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꿈꾸는 시간> 전을 열었던 노진숙 작가가 2017년 12월 <꽃을 담다> 전을 열며 순조롭게 재개했다. 막사발에 꽃을 담았다고 해서 지어진 ‘꽃밥 작가’라는 호칭으로 미술 평론가들과 미술 애호가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연작 형식이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은 전작과 동일하지만 시간에 의해 누적된 감정의 층차를 깊이 있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냈던 전시였다.

신선영 기자 ssy@

어머니와 막사발

▲ 노진숙 화가.

노진숙 작가의 작품에서는 어쩐지 밥 냄새가 난다. 밥을 갓 지어서 소복하게 담아주는 어머니의 정성처럼, 캔버스 가득 꽃을 고봉으로 올려서 모락거리는 훈김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릇 또한 어머니가 합장을 했다가 펼친 모양으로써 마치 자식을 위해 기도해 온 모든 염원을 꽃으로 발현시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그릇일지라도 아무리 얕은 그릇일지라도 언제나 차고 넘칠 만큼의 쌀꽃이 채워져 있는 것이다.

“제 작품에서 그릇은 곧 어머니입니다. 그릇 중에서도 한국 전통 그릇인 막사발을 그렸는데, 그 이유는 예로부터 우리의 식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온 막사발이야말로 우리가 나고 자라는 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어머니와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막사발의 모양이 어머니의 젖가슴과 닮아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부각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그릇일진데 노진숙 작가가 그렸다 하면 어머니의 손 같고, 어머니의 젖가슴 같고, 어머니의 얼굴 같다. 황토로 만들어서 표면이 다소 투박하지만 수수하고 정감 있는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사발을 ‘무기교의 기교’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막사발의 미감을 다양하게 나타내기 위해 분채 외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풍부한 질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장지는 흡수력이 강하기 때문에 혼합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표현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먹, 석채, 황토, 순금 등을 사용해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다채롭게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지난 <꿈꾸는 시간> 전이 개념적인 막사발과 감각적인 막사발의 접점을 찾아나간 전시였다면, 이번 <꽃을 담다> 전은 그 접점을 재고한 전시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방점을 둔 것은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 산과 들처럼, 장지에 분채, 석채, 먹, 62.5x117cm, 2017.

채소 꽃 이야기
이번 <꽃을 담다> 전을 한마디로 소개하면 노진숙 작가의 ‘텃밭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전시에서 들꽃과 관상용 꽃을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파 꽃, 쑥갓 꽃, 가지 꽃 외에도 고구마 줄기, 검정콩과 같은 작물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노진숙 작가의 어머니께서 가꾸셨던 텃밭의 것들이다. 이제는 돌봐줄 사람이 없는 텃밭을 보며 어머니의 부재를 실감했다고 한다.

“새로운 전시를 계획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그때부터 매주 고향을 오가며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했는데 정신적인 충격과 신체적인 무리가 와서 작품도 접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망연한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어머니께서 가꾸셨던 텃밭에 가게 됐습니다. 한동안 거둬주는 사람이 없었던 터라 열매는 이미 땅에 떨어지고 꽃들은 씨앗을 여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 받아먹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꽃들을 그제야 보게 되면서 제가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 거냉의 시간1, 장지에 분채, 석채, 80x65cm, 2017.

이때 작가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생활 패턴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길을 잃은 채소들이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텃밭에 남겨진 어머니의 꽃들만큼이나 자신이 표현해야 할 어머니의 사랑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다시 붓대를 쥐게 됐다. 그렇게 텃밭에 방치됐던 꽃들을 자신의 화폭에 옮겨 심으면서 힘에 부쳐 있던 마음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모성이라는 주제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인이 많기는 하지만 진부하고 해묵은 이야기로 경도되기 때문에 진척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저만의 스타일에 저만의 이야기를 가미시키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게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셨던 마지막 고구마를 막사발에 넣어 새 싹을 틔웠던 것처럼, 앞으로도 제가 가진 이야기의 한계점을 점진적으로 넘어서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 (좌)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 장지에 분채, 석채, 자개, 90x40cm, 2017, (우) 고마운 정성, 장지에 분채, 석채, 자개, 90x40cm, 2017.

노진숙 작가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인사아트스페이스, 경인미술관, 갤러리한에서 네 번의 개인전을 열고 국내외 아트페어와 부스전에 수차 참가했다. 전라남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대전, 단원미술대전, 경향미술대전에서 특 입상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현대한국화협회, 한국화구상회, 전통과형상회 회원이다. NM

▲ (좌) 지극한 사랑1, 장지에 분채, 석채, 먹, 90x40cm, 2017, (우) 지극한 사랑2, 장지에 분채, 석채, 먹, 90x40cm, 2017.