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량이 풍부해 노래 부르기 이전, 목소리 자체에 이미 다양하고 중후한 감정이 배어있어 ‘저음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가수 오기택씨.

▲ 가수 오기택

1962년 활동을 시작해 ‘영등포의 밤’,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 ‘충청도 아줌마’, ‘우중의 여인’, ‘마도로스 박’ 등 60년대를 대표하는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던 가수다.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그의 이력서는 두 개다. 가수이력서와 골프이력서가 그것.
전국체전에서 전남 대표로 출전해 단체 금메달과 개인 1위를 하는 등 각종 아마추어대회의 상을 휩쓸었다. 프로 골퍼로 데뷔하라는 권유도 수없이 받았다. 가수이자 골프선수로 두 가지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

현재 그의 고향인 땅 끝 마을, 해남에서는 해마다 그의 이름을 딴 ‘오기택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벌써 열두 번째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당사자 오기택씨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본인 이름의 가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20년 전 바다낚시를 갔다가 당한 불의의 사고 후유증 때문이다. 한때 반신불수의 몸이었던 그는 혹독한 재활 훈련 끝에 재기에 성공, 한동안 무대에 다시 서기도 했다. 그러다 또다시 건강이 좋지 않게 돼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

이 사고로부터 20여년, 여전히 독신인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가수 오기택씨가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그 삶과 사랑’을 총 3회에 걸쳐 만나본다. 그 세 번 째.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오기택씨는 1962년 데뷔 당시 전속이었던 신세기레코드, 한곳에만 적을 두고 활동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물론 이후 타 음반사를 통해 한, 두 장 음반을 더 발표하기는 했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신세기 맨’이었다. 안정애, 윤일로, 정훈희, 최숙자, 현미, 최희준, 패티김 등과 더불어 신세기레코드사의 중심축을 이룬 가수였다. 신세기는 당시 지구, 오아시스, 아세아와 더불어 4대 메이저 음반사 시대를 구가했다.

그가 신세기레코드사 전속을 마치는 69년까지 그의 노래가 수록된 음반은 무려 80여 장. 물론 당시 옴니버스음반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와 함께 손잡고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들 역시 많다. 김광(등대지기), 김부해(영등포의 밤), 김성근(비운의 달래강), 김영광(명동의 나이트클럽), 김용만(그 처녀), 김종유(충청도 사나이), 김종하(사랑과 주검이 남긴 것), 김학송(지하도에서 만난 여인), 김호길(차 한 잔 때문에), 김화영(타향의 기타), 박시춘(우중의 여인), 서영은(고향무정), 손목인(아빠의 청춘), 손석우(무등산의 달), 엄토미(우리 마을 순이), 유성민(가버린 영아), 이봉조(가지마오), 전오승(나의 최고의 날), 정풍송(잊어주마), 최지호(밤 항구), 한동훈(비 나리는 판문점), 한용희(월남 나그네), 홍현걸(이별), 황문평(푸른 언덕) 등. 그만큼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목소리를 탐냈던 것. 그밖에 69년 그가 전속을 옮기는 아세아, 이후 70년대 지구, 오아시스 등을 거치면서 더 많은 작곡가와 손잡으며 폭넓게 노래를 취입했다.

쉴 새 없는 지방공연 일정과 군 복무(1963,4,1~1965.10,7 해병대 만기 제대) 등을 감안하면 쉴 틈 없이 음반 취입에 매진한 셈이다. 가요계 판도가 바뀐 70년대 들어서도 그의 음반 취입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노래 욕심이 많았던 가수였다.

해병대 연예대 시절, 더욱 활발한 취입으로 전성기 이끌어

그는 데뷔 1년 뒤인 63년 4월, 해병대 140기로 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당시 가요계의 기대주였던 만큼 군 복무 시절에도 가수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해병대 연예대의 근무조건은 군 복무와 함께 연예활동을 보장해준다는 것.

‘마도로스박’, ‘눈물의 10분간’, ‘등대지기’, ‘남산 부르스’, ‘키스 키스 키스’ 등이 모두 이 기간에 발표된 히트곡이었고 영화주제가 또한 많이 취입했다. 이 기간 동안 그가 부른 영화주제가들을 살펴보자.

그가 부른 최초의 영화주제가는 64년, 강찬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모녀기타’다. 주제가 ‘모녀기타’는 최숙자의 목소리로, 그리고 또 다른 주제곡 ‘모녀가 울고 간 길(남상포 손목인)’은 그가 취입했다.

이어 영화배우 박노식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자리한 ‘마도로스 박(신경균 감독, 64년)’, 그리고 ‘바람아 말하라(이형표 감독, 65년)’ 등도 이때 취입한다.

그밖에도 ‘형부와 새언니(신경균 감독, 64년)’의 주제가인 ‘다시는 놓지 않으리(김영일, 김부해)’를 비롯해 ‘홀어머니(홍은원 감독, 1964년)’의 주제가인 ‘어머니는 굳세어(김신랑, 김영호)’, ‘활빈당(강중환 감독, 1965년)’의 주제가인 ‘홍길동의 활빈당(반야월, 손목인)’, ‘어머니의 청춘(유동일 감독, 1965년)’의 주제가인 ‘눈물 메마른 젊음(이철수, 김영광)’, ‘성난 영웅들(정인엽 감독, 1965년, 김영광 작곡)’ ‘죄와 정의’의 주제가인 ‘햇빛을 향해 달려라(임경환, 김부해)’, ‘사랑과 주검이 남긴 것(김종하, 김종하)’ 등이다.

제대 후에도 영화주제가 취입은 계속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영화주제가가 바로 김승호, 태현실, 신성일 등이 열연한 ‘아빠의 청춘(정승문 감독, 1966년)’이다. 또한 ‘일지매(장일호 감독, 1966년, 손목인 곡)’,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김기영 감독, 1966년)’의 또 다른 주제가인 ‘검은 치마의 여인(이상화 작곡)’, ‘공수작전(1966년)’의 주제가인 ‘하늘의 백장미(월견초, 김부해)’ 등으로 이어진다.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고향무정’도 1968년 박종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고 그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등포의 밤(강민호 감독, 1966년)’ 역시 영화화되면서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남궁원, 엄앵란, 김승호가 열연했다. 그밖에 ‘원한십년’, ‘차 한 잔 때문에’ 등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도 그의 몫이었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으로 군 복무시절이었던 1965년, 그는 국제신보사 주최 국제가요대상에서 10대가수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고향 떠난 이들의 심금을 울린 ‘고향무정’그리고‘충청도 아줌마’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잡초에 묻혀있네.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 아래/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어부들 노래 소리/멎은 지 오래일세. -고향무정(김운하 작사, 서영은 작곡, 오기택 노래)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인 작사가 김운하(본명 김득봉)씨가 노랫말을 쓴 이 ‘고향무정’은 당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금까지도 각종 ‘고향노래 베스트 10’ 집계에 반드시 포함될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향노래이기도 하다.

이 ‘고향무정’과 ‘충청도 아줌마’ 등의 여세를 몰아 전성기를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 그러나 갑자기 그의 행보에 급제동이 걸린다.

지난 호에도 거론했듯 워커힐호텔의 한 외국인 전용클럽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한 방송국 PD에게 목격된 것. 이 소식이 전파를 통해 보도되자 그가 전속으로 있던 음반사 사장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기에 이르렀고 이에 발끈한 그는 PD를 찾아가 거칠게 항의한다. 결국 폭행으로 이어지며 괘씸죄까지 적용되기에 이른다. 때문에 오기택씨의 노래들은 일순간, 방송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춘다.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 심기일전해 노래에만 전념해보려 애쓰지만 몸싸움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의 노래들은 이미 방송가에서 외면을 당했고 그로 인해 취입한 노래들마다 ‘불발탄’에 그쳤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뒤인 1969년, 그는 잠시 아세아로 전속을 옮긴다. 동시에 아세아 측은 ‘오기택 전속기념음반’을 출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다.

이 무렵 경쟁사였던 아세아레코드사와 신세기레코드사는 각각 대형 전속가수 계약을 성사시킨다. 아세아에서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등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배호가 신세기로 전속을 옮기는 시점에 신세기의 주축이자 달러박스였던 오기택씨는 아세아로 적을 옮긴 것. ‘정훈희 VS 문주란’의 ‘지구 VS 신세기’의 전속 바꿈도 이때 이루어져 더욱 화제가 된, 이를테면 초대형 맞트레이드였던 셈이다. 그러나 오기택, 배호는 각각 새로 옮긴 음반사를 통해 이렇다 할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국내 활동에 한계를 느껴 일본무대로의 진출 모색

결국 국내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낀 그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다. 6개월 일정으로 모두 10여 차례에 걸쳐 동경, 오사카, 교또 등 일본순회공연을 통해 일본 진출을 모색한다. 김세레나, 남상규 등과 함께였다. 그러나 결국 언어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6년 만에 포기, 1975년 경 다시 국내무대로 복귀한다.

이때 무엇보다 절실히 느낀 건 노래에는 노래 부르는 이의 정서가 제대로 담겨야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고향’을 주제로 한 고향노래에 매진한다.
이때 그는 ‘고향무정’의 후속곡 격인 ‘고향유정(오기택, 신일동)’을 타이틀로 한 독집을 발표했다. 직접 본인이 작사까지 했다. 이어 ‘잃어버린 문전옥답(김주동, 김부해)’을 비롯해 신일동 작사, 작곡의 ‘고향집’, ‘고향의 정’ 등 고향을 소재로 한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기대치에 못 미쳤다. 이미 가요계 판도는 포크송, 고고 붐 등 젊은이들 취향의 음악 위주로 시대가 바뀐 탓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요계 활동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이사로 나선 동시에 1976년 2월에는 재일동포 성묘단 환영무대에도 올랐다. 이어 그는 1979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에 당선된다. 

당시 자료들이 말하듯 가수분과위원장 시절, 무엇보다 가수들의 방송출연료를 확실하게 올려놓았다고 자부한다. 출연료 인상률이 무려 150%. 가수들의 방송 출연을 중단시키는 등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이렇듯 가요계 선후배의 권익과 친목을 위해 앞장섰던 그다.

85년 MBC 수사반장 ‘여의도부르스’ 편에 출연하는 등 바쁘게 활동하던 그는 대전 공연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했지만 결국 어머니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특히 ‘한 우물만 파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당부를 잊고 지낸 듯해 지금까지도 때때로 후회스럽다.

앞서 거론했듯 그의 취미는 바다낚시다. 바닷가 해남 태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찌 없이 손의 감각을 이용하는 바다낚시는 퍼팅감각을 익히는 또 다른 운동이었다. 그는 이 낚시로 또 한 번 운명이 바뀐다. (뉴스메이커 2017년 12월호, 오기택[1] 참조) 예기치 않은 이 사고 당시, 구출이 늦어져 뇌에 더욱 손상을 입었다.

‘뇌출혈 때문에 골프를 못 친다면 평생 한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그는 걷는 연습과 체력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재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골프 후 뒤풀이 때 술을 마시다 또다시 뇌출혈로 쓰러진다.

‘산장의 여인’ 권혜경과의 특별한 만남

오기택 선생을 만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청주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던 가수 권혜경씨 댁을 찾아가던 날을 잊을 수 없다. 2008년 4월의 일이다.

‘산장의 여인’ 권혜경씨와 오기택씨의 인연은 각별했다. 둘은 몸이 불편함에도 오래도록 서신을 주고  받던 사이였다. 한편 불편한 몸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돼주고 싶어 했던 면도 작용했으리라.

당시 필자는 권혜경씨 채록과 더불어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었다. (뉴스메이커 2012년 6월호, 박성서 평론-권혜경 편 참조) 당시 권혜경 여사는 이미 '치매'라는 병원진단을 받아놓고 있었다. 때문에 보다 정확한 이야기를 듣거나 채록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였다. 자신이 왜 청주에 거주하기 시작했는지조차 앞뒤 내용이 바뀌는 등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필자는 오기택씨 집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발신자는 권혜경. 수신자는 오기택. 지난 2000년도 초에 쓴 편지였다. 편지 내용에는 권혜경 여사로부터 정확히 듣지 못했던 '청주 집에 대한 자신의 심경'이 소상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편지 끝부분의 글귀는 ‘바보 같은 누나, 혜경이가' 였다. 그만큼 선후배로써 둘 사이는 허물이 없었다.

여기 게재된 사진은 권혜경 여사 타계 4개월 전, 오기택씨와 20여년 만에 만나는 장면이다. 몇 번 일정을 미룬 끝에 찾아간 권혜경씨 집에서 처음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날 만남에 대해서는 짧게 정리해 쓰기가 결코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둘 다 독신이었다. 평생을 홀로 살았고 또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고 걱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만나기를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꺼려했다. 마음 아프게 하기 싫어서였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날 오기택씨는 권혜경씨가 예전에 TV에 출연했던 영상들을 모아 DVD에 담아갔다. 오랫동안 준비한 선물인 셈이다. VTR도 자신의 집에 있던 것을 떼어다가 직접 권혜경씨 집 TV에 연결했다. 이때 영상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권혜경 여사가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흐느끼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기택 선생을 만난 이후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이었다.

해마다 지인들에게 고향의 명산물을 보내는 ‘의리의 사나이’

그는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 ‘의리의 사나이’로 통한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팔을 대신 걷어 부치고 나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해마다 그의 고향, 해남에서 고구마를 대량으로 구입해 지인들에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고 있다. 김상희, 김창수(이미자씨 남편), 남상규, 남일해, 오승근, 이묵원(강부자씨 남편), 이순재, 최백호, 최태원, 최봉호, 최희준, 한명숙씨 등등... 가요계 원로들과 골프멤버들까지 50 여명에 이른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 씀씀이에 후배가수들 역시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하고 있다. 최백호, 태진아, 서수남씨 등이 그를 돕는 자선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가수 박상철씨 또한 매달 꼬박꼬박 돈을 보내고 있다. 가수 김상희씨 제의로 5년 째 그를 돕고 있는 박상철씨는 ‘항상 마음속에 큰 산처럼 느껴지는 선배이기에 투병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드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후 20년, 재기의  나날들 그리고...

그의 손목에는 흉터가 남겨져 있다. 사고 당시 소나무에 감겨진 자국이다. 침이란 침은 다 맞아보고 약이란 약은 다 써봤다고 했다. 독자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일찍 작고하셔서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결혼을 안 한 후회도 많았다.

식사는 거르더라도 약은 빼놓지 않고 복용해야 하는 나날들. 일주일에 세 차례 연희동 동서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오전 7시30분에 기상,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6년 째 그를 돌보고 있는 요양보호사 권남희씨(57)는 ‘무엇보다 열심히 운동하며 재활하시려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놀랍다’며 ‘평소 TV 가요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노래 잘 하는 가수를 보면 감탄해서 눈물을 흘리곤 하신다’고 전한다. 눈물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안타까워 한다는 그는 ‘자신도 아프지만 않다면 노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늘 입버릇처럼 강조할 만큼 ‘영원한 프로가수’라고 말한다.

때로 TV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보거나 응원의 메시지라도 듣게 되면 아무리 추워도 그 즉시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한다며 마음은 이전보다 많이 편안해졌다고 근황을 전한다.

그의 아파트에는 팬들의 발걸음도 잦다. 일요일마다 찾아와 집안 정리를 도와주는 팬이 있는가 하면 주기적으로 음식을 만들어오는 열성 팬도 있다.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팬이라는 김인선씨(68, 삼성라벨 대표)는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기택씨 노래가 좋아 무작정 따라 부르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며 ‘특히 남성다운 목소리와 외모에 걸맞게 의리의 사나이라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로망이었다’고 말한다. 부인도 열성 팬. 이들 부부는 틈만 나면 직접 담근 김치를 비롯한 음식을 준비해 수시로 찾는다. 오기택씨 또한 자신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 오기택씨가 직접 노랫말을 쓴 ‘해남 땅 끝 마을 내 고향’ 음반

직접 노랫말을 쓴 ‘해남 땅끝 마을 내 고향’

1985년 ‘여의도 부르스(안치행 작사, 작곡)’와 1992년 ‘나의 길을 가련다(김성도, 신일동)’ 음반을 끝으로 사고를 당한 그. 이후 혹독한 재활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자 가장 먼저 그가 한 일이 바로 음반 발표였다. 이때 발표한 노래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해남을 소재로 한 ‘해남 땅끝 마을 내 고향’이다. 직접 노랫말도 썼다. 음반 뒷면에는 땅 끝 마을, 해넘이가 특히 아름답다는 해남의 일몰 사진을 넣었다.

어릴 때 뛰어놀던 황금들판 남쪽 그 하늘/우수영 을들목 강강수월래 그 아가씨/옥매산에 옥 깎아서 예쁜 반지 끼워주고/김 말리며 숨바꼭질 노를 저 건너가던/완도와 잇는 다리 그님 보기 쉬워졌네.

어릴 때 듣고 보던 베틀소리 다듬이소리/금강곡 맑은 물에 빨래하던 그 아가씨/듣고 싶네 산새소리 대흥사의 목탁소리/구름들의 이정표인가 두륜봉과 미암바위/다정했던 내 고향의 그 친구들 그립구나. -해남 땅끝 마을 내 고향 (오기택 작사, 신일동 작곡, 오기택 노래)

이 노래처럼 아름다운 그의 고향 해남에서는 매년 10월, 그의 이름을 딴 ‘오기택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써 벌써 열두 번째지만 그는 건강이 나빠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못했다. 인생의 풍파가 삶을 짓누를수록, 마음은 언제나 고향이다. 오기택씨는 자신의 명예가 걸린 이 ‘오기택가요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 어느 정도나 재활치료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