽃그늘의 설레는 마른소리도 놓치지 않고 표출해내는 붓칼 화법은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을 두고 수필가 피천득은 “당신이 한국의 최고의 화가”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혜니도 “김희재의 화폭에는 해질녘 시간대, 광활하고 적막한 공간, 산허리와 암반을 감싸고 휘돌아 내려오는 운무... 그 아래 아름다운 장미꽃이 도란도란 추억을 나누고 있다. 릴케의 시에서 장미는 ‘순수한 모순’ 곧 사랑의 본질을 의미한다.사랑은 쌓이고 쌓여 산이 된다”면서 “산은 사랑하는 이의 거주처다. 산 아래의 장미는 산에 오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차마 장미는 켜켜이 쌓여져 간 사랑을 암반으로 꼭꼭 누르고 또 눌러 놓는다. 그래도 시리고 서러워 절로 흐르는 눈물은 암반을 비집고 나온다. 그래서 신비로운 운무가 되어 산허리를 휘감고 떠돈다. 사랑의 넋이 떠돈다. 누르고 덮어서 심연 밑바닥에 꽁꽁 감춰놓은 사랑, 이것이야말로 영겁회귀의 사랑이리라 아 벅찬 환희의 비원..”이라고 평론하기도 했다. 또한 최태만 미술평론가는 “찬란한 슬픔이라고 할까, 화사하게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절멸(絶滅)을 예감케 하는 어두운 색조는 정물화에서 느낄 수 있는 무상함에 대한 작가의 체질적 자기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이미 시들었거나 또는 언젠가 시들어갈 꽃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반성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섬세하면서 우아한 표현 속에 녹아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꽃’그림 하나로 독자적인 작품세계 구축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Ecole des Beaux-Arts (2003-2004 COIRS ADULTES POUR) 수학한 김희재 화백은 미도파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 동경의 일본문화원, 프랑스 파리 그랑 펠레 한국작가 초대전, 인도 뉴델리 인도국립미술관 초대전, 뉴욕 아트엑스포 초대전, 마이애미 라이얼스 갤러리 워크숍 초대전, 부산 비엔날레 등 국내외 유수의 그룹전 및 초대전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해왔다. 학연, 지연, 권력이 작용하는 한국 화단에서 오직 자신의 ‘꽃’ 그림 하나로 승부해온 김희재 화백. 관람객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난 2007년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40주년을 맞이해 ‘김희재 갤러리’ 개관했다. 김희재 화백은 “그림도 계속 봐야만 알 수 있다”면서 “그림을 모르는 것은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공감을 하려면 많이 보고 안목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은 이름 없는 목숨들이 내뿜는 생의 찬가가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어우러지는 축복의 화폭을 선보이고 있는 김희재 화백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NM

▲ 기억 속으로(into the mem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