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길은 남자를 이루고 땅의 길은 여자를 이루었다.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이 생겨났다(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만물의 탄생은 끝없이 계속되니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변화도 끝이 없다(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 이 가운데 사람은 가장 뛰어남을 얻어 최고의 정신이 된 존재다(惟人也得其秀而最靈).”

▲ 한의사 이은주

동양 사상의 시작점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오행으로 요약될 수 있는 주역사상을 풀어서 성리학의 바탕을 세운 중국 송대의 철학자 주돈이(周敦? 1017-1073)는 <태극도설> 첫머리에 이와 같이 갈파한다. 이 우주를 생성하는 맨 처음의 에너지가 음기와 양기이다. 음과 양 두 기운의 요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여 우주만물을 이루게 되었는가를 요점만 뽑아 도표와 함께 설명한 것이다. 여(女)와 남(男)이란 표현은 하나의 비유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양의 유교권에서는 실제로 여자와 남자를 음과 양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상이 오랫동안 고정되어 왔다. 이 설명에 의하면 우주의 음기와 양기가 교감하면서 그 사이에서 만물이 하나씩 생겨났고, 지금도 생겨나며 변화(진화)해가고 있다. 그 정점에 인간이 있다. 인간 가운데 음 기운의 결정체가 여자고 양 기운의 결정체가 남자인 셈이다. 음기와 양기의 차이는 고요하게 멈춤(靜)과 활발하게 움직임(動)의 성질로도 설명된다.
 

음양의 성질에 대한 설명은 굳이 장황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인간 입장에서 보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본성적으로나 생리적으로도 정당한 욕구다. 기독교 성서에서는 최초의 인간을 만드신 조물주가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하면서 여자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섭리에도 부합하는 욕구인 셈이다. 

요즘 사회에 일고 있는 미투(Me_Too)운동이 한창이다. 곳곳에서 힘을 가진 남자들이 여성을 유린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봇물 터진 듯 그 피해 여성들에 의한 공개적 폭로와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수단 방법이 잘못됐다. 아니, 동기도 잘못되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탐내는 것은 본능적 욕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힘을 앞세운 폭력과 겁박으로 행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여자를 구애와 동반의 대상이 아닌 정복과 쾌락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동기’부터가 빗나갔다. 음양의 조화와 교감이란 명분을 대입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기에 본능의 작용이 있다면 투쟁과 정복의 본능이 작용했을 뿐이다. 정복하고 획득한 성적 행동이라는 것은 단지 폭력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모든 폭력은 범죄로 치부된다. ‘미투’를 통해 폭로된 대다수의 사건들이 범죄적 행동에 해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성이 여성에 대한 범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을 가진 여성에 의한 남성 추행도 있고, 어른의 아이에 대한 추행도 있고, 동성 간에 이루어지는 추행도 있다. 그 문제성은 서로 다르지 않다.
우주의 원리가 설계하고 조물주가 축복했다는 남자와 여자의 교감은 그 출발이 성(聖)스럽다. 세상은 사랑을 권장하고 결혼을 축복한다. 그들의 교감을 따라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인류는 더욱 발전한다. 그런데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같은 빗나간 성적 사건들은 성스러운 섭리를 오히려 유린하고 저주로 바꿔버린다. 인간에 대한 배신이자 우주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정상적인 성행위는, 서로의 인격에 대한 존중, 서로의 몸에 대한 축복이 곁들여 일어나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으며 단지 자신의 쾌락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침탈을 마다하지 않는 섹스란 얼마나 야만스러운가. 돈으로 사고팔거나 거래 수단을 대체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섹스 또한 가해자나 피해자 양쪽 모두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야만스러운 사건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오래도록 얼마나 깊이 퍼져있었으면 이처럼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는 것일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진 곳을 꼽는 것보다 벌어지지 않은 곳을 꼽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이젠 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겹다는 기분마저 들지 않는가. 어쩌다가 성스럽고 아름다워야 할 성이, 이렇게 끔찍한 것으로 되고 말았을까. 
소동이 얼마나 더 확대될지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으나, 이참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적폐들과 함께 깨끗이 정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감싸두고 안으로 곪아 암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 드러내고 치료하는 과정은 괴로울지 몰라도, 이런 상태가 치유될 수 있다면 한동안의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다.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