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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는 누구나 혼란스럽다
2018년 05월 02일 (수) 03:40:46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 이은주 한의사
사람은 적응을 잘 하는 동물이다. 새로운 환경에 옮겨 놓아도 언제부터 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금새 적응이 되고 곧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30년 전만 해도 자가용을 굴리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비율은 도시인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파트와 자가용 승용차를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익숙하게 누린다. 사람마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목소리와 영상을 교환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일이 가능해진 건 10년이 채 안되지만 지금 그것을 서먹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간단히 스마트폰 버튼 몇 개로 택시를 부르거나 돈이나 선물을 보내는 기능이 등장한 건 겨우 1-2년 사이인데, 사람들이 거기 적응하는 속도는 놀랍게 빠르다. 언제부터 그랬다는 듯 새로운 기능에 길들어 있다. 겨우 몇 년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리타분하거나 보수적인 고집쟁이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20세기를 살아본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는 이 격변의 이전과 이후 사이에 드리워진 의식의 괴리가 엄연히 각인되어 있다. 현실에서는 거의 아무런 충돌이 없는 듯 자연스럽게 21세기 문명에 적응하여 살고 있지만, 깊은 의식에서는 과거와 현실 사이의 부조화로 인한 놀라움, 불편함이 남아 있다.
은행에서 친절한 은행원 대신 금전 출납기와 마주서야 할 때, 버스에서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을 내주던 승무원 대신 교통카드 한 장으로 자동계산기를 대할 때, 학교에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던 선생님의 목소리 대신 스마트체크기가 출석확인을 대신할 때…. 굳이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척 이 새로운 풍경에 적응하고는 있지만 사람마다 내면에는 불편함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계문명에 의해서만 달라진 건 아니다. 인간 스스로 만든 새로운 제도들이 때로는,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도시인들의 생활풍경도 바뀌었는데, 개인 생활이 없는 중노동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이 남아도는 주말 휴식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어설프게 고민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차라리 ‘일 때문에’라는 핑계거리가 있을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젊은 시절의 태반을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중노년층 가운데는 가족과 시간보내기, 친구들과 어울리기, 주말에 취미 즐기기 같은 일이 아예 어색할 수도 있다. 1년 중 토, 일요일을 포함하여 공식적으로 쉬게 되어 있는 공휴일의 수가 1백일을 넘어섰다.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1/3이나 되는 공휴일이 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중년들에게는 버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또 은근히 일은 누가 해서 먹고 사나 하는 국가적(?) 염려 걱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제도는 예전과 달라진 바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일부일처의 결혼과 가족제도가 한 개인에게는 절대적 종속을 요구하는 제도라는 건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많은 개인들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일탈하면서 가족의 풍속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이혼과 자유연애가 늘어난 것은 물론,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비혼(非婚) 선언’이나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하겠다는 ‘퀴어’까지, 법적 관습적 제도는 엄연하지만 더 이상 재래의 혼인제도는 현대인의 삶을 구속하지 못한다.
죽으면 응당 관 속에 누워 땅에 묻히리라 믿어마지 않던 노인들에게는, 이제는 흙이 아니라 한 줌 재로 변하게 되는 화장 문화가 대세라는 사실만도 놀라운데, 한술 더 떠 화장뿐이랴. 한창 시절을 빽빽한 아파트에서 살았듯, 죽어서도 무덤 대신 연립이나 아파트식 납골묘를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 속에 있는 20세기의 경험과 그 경험에 비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21세기의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적 갈등은 단지 몇몇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세상은 태연스레 잘 굴러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누구나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물리적 현실과 상상의 세계마저 혼돈되고 있는(혹은 일체화되어가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조차 모호해져가는 세태 속에서, 성에 대한 관념(혹은 표준)들도 새로운 조율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성생활은 과연 행복에 필수인가부터 새로운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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