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작가의 작업 모티브는 ‘응’이다. 너무 흔해서 쉽게 내뱉어버리는 ‘응’이라는 말을 화폭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끌어들였다.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시켰다가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내부로의 슬기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신선영 기자 ssy@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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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진 작가. |
김수진 작가는 미술치료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어렸을 때 화가의 꿈이 접히면서부터 갖게 된 불만과 분노가 자신을 우울하고 느리게 만들었다”고 말할 만큼 자의식이 강했던 그가 택한 차선의 길이었다.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우울한 파동이 자신을 더 큰 나락으로 떨어트릴 것 같은 예감에 마련한 돌파구였다.
“그림을 하면서 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됐고, 미술치료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명확하지 않던 삶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본질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관계가 자유로워지고 그 이후의 삶도 능동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본질을 그대로 인정하는 시각을 가지게 되면서 긍정적인 사고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우울, 외로움, 공허함과 같은 소외된 감정에 ‘응’이라고 대처했다. 마치 바늘구멍에 실을 끼우듯 자신과 상대방과의 교류, 그리고 자신과 내면과의 교류를 시도하는 것이다.
“미술치료학에서 원 안에 자기 생각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선과 색의 배치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무의식을 깨닫게 됩니다. 이 방법을 차용해서 화폭이 제 생각을 옮기는 창이라는 가정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래서 작품 제목도 <사색의 창>이라고 짓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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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O.K, 91x91cm, acrylic on canvas, 2017. |
초기에는 수채화 물감으로 창문을 그렸다. 창문을 통해 자신이 소화한 삶의 이치들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해 있었다. 공간 너머로 시선을 충분히 돌려서 관객들을 상념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심리치료에서 그림은 자신을 아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무의식적인 그림은 자기가 거의 드러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어렵게 느낄 수 있으나 동시대인으로서 관람객들이 느끼는 공감은 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창문 작업을 진척시켜서 추상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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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O.K, 91x91cm, acrylic on canvas, 2017. |
사색의 창
김수진 작가가 그리고 있는 추상화는 무채색이거나 검붉다. 그 색채만으로도 시대에 대한 고뇌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현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지배받는 우리의 자화상”을 주제로 했다고 한만큼 우리가 흔쾌히 ‘응’이라고 대답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에 직면해있는 것이다.
“저에게 그림은 해결점을 찾는 작업입니다. 그 해결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정화해주는 것, 바로 긍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답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 ‘응’이라는 단어를 활용했습니다. ‘응’이야말로 거친 사회에서 인간성을 회복해주는 주요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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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O.K, 80.3x80.3cm, acrylic on canvas, 2017. |
작가는 이를 자음과 모음으로 나눠서 탄력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마치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듯 견지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응’에는 무심함이 없다. 진실로 화답하는 긍정의 제스처다. 작가는 이를 두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요소인 태양에 비유했다.
“0은 태양을 상징합니다. 여기에 오직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1을 더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글자인 ‘응’이 됐습니다. 이 0과 1이 겹쳐지고 분산될 때 나타나는 우연성을 기대하며 레이어를 여러 번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문자를 활용한 작업은 계속할 것입니다. 말에 대한 짜임으로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설득을 이뤄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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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O.K, 50x50cm, acrylic on canvas, 2017. |
김수진 작가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 대학원 예술치료학과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네 번의 개인전과 일곱 번의 부스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 나혜석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선정작가전에 우수작가로 선정된 초대작가다. 작품은 상원사, 미술과 비평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MBC드라마 W, SBS드라마 원티드에 협찬했다. 현재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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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O.K, 80.3x80.3cm, acrylic on canvas,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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