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승호 탄생 100주년
김승호(1918~1968)는 영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20세기 최고 배우’로 꼽히는 연기자다. “한 세기를 장식하고도 남을 독보적인 배우”,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배우” 등 쏟아지는 찬사들도 그가 왜 최고 배우인가를 설명해준다. 그는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인간미를 지닌 월급쟁이, 힘겨운 생활에 쫓기는 인력거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지게꾼 등의 연기를 통해 주로 서민적 체취와 삶의 애환이 물씬 풍기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아버지상을 그려냈다. 

그는 영화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연기를 향한 욕심이 많아 단역을 맡더라도 미리 촬영장에 나가 현장을 둘러보고 자신이 등장해야 할 자리와 퇴장해야 할 자리를 머릿 속에 그려넣었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캐스팅이 안 되더라도 촬영장을 돌아다니다 단역으로라도 출연해야 직성이 풀리는 영락없는 배우였다. 절름발이 역할을 맡으면 실제 똑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따라다니며 걸음걸이를 익히고, 촬영장에서는 자신이 맡은 배역에 철저히 몰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았다.
당시는 동시녹음이 아니기 때문에 대사를 다 외우지 않고 옆에서 스태프가 읽어주는 대로 따라하면 되는데도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야 감정이 끊기지 않고 살아난다”며 모든 대사를 외워서 했다. 촬영이 끝난 뒤 성우들이 따로 더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도 본인이 직접 더빙했다.
김승호는 강원도 철원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네 살 되던 해에 서울 청진동으로 이사와 죽는 날까지 청진동에서 살았다. 보성고보 시절 연극에 빠져 1939년 동양극장의 연구생으로 들어가, 동양극장의 전속 극단인 ‘청춘좌’에 소속되어 그해 이명우가 감독을 맡고 청춘좌 소속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극단 자유극장의 창립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연기력을 다지고 극단 ‘대지’를 창단했다.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밤의 태양’(1948)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등 영화로도 영역을 넓혔으나 그래도 그의 주무대는 연극이었지 영화는 아니었다.
김승호가 영화배우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원작으로 한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1957년 2월 11일에 개봉되면서였다. 각종 자료와 인터넷에 기록되어 있는 개봉일 1956년 11월 27일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 김승호

김승호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맹진사 역을 맡아 사실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성격배우로서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시집가는 날’은 1957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수상, 한국 영화 사상 첫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김승호는 이 영화를 통해 일약 톱스타 대열에 오르고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해를 거듭하고 출연 편수가 늘어날수록 김승호의 연기력은 원숙해지고 인기는 올라갔다. 신상옥이 감독하고 신성일이 데뷔한 ‘로맨스 빠빠’(1960.1)에서도 특유의 사실적인 연기력을 선보여 1960년 4월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이후 그가 자주 선보이게 되는 소시민 아버지 캐릭터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승호는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1960.10 개봉)으로도 1961년 3월 제8회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또다시 수상하며 ‘한국의 아버지’에서 ‘아시아의 아버지’로 발돋움했다. 당시 아시아 영화제의 명성과 권위는 지금과 달리 대단했다. 그런 영화제에서 거푸 주연상을 받았다는 것은 김승호 개인적 명예의 차원을 넘어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미가 크다. 이 영화에서 김승호가 그려낸 아버지는 이듬해 개봉되는 영화 ‘마부’의 아버지로 이어졌다.

서민적 체취와 삶의 애환이 물씬 풍기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아버지상 그려내

1961년 2월 15일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된 강대진 감독의 ‘마부’는 영화배우 김승호의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난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고시 공부 하는 큰아들, 싸움질로만 소일하는 작은아들, 벙어리 딸 이렇게 3남매를 고달프게 키우는 홀아비 마부의 삶을 통해 김승호는 서민의 애환과 전후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흔들리는 그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부’는 1961년 7월 제1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특별 은곰상’을 수상했다. 김승호는 1963년 제10회 아시아 영화제에서도 ‘로맨스 그레이’로 3번째 남우주연상을 차지해 아시아 최고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이처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김승호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후 전쟁·액션영화가 유행하고, ‘맨발의 청춘’(1964)으로 점화된 신성일·엄앵란 콤비의 청춘영화가 붐을 일으키면서 김승호가 그동안 활약한 홈드라마가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승호는 급변하는 영화계의 흐름에 적응해보려 했으나 액션영화의 개성파로 자리잡은 장동휘나 허장강을 대신할 수 없었다. 청춘의 사랑과 고뇌를 소재로 한 청춘·멜로영화에서도 단지 아버지일 뿐 이전에 보인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순탄하고 화려하던 김승호의 영화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선 1967년이었다. 자신이 처음 제작하고 정창화가 감독한 ‘돌무지’는 김승호를 비롯 신성일·남정임·윤정희·허장강·남궁원 등 기라성 같은 호화판 캐스팅에, 제작비도 다른 영화보다 훨씬 많이 투입한 덕분에 그런대로 수지를 맞췄다. 단성사에서 1967년 9월 9일 개봉된 ‘돌무지’는 단성사에서만 9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그해 12월 대종상의 최우수 반공영화 작품상에 뽑혔다.
자신감이 생긴 김승호는 빚을 져가며 과다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육체의 길’, ‘영원한 모정’, ‘딸’, ‘7인의 밀사’ 등을 연이어 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흥행 부진으로 나타났다.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1968년 10월 15일, 2200만 원의 부도수표 남발 혐의로 구속되고 이 때문에 30년 동안 살아온 서울 청진동 집을 헐값에 팔아야 했다. 보름 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30여 년간 130여 편의 연극,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당대 최고의 배우 김승호는 그렇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1968년 12월 1일 세수를 하다 뇌일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 택시 속에서 아내에게 “아아 억울하다. 꼭 살아야겠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12월 5일의 장례는 유례가 없는 영화·연극인 합동장으로 치러졌다. 개성파 배우 김희라가 그의 아들이다. 7월 13일이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위대한 개츠비’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국내 세 출판사가 ‘위대한 개츠비’를 쓴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산문·편지를 각각 동시 출간했다. 마음산책·북스피어·은행나무는 판형을 통일해 각 권을 나란히 세우면 알파카, 고양이, 여우를 그린 책등의 일러스트가 퍼즐처럼 맞춰지게 디자인했다.… 세 출판사가 합동 이벤트를 벌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지난해 4월엔 제목을 가리고 책을 판매하는 ‘개봉열독 시리즈’를 함께 진행했다. 작년 이벤트는 입소문이 나면서 평소 책을 사지 않던 사람들 다수가 지갑을 열었다. 이에 고무된 세 출판사 편집자가 지난봄 식사 자리에서 ‘시즌 2’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8년 6월 20일>

1920년대의 미국은 1차대전의 전쟁 특수에 따른 경제 호황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온 나라가 흥청거렸다. 금주법이 시행되었지만 밀주가 넘쳐나고 흥겨운 재즈의 선율이 흘렀으며 도시는 밤마다 파티의 화려한 불빛들로 넘쳐났다. 그 시대를 가리켜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재즈 시대’라 부르며 자신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고자 했다.
하지만 ‘재즈 시대’는 1차대전의 참혹한 경험 탓에 삶에 대한 환멸과 정신적 공허감이 공존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된 시대이기도 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 표류하는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을 대변하며 현대 미국 문학의 지평을 연 대표 작가가 피츠제럴드다.
피츠제럴드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신흥 계층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집안은 늘 쪼들려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의 야망을 부채질하며 어떻게든 아들을 상류사회로 밀어넣으려 했다. 피츠제럴드는 우월감을 가르쳐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딜 가나 잘난 척했다. 이 때문에 또래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으나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아 사춘기 시절부터 연애에 통달했다.

▲ 스콧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명문 세인트폴 아카데미를 거쳐 동부의 뉴먼 스쿨을 다니면서 교내 잡지에 단편소설, 시, 희곡 등을 발표하고 연극과 보드빌쇼를 즐겨 보았다. 1913년 9월 프린스턴대에 진학해서도 공부는 딴전이었고 문학과 연극 활동에 열심이었다. 1914년 부유한 은행가 딸과 사귀었으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2년 만에 헤어지는 아픈 경험을 겪고서는 돈과 성공에 집착했다.
1917년 10월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미국에서 1차대전 참전을 기다리며 소설을 쓰기 시작해 3개월 만인 1918년 2월 첫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낭만적 에고이스트’라는 제목을 붙여 출판사에 보냈지만 연거푸 퇴짜를 맞았다. 그러던 중 1918년 7월 한 무도회에서 자신보다 3살 어린 18살의 젤다 세이어를 만났다. 세이어는 대법관의 딸이자 상원의원과 주지사의 손녀라는 화려한 배경에, 미모까지 뛰어났다.
두 사람은 신분의 격차가 컸으나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서로를 알아보고 금방 사랑에 빠졌다. 피츠제럴드는 유럽에 파견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1919년 2월 광고회사에 취직하고 4월 세이어와 약혼했다. 그러나 세이어는 피츠제럴드의 월급이 변변치 않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2개월만에 약혼을 파기했다.
낙심한 피츠제럴드는 ‘낭만적 에고이스트’를 개작해 ‘낙원의 이쪽’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사에 보냈다. 1920년 3월 출판된 ‘낙원의 이쪽’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아 6개월 만에 4만 부나 팔려 나갔다. 단번에 미국 문단의 총아가 된 덕분에 피츠제럴드는 세이어와 다시 만나 1920년 4월에 결혼에 성공했다.
부부는 벌어들인 돈으로 호텔을 전전하고 밤마다 파티에 참석하는 등 호화 생활에 빠졌다.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도 호화 주택을 빌려 파티와 술에 파묻혀 지내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이른바 ‘재즈 시대’에 두 사람은 재능과 미모, 스캔들을 겸비한 커플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피츠제럴드의 음주벽과 세이어의 무절제한 소비로 인해 늘 빚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면서도 첫 단편소설집 ‘말괄량이 아가씨들과 철학자들’(1920.9), 두 번째 장편소설 ‘저주받은 아름다운 사람들’(1922.3), 두 번째 단편집 ‘재즈 시대의 이야기들’(1922.9)을 출간해 또다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피츠제럴드는 1924년 4월 아내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세 번째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했다. 그 사이 세이어가 프랑스 해군 조종사와 벌인 애정 행각으로 고통스러웠으나 결국 원고를 완성해 1925년 4월 10일 뉴욕에서 출판했다. 판매는 저조했으나 평론가들로부터는 “문학의 천재”라는 찬사를 들으며 오늘날의 할리우드 스타 못지않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책 출간 후 다시 파리로 건너가 여류작가 거트루드 스타인과 어울리고 1925년 5월 처음 만난 신출내기 소설가 헤밍웨이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파리의 공기를 만끽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대변하며 현대 미국 문학의 지평 열어

‘위대한 개츠비’는 1차대전 후 ‘아메리칸 드림’의 좌절로 인한 미국의 환멸은 물론 부와 지위에 집착하는 허영에 찬 사회의 도덕적 실패를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평을 들었으나 피츠제럴드 생존 시에는 호평과 명성에 비해 판매 실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위대한 소설로 재평가받으며 베스트·스테디셀러가 되었다. 21세기를 앞두고 뉴욕의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20세기에 영어로 쓰인 위대한 소설 100권’을 선정할 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피츠제럴드는 1934년 4월 네 번째 장편소설 ‘밤은 부드러워’를 출간하는 등 장편소설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단편소설을 160여 편이나 발표할 정도로 단편소설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가 비교적 짧은 생애에 걸쳐 이렇게 많은 단편소설을 집필한 이유는 단편소설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세이어의 낭비벽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돈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의 재능으로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레드 북’, ‘에스콰이어’ 등 대중잡지에 단편소설을 싣는 것이었다. 단편들은 4권의 단편집으로 발표되었다. 일부 평론가가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을 ‘돈벌이를 위한 작품’으로 치부하고 피츠제럴드도 자신의 단편소설을 ‘쓰레기’라고 비하하는 등 대부분의 단편은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일부 단편소설은 세계 문학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
장단편을 막론하고 피츠제럴드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물질적 성공과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좌절과 절망에서 비롯하는 삶에 대한 우수와 비애, 비극적 상실감이 짙게 배어 있다. 한 비평가는 피츠제럴드의 주인공에 관한 이미지를 가난한 소년이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쇼윈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빗대기도 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 출간 후 더 뛰어난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시달렸다. 그러나 낭비벽이 심하고 술과 파티를 즐겼기 때문에 점점 늘어나는 술을 이기지 못하고 온갖 기행을 저질러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영혼의 쌍둥이’ 세이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세이어는 1930년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다가 급기야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정신병원의 입퇴원을 반복했다. 피츠제럴드도 1935년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 증세를 보이다가 급기야 1939년 단주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1940년 장편소설 ‘마지막 거물’을 집필하다가 12월 21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세이어는 1948년 병원 화재로 사망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