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21·한국체대·세계랭킹 58위)을 집중조명했다. BBC는 “흰 뿔테 안경에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정현은 이번 호주 오픈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스타다”라고 보도했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BBC는 정현의 이력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정현은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6살 때 난시 치료를 위해 테니스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형이 테니스인이었기에 정현은 빠르게 테니스에 녹아들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환상적인 경기를 치렀다. 그는 정신적으로 훌륭한 선수”라고 말했던 조코비치의 발언까지 덧붙이며 정현을 칭찬했다. 또한 “그는 적어도 50년 간 최고의 선수일 것이다”라고 말한 팬의 발언까지 첨부하며 정현에 높은 평가를 보냈다.

세계 톱 랭커 차례로 제치며 호주오픈 4강 올라

▲ 테니스 선수 정현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 테니스가 메이저 대회 4강에 올라간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렸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경험했음에도 그랬다. 그 정도로 테니스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정현은 세계 톱 랭커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평정심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테니스가 생소했던 국민들이 정현을 주목하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정현은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우승,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6년생인 정현은 21세 이하 선수 중 세계 랭킹이 높은 8명을 추려 치른 이 대회를 제패하며 ‘차세대 선두 주자’로 공인받았다. 호주 오픈에서도 정현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현과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 4위)는 단식 32강전에서 만났다. 즈베레프는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손꼽히던 강호로, 2013년 프로로 전향해 2016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픈 단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수드 드 프랑스 오픈 단식 우승, BMW 오픈 단식 등 단식 우승을 거머쥔 세계적 선수다. 정현 선수가 8강전에서 만난 테니스 샌드그렌(미국)은 루키로 이름이 높다.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지만, 2018 호주 오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다. 샌드그렌은 지난 시즌까지는 투어 대회보다 한 단계 낮은 챌린저 대회를 주무대로 삼았으나, 이번 오픈에서 8강전까지 올라와 화제가 됐다. 샌드그렌은 “정현을 2주 만에 다시 만났는데, 경기는 정말 재미있었다”고 의견을 남겼다. 16강전에서 만난 노박 조코비치는 세계랭킹 1위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다. 2017년 11월 기준 ATP 싱글 랭킹은 12위, 현 세계 랭킹은 14위였다. 2011년부터 유명 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라파엘 나달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과거 로저 페더러, 앤디 머레이, 라파엘 나달과 4강 체제를 형성했으나 2016년부터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공수가 완벽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정현 선수의 우상으로 알려졌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차세대 선두주자
지난 1월26일, 정현은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4강전(준결승전)에서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와 맞붙었으나 발바닥 부상으로 기권패했다. 이날 정현은 남자단식 4강전 로저 페더러와 경기에서 1세트를 1-6으로 내주고, 2세트 게임스코어 2-5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했다. 2세트 게임스코어 1-2에서 브레이크를 당한 정현은 게임스코어 1-4까지 벌어진 이후 메디컬 타임아웃을 부르고 왼쪽 발바닥 물집을 치료하는 등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생애 처음으로 ‘테니스 황제’ 페더러를 만나 다시 한 번 ‘이변’에 도전했지만 발바닥 물집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다. 정현은 이날 1세트를 33분 만에 내줬고, 2세트에서도 부상 탓에 맥없는 경기를 이어가다 결국 1시간 03분 만에 기권을 선언했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기권패했지만 한국 테니스에 있어 정현은 여전히 빛나는 국민 영웅이다.

한국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정현의 훌륭한 경기는 많은 국민들이 우리나라 스포츠 중 비인기종목이었던 테니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러한 정현에 대한 세계 테니스계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정현은 2004년 마라트 사핀 이후 가장 낮은 순위로 호주오픈 4강에 올랐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닛칸 스포츠>는 이번 대회 1회전에서 탈락한 니시코리 게이와 비교하며 “정현의 강력한 스트로크를 테니스 황제 조코비치도 인정했다”고 부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이에스피엔>(ESPN)도 “정현이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쓸 것”이라며 앞으로 행보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뉴욕 타임스>가 ‘주목할 3명의 선수’로 꼽았던 신예가 올해 첫 메이저대회부터 차세대 선두주자로서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한 것이다. 올해 출전한 3개 대회에서 모두 16강 이상 성적을 거둔 정현은 호주오픈 이후 완전히 달라진 위상으로 투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