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홍섭 작가는 한 마디로 소개할 수 없는 특출한 경력의 소유자다. 국권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국새(國璽)를 제작한 명장이자, 한국의 정체성 혹은 민족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국보급 문화유산을 조각한 조각가이자, 조각의 형태를 세밀하게 제작해주는 정밀주조공장 ‘예술세계’의 경영자이자, 세라믹 셸 몰드(Ceramic Shell Mold) 정밀 주조 기법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신선영 기자 ssy@

 

세라믹 셸 몰드 정밀 주조 기법

▲ 양홍섭 작가.

조각을 업으로 1974년 조각계에 입문한 양홍섭 작가는 목조각, 소조, 왁스 조각, 정밀 주조와 같은 조각의 다양한 기법을 총망라하며 동상, 흉상, 기념비적인 대형 조각까지 만들어온 조각가 중의 조각가다. 10대 중반에 조각 분야에 뛰어들어 45년간 쉴 틈 없이 달려온 그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방대한 조각 작품을 소화하며 일찍이 동계 조각가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작품성을 인정받게 됐다.

 

대표적인 활동을 꼽자면 1985년 종로 보신각종 조각에 참여하고 1995년 국보287호 백제금동대향로를 복각 조각한 것이다. 특히 백제금동대향로는 문화체육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술자문과 감리를 거쳐 원형과 같게 복각한 것으로서, 세계 각국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공사관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제작됐다. 향로 전체에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18명의 인물, 65마리 동물, 74곳의 산봉우리 등을 똑같이 조각하기 위해 도면 작업, 석고 직조, 유토 소조, 왁스 조각. 실리콘 몰드. FRP 원형 작업, 목조각, 정밀 주조 등 지금까지 연마해온 모든 조각 기법을 총동원해서 조각부터 청동 정밀 주조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이후 1998년에는 3대 국새, 2011년에는 5대 국새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3대 국새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참여한 것으로서 “IMF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최소한의 금으로 제작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세라믹 셸 몰드 정밀 주조 기법으로 18K금으로 제작됐다. 이후 4대 국새가 제작 사기로 폐기되면서 현재 사용 중인 5대 국새를 만드는 일에 다시 참여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도입된 감리 기준에 맞춰 비파괴 검사, 파괴 검사, 국새내부의 내시경 검사, 초음파탐상검사, 액체침투탐상 및 와전류탐상검사, 구조안전성검증 등을 통과하며 현존하는 국새 중 가장 우수한 품질의 국새를 완성하게 됐다.

 

이처럼 5대 국새는 양홍섭 작가와 그의 형제인 양만섭이 왁스 수정 작업부터 세공 작업 마무리까지 그들만의 노하우와 핵심기술을 완벽하게 발휘하였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금, 은, 구리, 아연, 이리듐 등으로 구성된 합금을 3대 국새와 같은 세라믹 셸 몰드 정밀 주조 기법으로 제작한 5대 국새는, 항공기 부품 수준으로 검사하는 국방기술품질원의 감리 기준을 과학적으로 통과한 것이어서 양홍섭 작가의 기술력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그의 전문 분야인 세라믹 셸 몰드 정밀 주조 기법을 독창적으로 활용한 <Breaking the Mold>도 많은 조각가들과 미술 평론가들에게 이제까지 보지 못한 메타포를 전해준 작품으로 평가 받게 됐다. 

 

▲ Breaking the Mold [Inside / Outside] | SUS410 ×100 | 120×80cm | 2017 | SUS410 | 70×45×40cm | 84kg | 2011 |

 

<Breaking the Mold>
한국조각가협회 주최의 아카이브 전에 전시한 바 있는 80년대 인체 구상 작품과 90년대 정교한 사실 작품을 해오던 양홍섭 작가가 2008년부터 10여 년간 매진하고 있는 작품 시리즈 <Breaking the Mold>는 말 그대로 세라믹 셸 몰드의 틀을 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라믹 셸 몰드에 초내열 합금인 항공기 부속품, 원자력 발전소와 선박에 쓰이는 신소재, 기계 부속품 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과 탄소강 계열의 금속, 브론즈 등을 1700~1800도의 고주파 유도로에 녹인 뒤 그 쇳물을 부어 틀을 깬 것이다.

 

워낙 많은 재료의 금속이 혼재된 쇳물이다보니 ‘액상선 온도’ 액체 상태에서 고체 상태로 응고되기 시작하는 순간의 온도 변화에 따라 그 성질에도 다양한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틀을 깼을 때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분출되어 흘러내린 일부분의 쇳물이 기존의 형태를 무너트리면서 미지의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에는 “조각에 대한 개념을 녹이고,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녹이고,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것을 녹여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자 한 직접적이고 은유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틀 안에 있는 자들은 틀 밖을 모르듯이 틀 밖에서 틀 안을 바라보고자 한 개척 정신”이 반영돼있다.

 

▲ Breaking the Mold [Inside / Outside] | SCS1 ×50 | 120×80 | 2017 | SCS1, SUS | 66×68×83cm | 191kg | 2013 |

 

양홍섭 작가는 이 주조 조각 작품을 사진 그림 작품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지난 4월에 열린 여섯 번째 개인전 <틀을 깨다 Breaking the Mold(inside/outside)> 전에서 선보였다. 합금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조직을 갖고 있는 주조 조각 작품의 미세조직을 광학현미경으로 사진 찍어서 컴퓨터로 작업한 것이다. 이것이 자기유사성을 가지고 끝없이 증식해가는 프랙탈처럼, 혹은 작가 자신이 깨고 나왔던 수많은 알 껍질처럼 순응하지 않고 닫혀있지 않고 정체되지 않는 모양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이것이 양홍섭 작가가 가진 내면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내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조 조각 작품의 미세 조직에 색채를 더한 것도 “쇳물이 녹을 때 다양한 빛과 색이 방출되듯이 나의 마음도 밝고 아름다운 색감일 거라는 믿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작가 노트에 “내가 꿈꾸는 이상세계가 곧 내 마음의 세계”라고 밝힌 것처럼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담대하게 열어가는 그의 작업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

 

▲ Breaking the Mold [Inside / Outside] | SUS410 ×500 | 120×80cm | 2017 | SUS410 | 78×67×47cm | 91kg | 2015 |

 

양홍섭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했다. 석사학위 논문 ‘세라믹 셀 몰드(Ceramic Shell Mold)주조법에 의한 조각연구-연구자의 작품을 중심으로’를 썼다. 6번의 개인전을 열고 그리스 아테네, 일본 도쿄, 이태리 밀라노, 미국 LA, 호주 시드니 등 국내외 단체전에 다수 참가했다. 제13회 서울미술대상전에서 미술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조각가협회, 서울미술협회, 성남미술협회, 성남조각가협회 회원이며 ‘예술세계’를 운영하고 있다. NM

 

▲ Breaking the Mold [Inside / Outside] | SUS420J2 ×50 | 120×80cm | 2017 | SUS420J2 | 82×40×110cm | 56kg |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