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존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 이 본능이 상식의 지평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여 황홀감에 떨게 하는 예술의 본질과 직결되어 있다.

장정미 기자 haiyap@

예술은 표현 양식이다. 양식을 바꾸어 특수한 것을 찾고, 기존의 언어를 해체하여 낯설음 속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탐색해 간다. 형식을 바꾸면 내용도 바뀌어 지고, 내용이 바뀌면 형식 또한 바꾸어지니 형식이 내용을 구속하고 형식 또한 내용을 구속한 셈이다.

박동치는 생명력의 파장을 기록하다

▲ 손정숙 화백

“저에게 있어 그림은 생(生)이다. 삶 속에서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우당 손정숙 화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견 여류 작가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대중들에게는 ‘불꽃의 미학’으로 잘 알려진 손 화백은 우주의 자연법칙과 같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주제로 에너지와 생명력 그리고 무의식을 일깨우는 자아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우당 손정숙 화백은 “불꽃의 미학은 하나의 상징어인 동시에 저의 예술혼을 의미하는 비밀스러운 언어이기도 하다”며 “미학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니 나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의식이다. 내 삶의 의미도 내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도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 나의 창작도 사고도 여기에서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손 화백에게 있어 그림은 생명체로서의 자신의 몸, 그 몸이 담고 있는 마음을 그리는 일이자 순간순간 박동치는 생명력의 파장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 우주론 I (Of the Universe)

손 화백의 작품 속 화면은 우리들 몸의 울림, 떨림과 박동처럼 진동한다. 활동 초기 음양오행의 순환 원리에 따라 오행의 기운을 상징하는 오방색을 활용해 생명감이 약동하는 작품을 완성하며 침묵의 울림을 드러냈던 손 화백은 이제 가상, 상상, 관념의 세계와 현실 세계, 동양과 서양의 범주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는 중이다. 특히 우주의 신비한 원초적 생명체의 율동력, 생명력의 순환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그는 보편적이고도 현실적인 형상에서 비현실적인 형상으로 추상표현하고 있다. “모든 중심은 나(我)이다. 나만의 내면세계에 속하는 그림을 추구한다. 어떤 문화권-동양과 서양,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순수한 나만의 작품세계를 갈구하는 것이 나의 화두다”고 밝힌 바 있는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속하는 그림을 추구하며 색채를 통한 ‘인간 감성의 회복’을 주창한다. 그의 작품 속 형상들은 모두 생명체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우주생성의 근원과 기에 연관된다. 예술혼을 전하는 양과 음의 윤회적 순환원리 등, 생성과 소멸, 질서와 파괴, 아름다움과 추함, 구조적인 것과 해체적인 것 등을 추상화한 것이다.

지속적인 전시회 통해 대중과 소통하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 후 마드리드 국립대학교에서 수학한 손정숙 화백은 지금까지 총 16회의 개인전과 한국현대회화 5인전(러시아), 살롱 줴지아 국제전(파리), 국제교류 현대작가 15인전(후쿠오카 문화관), 베트남정부 초청 현대미술초대전(하노이), 인도정부 초청 한국현대미술초대전(뉴델리미술관), 몽골정부 초청 울란바토르전(국립미술관), 2002년 한일월드컵 초대전(도쿄) 등 수많은 해외 초청전을 통해 ‘손정숙’이라는 이름을 세계 미술계에 각인시켰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손 화백에게 있어 작품활동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들이다.

▲ 비상(Flight)

자신의 그림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콜렉터를 만난 것에 대해 ‘축복’이라 표현하는 그는 “내 그림 앞에 전율할 수 있다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개인전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받는다면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속적인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은 작가들에게 있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기도 하다. 창작의 고통은 물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 경제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고통을 극복하며 정기적인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는 손 화백은 “개인전 준비를 할 때에는 마음의 활력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어 좋다”며 “개인전을 열 때마다 격려의 말, 축하의 말 한 마디에 그 사람의 인격까지 존경할 만큼 감격해버린다”고 강조했다. 개인전 준비로 정신없이 지낼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손정숙 화백. 작품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오늘도 붓을 잡고 있는 그가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지 사뭇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