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은 지난 4월10일 STX조선해양이 제출한 노사확약서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1차 법정관리를 벗어난 후 두 번째 법정관리 위기에 놓였던 STX조선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게 됐다.

황태희 기자 hth@

STX조선 노사가 제출한 확약서엔 무급 휴직 기간을 늘리고, 복지혜택 등을 축소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 4월11일 정부와 채권단이 전날 STX조선이 제출한 노사확약서를 수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STX조선 노사, 고정비 40% 감축에 합의
STX조선해양은 한때 글로벌 조선시장의 활황과 모기업 STX그룹의 성장세에 힘입어 2009년에는 글로벌 조선업체 중 수주잔량 기준 세계 4위에 오르는 등 황금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른 해운·조선업황 전체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저가수주 중심의 영업 관행이 손실을 키우면서 2012년 적자(4001억원)로 전환하게 됐다. 급기야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2013년부터는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됐다. 이후로도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STX조선은 2016년 5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가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졸업했지만 이후에도 경영 위기가 지속, 지난해 117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상황이 다시 악화됐다. 현재 창원시 진해구 수출의 84%를 차지하고 있는 STX조선은 사내협력사만 50여개, 임직원은 1100명, 사외협력사가 200여개 업체에 달한다. 법정관리 후 대규모 해고가 이어지면 지역경제가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STX조선과 비슷한 체급의 성동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신청한터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 3월22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정부와 채권단(수출입은행)이 “독자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추가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결과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11월 재무실사에서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다”는 결과를 받아들었지만 남아있는 산업컨설팅(올 1~3월 진행)에 기대를 걸었다. 금융논리보다는 산업논리가 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산업컨설팅을 진행한 삼정회계법인은 “경쟁력이 취약해 이익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고, 성동조선해양의 회생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졌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청산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의 수주잔고가 5척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아 계약 파기에 따른 손실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앞선 재무실사에서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를 3배 이상 웃돌았다는 점도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현재 성동조선해양 직원은 1200여명. 성동조선해양이 청산절차를 밟게 되면 해당 노동자들 역시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STX조선의 법정관리행이 국내 중소조선업 전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은 점차 커지던 차였다. 앞서 정부와 산업은행은 지난 3월8일 STX조선해양 회생 방침을 밝히면서 생산직 인건비 75%를 줄이는 자구안과 이에 동의하는 노조확약서를 4월9일까지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노조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인력 구조조정 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지3월26일부터 전면파업을 이어왔다. 이에 사측은 노조확약서 제출 시한이 임박한 시점에 아웃소싱과 희망퇴직 인력을 줄이되 임금을 삭감하고 무급휴직을 늘려 고정비를 줄이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마저도 수용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STX조선해양은 2017년 법정관리 조기졸업 당시 저가수주를 통해 물량은 확보했지만 재무 상태는 나아진 게 없었다”며 “법원이 오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첨예한 갈등을 빚어오던 STX조선 노사는 지난 4월10일 고정비 40%를 감축한다는 내용의 ‘노사확약서’에 대해 극적으로 합의했다. STX조선 관계자는 “노사간에 의견차를 겨우 좁혀 합의에 이르렀다. 피를 말리던 노사확약서와 자구계획안이 산업은행으로 전달됐다”며 “‘고정비 40% 감축’안을 마련했으며 이제 공은 채권단에 넘어갔다. 조용히 결과만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합의된 자구안은 직원들의 통상임금 5%·상여금 300%삭감과 무급휴직 6개월을 받는 내용으로 인력 구조조정은 원천 배제됐다. 다만, 직원들이 몇 년 동안 이 자구안 적용을 받을 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투쟁의 처음 기조부터 사람을 자르지 않으면 고통분담을 더 하더라도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조건에서 진행된 합의”라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분담을 조합원들이 동의하기도 쉽지 않아, 내부적으로는 많이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와 채권단은 STX조선에 노사확약서가 담보된 고강도 자구안을 주문했다. 이 자구안은 생산직 노동자 75% 감축을 골자로 하는 ‘고정비 40%’감축이었다. 이에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에 결사반대하며, 사측은 법정관리만은 피하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도 마다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이 과정에서 희망퇴직 104명과 아웃소싱(협력업체 이직) 40명 등 총 144명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

경영환경 개선 등 난제들 여전히 산적
STX조선이 산업은행에 낸 자구계획안과 노사확약서가 수용되면서 법정관리 문턱까지 갔던 STX조선은 다시 한 번 회생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법정관리를 피하더라도 적자의 늪에 빠져있는 경영환경 개선과 일감 부족에 따른 매출 감소 등 난제들이 산적해 이 회사가 생존하더라도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은 4월10일 오후 무급휴직, 임금삭감 등 인건비 절감 내용이 담긴 자구계획 및 노사 합의서를 산은에 제출했다. STX조선이 수주해 건조하고 있는 선박 수주잔량은 11척으로 RG 발급을 기다리는 대기 물량이 6척이다. 금융권으로부터 RG를 받을 수 있다면 당장의 숨통은 트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적자 행보 개선과 수주영업을 재개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것.

STX조선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을 1173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1987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보다는 개선됐지만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적자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속적인 적자로 인한 현금 유동성도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대비 62.9% 감소한 3958억원을 기록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89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진해 3분기 1500억원 수준을 유지했지만 경영 악화 상황이 지속되며 현금 유통성도 반토막 난 셈이다. 부채는 그동안 채권단으로부터 6조원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조1700억원 수준에 달한다. 부채비율은 76% 로 집계됐다. 향후 영업을 재개한다고 해도 신뢰도 하락에 따른 수주영업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 4월 초 기준으로 STX조선의 수주잔량은 17척, 올해 수주목표는 20척 7억3400만 달러다. 지난해 9월 그리스 선사로부터 PC선 6척을 수주한 이후 신규 수주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일감이 바닥나는 내년에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이 때문에 나온다. 산은 관계자는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는 하고 있다”며 “당초 STX조선 한 달 유예 결정이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 회의에서 나온 만큼 이번에도 정부 협의 후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STX조선해양에 회생의 길을 열어주더라도 향후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며 “글로벌 조선 업황이 정상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중견조선소가 중국 조선소와의 경쟁에서 수주 목표를 채우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장윤근 대표 “2년 이내 정상화” 약속
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 노사의 자구계획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STX조선의 법원 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계획은 철회됐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11일 “STX조선이 제출한 자구계획에 대해 회계법인 등 전문기관의 충분한 검토를 거친 결과, 컨설팅에서 요구한 수준 이상으로 판단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산은은 STX조선의 자구안을 수용함에 따라 내부 절차를 통해 수립될 수주가이드라인의 요건을 충족하는 선박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할 계획이다. 또한 경영 상황 및 자구계획 이행 등을 지속 점검해 자산 매각 등 자구계획이 원활히 이행되지 않거나 자금부족이 발생할 경우에는 원칙대로 처리(법정관리 신청)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번 STX조선의 자구계획안은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과거 인력감축 중심의 일방적 노조 압박이 아닌 노조의 선택 및 노사간 합의를 통해 추진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아울러 숙련된 기술 및 강한 애사심을 갖은 직원들이 회사에 남아 향후 경영정상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산은의 결정에 STX조선 노사는 물론 지역 경제계가 일제히 환영 목소리를 냈다. 경남도는 이날 한경호 지사권한대행 주재로 중형조선소 정상화 추진 민관협의체 긴급회의를 열고 채권단(산업은행)에 STX조선의 노사협약안 수용을 촉구했다. 한경호 도지사 권한대행과 창원시 부시장, STX조선해양㈜, 경남 경영자총협회, 창원상공회의소, 경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조선산업살리기 경남대책위, 경남발전연구원 관계자 등 12명은 이날 ‘STX조선해양㈜ 상생방안 마련을 위한 노사협약안 수용 촉구문’을 채택했다.

장윤근 STX조선 대표이사는 “노사가 합의한 자구계획을 수용하기로 한 산업은행의 결정에 감사드린다”며 “영업을 더 열심히 해 수주를 확대하고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장 대표는 이날 낮 임직원들에게 발표한 담화문에서는 “2년 이내에 회사를 정상화해 직원들의 고통이 줄어들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사측은 약속한 무급휴직 시행, 임금·상여금 삭감 등을 철저히 이행하면서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해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고정비 40% 절감(생산직 인건비 75% 절감) 요구를 맞출 예정이다. 노조는 산업은행이 당연한 결정을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의 고통분담을 생각하면 산업은행은 당연히 확약서를 수용해야 한다”라며 “조합원 등 생존권 사수를 위해 그간 함께 투쟁한 모든 이들의 성과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끝이 아니라 정부와 채권단은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등 향후 STX조선 정상화를 위한 영업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아울러 중형조선소 정책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